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제12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반곡지(盤谷池)에 가면 사랑에 빠진다. 누구라도 그렇다. 어떻게 그렇게 자신하냐고 묻는다면 내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면 알 수 있다, 고 대답한다. 자식인 내가 지켜본 두 분은 닮은 구석이 전혀 없다. 같이 살아도 따로 사는 것과 진배없다는 말이다. 그런 두 분이 반곡지에 서면 달라진다. 해서 삶의 불화가 일어나거나 적이 불편하다면 반곡지로 가 볼 일이다. 아버지의 말씀이다. 1968년 여름이었다. 네 어머니를 만난 때가. 1·21 사태가 일어나고 예비군법이 새로 만들어진 해였지. 참 오래된 이야기다. (아버지의 얘기는 주로 군대와 관련되어 시작되는데 아마도 해병대 출신인데다가 K2 공군부대 군무원으로 근무하신 탓이지 싶다.) 맞선 자리가 들어왔으니, 시간..

2021년 제12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우리는 매 순간 꿈을 향해 나간다. 꿈이 없는 사람은 삶의 의미도 반감되기 마련이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꿈을 꾸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발해가 멸망한 지 천년이란 세월이 훌쩍 지났음에도 그 옛날 영광을 되찾으려는 사람이다. 그들이 모여 사는 경상북도 경산시 발해 마을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그들은 어디서 온 누구일까. 발해를 건국한 사람은 고구려 후예들이다. 고구려가 신라에 나라를 넘겨준 후 그들은 두만강을 건너 요동 땅으로 가서 발해라는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 696년 건국해 230여 년을 부국강병 국가로 성장했다. 바다 동쪽의 번창한 나라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불리며 부유하게 살던 발해가 어느 날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멸망한 계기는 여..

2021년 제12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코로나19가 창궐한다. 직장, 식당, 체육관 어디를 가도 안전한 곳이 없다. 바깥을 나가려면 마스크를 끼어야 하고, 집에만 머물자니 숨이 막힌다. 이 재난에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어 인터넷에 들어가 여행기를 읽는다. 어딘들 나를 끌어당기는 곳이 있으면 재난을 피해 가볼 심산이다. 재난이 들지 않는 곳은 어떤 곳일까. 내로라는 명승지는 거의 다 가봤어도 삼재불입지는 생소하다. 가고 싶은 곳, 찾고 싶은 것, 궁금증이 머리끝까지 솟아올라 좀체 가라앉지 않는다. 인터넷을 뒤적이며 이것저것 알아본 뒤 날을 벼르다가 봉화 춘양에 있는 각화산으로 핸들을 돌린다. 각화사는 신라 신문왕 때 원효가 지은 절이다. 인근에 있던 남화사를 옮기면서 ‘그 절을 생각한다’는 ..

2021년 제12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우리나라 역사는 한의 역사라고 한다. 한을 노래하는 가사에는 강이 자주 나온다. 강에는 나루가 있고 둥구나무도 있었다. 우리나라에는 포(浦) 또는 진(津)으로 된 지명이 많다. 마포, 삼랑진 등이 대표적이다. 나는 그런 곳으로 가서 회상에 잠기기를 좋아한다. 이는 곧, 아픈 역사는 강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라는 관심이었다. 옛 나루에서의 나는 오늘도 그날을 떠올린다. 내가 생각에 잠기자 강물은 이내 화면으로 바뀐다. 화면에서는 한 노파의 얼굴에 많은 인파가 오버 랩(Over Lap)되면서 나타난다. 그랬다. 나루에는 사람이 많았다. 오고 가는 사람들로 포구는 늘 붐빈다. 그런데 사람보다 더 많은 것이 이별과 가난에 따른 한이었다. 사람들 옷에 걸쳐져 있는..

