
그리스 미술을 대표하는 장르는 아시다시피 '조각'입니다. 미술사학자 양정무 교수가 그리스․로마의 문명과 미술을 다룬 《난생처음 한 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제2권에서 상찬해 마지않았던 것처럼, 고대 그리스의 조각은 "운동감으로 보든 인체 표현으로 보든" 세계 조각사에 길이 남을 명품으로 꼽힙니다. 다만 안타까운 건 그리스 조각의 원본은 남아 있는 게 거의 없죠. 세계의 유명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조각품들은 대부분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복제품입니다. 세계미술사에서 적어도 조각에 관한 한 그리스와 로마가 한 데 묶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사실은 그런 그리스 조각에도 구체적인 개인을 새긴 이른바 '초상 조각'은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죽은 사람은 몰라도 산 사람의 얼굴을 새기는 전..
달은 그저 달일 뿐이지만 보는 것은 똑같은 달이어도, 마음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법 所見同一月 人情自殊視 소견동일월 인정자수시 - 이수광(李睟光, 1563~1628), 『지봉선생집(芝峯先生集)』16권 「견월사(見月詞)」 해 설 달은 예로부터 무한한 영감을 불러일으킨 상상력의 원천이었다. 인류가 달에 착륙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 달이 지구의 둘레를 도는 천체라는 사실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상식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에 얽힌 여러 가지 이야기들은 여전히 우리를 신비의 세계로 이끌고 간다. 계수나무 아래에서 떡방아를 찧는다는 달 토끼는 전래동화에 단골손님으로 자주 등장한다. 불사약을 훔쳐 먹고 달나라로 도망가서 두꺼비가 되었다는 항아(恒娥)의 이야기는 『회남자(淮南子)』에 전해 온다. 달에..
성자는 책 읽기 좋아하여 어릴 적부터 책을 읽으니 열다섯에 남화경 읽고 스무살에 대편에 이르렀네 지푸라기 배 동동 띄우고 닷 섬들이 박 둥둥 띄우니 책 마주하여 재삼 감탄하며 고개 들고 숙이는 사이 천하를 다녔어라 백천 자를 연이어 부름에 물 흐르듯 막힘없이 쏟아내니 마치 저 침을 뿜는 사람이 구슬과 안개를 어지러이 쏟아내는 것 같고 마치 저 최고의 대장장이가 쇠를 한 용광로에서 주조하는 것과 같았도다 成子好讀書 성자호독서 讀書自妙年 독서자묘년 十五南華經 십오남화경 二十至大篇 이십지대편 浮浮芥爲舟 부부개위주 汎汎五石瓠 범범오석호 臨書再三歎 림서재삼탄 俛仰撫八區 면앙무팔구 連呼百千字 련호백천자 汩汩如流注 골골여류주 如彼噴唾者 여피분타자 雜下珠與霧 잡하주여무 如彼大冶者 여피대야자 金鐵一爐鑄 금철일로주 - 김..
기해년 겨울 타국의 역병이 이 땅에 창궐하였는 바, 가솔들의 삶은 참담하기 이루 말할 수 없어 그 이전과 이후를 언감생심 기억할 수 없고 감히 두려워 기약할 수도 없사온데 그것은 응당 소인만의 일은 아닐 것이옵니다 백성들은 각기 분(分)하여 입마개로 숨을 틀어 막았고 병마가 점령한 저잣거리는 숨을 급히 죽였으며 도성 내 의원과 관원들은 숨을 바삐 쉬었지만 지병이 있는 자, 노약한 자는 숨을 거두었사옵니다 병마의 사신은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를 가려 찾지 않았사오며 절명한 지아비와 지어미 앞에 가난한 자의 울음과 부유한 자의 울음은 공히 처연 했사옵고, 그 해 새벽 도성에 내린 눈은 정승댁의 기왓장에도 여염의 초가지붕에도 함께 내려 스산하였습니다 하오나 폐하 인간의 본성은 본디 나약하나 이 땅의 백성들은 ..
