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천강문학상 우수상 장롱 한 짝을 들였다. 친정집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자리만 차지하던 장롱이다. 앞은 느티나무에 옆과 뒤는 오동나무로 된 전통 방식의 맞춤이다. 비록 유행이 지나고 낡았지만 합판에 무늬 필름을 덧씌운 가구보다 나을 것 같았다. 장롱은 부모님과 오래도록 한 방에서 숨을 쉬었다. 연륜이 있는 물건으니 내력을 품어서 그런지 곳곳에 부모님의 숨소리가 배어있는 듯하다. 두런두런 나누는 말이며 갸릉갸릉 가래소리와 쿨럭쿨럭 기침소리 그리고 얼굴에 새겨진 주름까지 느껴진다. 물걸레로 닦고 광택제로 문지르자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삶의 무늬가 깨어난다. 물결일까, 바람의 무늬일까. 아니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세상의 등고선일까. 이쪽에서는 산모롱이를 지나는 물처럼 유려하게 휘돌고 저쪽에서는..
바닥론(論) / 최미지 제4회 2012 천강문학상 대상 바닥은 한 번도 무엇을 밟고 일어선 적이 없다. 태곳적부터 오체투지의 자세로 모든 존재의 무게를 떠받들고 산다. 퇴화된 눈으로 세상을 보나 말하지 못하는 입을 가졌고, 우격다짐으로 삼킨 눈물은 귓바퀴를 두드리다 돌아나간다. 날선 울음으로 온몸을 곧추세우고, 묵상에 잠긴 밤하늘의 독백을 듣는다. 농밀한 어둠은 본능적으로 감지할 뿐 함부로 건드렸다간 절벽 아래로 처박히는 수가 있다. 조심하라. 붉은 심장의 박동소리 같은 것은 없다. 그렇다고 죽은 것은 아니다. 지렁이 한 마리가 땅속 집을 빠져나와 용케 차도로 기어오른다. 화물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지나간다. 헐떡이는 숨을 깊게 들이마신다. 한나절 땡볕에 달궈진 지열이 화끈거리는지 길을 움츠렸다 폈다,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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