2021년 제12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문수암으로 가는 중이다. 현불사를 지나서 백천계곡 길이다. 기암괴석과 산 그림자는 맑은 물에 모습 드리우고 단풍이 한바탕 잔치를 벌이고 있다. 사람들은 화려하고 불타는 듯한 단풍의 물결이 매혹적인 설악산 천불동 계곡 쪽을 많이 찾는다. 하지만 나는 태백산 백천계곡 단풍터널을 위 반열에 올린다. 은은하고 고즈넉하기까지 하여 더 가깝게 다가오고, 조용히 사색에 젖을 만하기 때문이다. 백천계곡에서 가장 검붉게 물드는 것은 당단풍나무 잎이다. 빨간 것은 회나무이며 불그스름한 것은 복지기나무이다. 산벚나무 잎은 붉은 듯 갈색을 띤다. 노란 것은 생강나무 잎이며 노르끼리한 것은 산겨릅나무와 함박나무이다. 같은 단풍도 위치와 환경에 따라서 이렇게 여러 가지로 다른 색..

2021년 제12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초록 연잎 위에 영롱한 물방울이 동글동글 맺혀 있다. 부처님이 세상을 밝히라고 보내신 전령인가, 받들어 올린 꽃대 위에 수천의 연등이 불을 밝힌다. 지금 나는 동궁과 월지 연꽃단지에 있다. 산책로에 넘쳐나는 사람들이 제등행렬을 하는 듯하다. 연꽃마다 사월 초파일 절 마당을 밝히던 연등과 겹쳐진다. 부처님의 가피력을 청한다. 사상 유례없는 역병을 소멸하고 마음이 맑아지게 해 달라고. 바람이 연꽃 대궁이를 흔들지만 아직 이르다고 침묵하는 봉오리에서도 촛불의 불꽃이 어린다. 만개한 꽃이 향기를 날리다가 가장 아름다울 때 자신을 버리고 씨앗을 잉태한다. 연밭을 빛나게 하는 것은 연잎과 꽃봉오리나 활짝 핀 꽃만이 아니다. 조신하게 내생을 기다리는 연실(蓮實)을 품..

2021년 제12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어디서 불길이 치솟는가. 온 나라가 폭염으로 용광로인 양 달아오른다. 한여름 땡볕을 이고 군위 승목산 봉수대 입구에 다다랐다. 직경 한 팔 정도는 됨직한 구덩이가 먼저 눈인사를 한다. 농구공만 한 크기의 네모난 돌들이 손을 맞잡고 둥그렇게 앉아있다. 석축 위로 올라섰다. 가운데가 움푹 파인 것이 우물이나 뒷간처럼 보인다. 몇 가지 확인하고자 ‘불길 순례’의 저자 운봉 선생에게 신호를 보냈다. 우물 같은 걸 찾았다고 하니 그게 아니란다. 그럼 화장실? 그것도 아니고 불을 피우던 ‘연조’란다. 기와 파편과 무너진 돌들이 여기저기서 나뒹굴었다. 봉수군이 살던 집터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봉수대는 그 본래의 모습을 찾기가 쉽지 않다. 800여 년 간 유지해오던 ..

2021년 제12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문경 새재를 걷는다. 이 길은 한양과 영남을 잇는 고갯길이다. 영남 사람들은 지역에 따라 추풍령과 죽령을 넘으면 쉬운데, 문경 새재만 고집했다고 한다. 추풍령과 죽령은 이름에서 풍기는 속설이 안 좋아서 그렇단다. 문경은 이름에 ‘경사를 전해 듣는다’는 의미가 있으니, 은근한 기대감을 품고 넘었을 것이다. 그런데 꼭 그런 이유만일까. 멀리 있는 산들의 표정이 다양하다. 강직한 선비처럼 의연하게 앉아 있다. 산맥을 따라 흘러내린 큰 산들은 다시 작은 산을 키우고 이렇게 만들어진 능선 아래 아늑하게 길을 만들었다. 힘든 과거 길에 눈에 들어오는 것이 온통 아름다운 산세와 맑은 풍경이다. 이런 풍경에 마음은 넉넉해지고 발길이 가벼워 이 길을 찾았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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