번역문 구더기는 똥을, 말똥구리는 말똥을, 낙타는 소금을, 생쥐는 측간을, 닭은 지네를, 고양이는 뱀을, 뱀은 파리를, 좀벌레는 책을 좋아한다. 이 모든 것이 본성이다. 저 여러 사물들에게는 응당 자연스레 생긴 취미가 있어 각자 기약하지 않아도 절로 이르게 된다. 사물의 본성은 본래 옅은데 기욕(嗜欲)이 그것을 짙게 만드니, 나 또한 시(詩)에 있어서 그러하다. 나는 일여덟 때부터 시를 배웠는데 오래도록 빠져들어 미친 듯 좋아하여 밤낮을 잊고 침식을 폐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어른들은 병이라도 날까 걱정하여 금지시켰지만 번번이 틈을 타 인적 드문 곳에 숨어 몰래 읊조렸다. 걱정이라고는 오직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일 뿐, 무엇이 즐거워서 그렇게까지 하는지를 알지 못했다. 원문 蝍蛆嗜糞, 蛣蜣嗜馬通, 橐駝嗜鹽,..

오늘날 한국 사회는 일종의 야만사회가 되고 있다. 동물과 인간이 다른 것은, 인간은 염치와 부끄러움을 안다는 점이다. 사실 동물이 탐욕스럽게 보이기도 하나, 대다수 야생 동물은 자기가 취할 정도의 먹이만 거두지 더 이상의 탐심을 발휘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게걸스럽게 자신의 먹이보다 훨씬 더 않은 재물이나 권력ㆍ명예 등을 욕심낸다. 미래라는 환상을 인간이 인식하기에 생기는 일종의 병리현상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한국 사회에 일종의 《선비정신》이 통용되었다. 자신만의 이익이나 자신이 속한 정파나 집단을 위해서 말도 되지도 않는 주장은 염치와 부끄러움을 알기에 아예 꺼내지도 못하던 정상적인 일종의 도덕률이 지배하던 사회였다. 그러나 작금 일어나는 사태는 어떠한가. 다수를 차지하면 헌법 같은 기준선은 염두..
또한 모두 맛이 있다 亦皆有味 역개유미 - 정약용(丁若鏞, 1762~1836),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 제12권 「나씨가례집어서(羅氏家禮輯語序)」 해 설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오랜 유배 생활 속에서 독서와 저술에 힘을 기울여 자신의 학문 체계를 완성했다. 「나씨가례집어서(羅氏家禮輯語序)」는 다산 초당으로 정약용을 찾아온 나경의 『가례집어』에 써준 머리말이다. 정약용은 ‘나씨가례집어서’에서 책을 만드는 것은 다양한 음식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이야기했다. 비슷한 책이 있다고 해서 10년 동안 정성을 쏟은 책을 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콩과 조는 하늘이 내린 맛좋은 곡식이다. 그것을 쪄서 술을 만들어도 맛이 있고, 끓여서 떡을 만들어도 맛이 있다. 또 다양한 ..

바름을 해치는 자는 반드시 다른 이를 사악(邪惡)한 자로 몰고 자신은 바르다고 자처하며, 나아가 동류를 불러 모아서 숨을 모아 산을 날리고 모기 소리를 모아 우레 소리를 낸다. 害正之人, 必驅人於邪, 自處以正, 至於招朋萃類, 衆呴飄山, 聚蟁成雷. 해정지인, 필구인어사, 자처이정, 지어초붕췌류, 중구표산, 취문성뢰. - 최한기(崔漢綺, 1803-1877), 『인정(人政)』권2 「측인문(測人門)2」 해 설 이 글은 조선 말기의 문인인 혜강(惠岡) 최한기의 『인정』 「측인문」에 실린 문장이다. 『인정』은 일종의 정치 에세이로, 정치에 있어서 사람을 감별하고 선발하는 원칙을 제시한 책이다. 당대의 위정자(爲政者)를 염두에 두고 기술된 것이기는 하지만, 인간과 인간 사회의 본질에 관한 통찰이 두루 담겨있다는 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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