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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득 코너

약계(藥戒) / 최충성

부흐고비 2008. 7. 29. 14:04

 

약계(藥戒)


장부(臟腑)에 병이 든 사람이 있었는데 평소에 양의(良醫)를 만나지 못함을 한스러워 하다가도 만나게 되면 번번이 병을 숨기고 의사를 꺼려하였다. 그 까닭을 물었더니, 독한 약이 두려워서라고 하길래 그렇다면 왜 양의 못 만남을 한하느냐고 한즉, 아파서라고 하였다. 이에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자네는 병의 아픔만 알고 더욱 큰 죽음의 고통은 알지 못하는구먼. 죽음의 고통을 안다 면 어찌 약이 독하다고 두려워하겠는가. 대저 병이 깊어질수록 아픔은 점점 더 커지는 것이며, 약도 더욱 독하게 써야지만 치료할 수 있게 된다. 이제 자네의 병은 나날이 깊어지고 의사는 나날이 멀리할 것이니, 죽도록 앓다가 어느 날 죽을지도 모를 것이니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자네가 경계해야 할 것으로 또한 나라 다스리는 이를 경계할 만하다.

대저 천하를 한 사람으로 본다면 사해(四海)는 사람의 몸뚱이고 만민(萬民)은 사지(四肢) 이며 조정은 복심(腹心)이며 교령(敎令)은 후설(喉舌)이며 기강(紀綱)은 명맥(命脈)이다. 재상(宰相)이란 사람의 팔다리가 되어 음양을 섭리하여 명맥을 조화롭게 하는 것이며, 장사(將士)란 사람의 손발이 되어 외부의 환란을 방어하여 복심을 호위하는 것이며, 군주란 사람의 머리와 이목(耳目)이 되어 험란함과 평탄함, 옳고 그름을 보고 들어 사체(四體)를 편안케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목을 밝히고 손발을 움직임에 팔다리를 신임한 다음에야 몸이 편안할 수 있다. 만일 하나의 기운이라도 조화롭지 못하면 온갖 질병이 생기게 되니, 그 병이 생기게 되는 원인을 살펴서 치료하고 약을 쓰는 것은 간관(諫官)이다. 그런데 병이 든 군주가 약 쓰는 것을 싫어하다가 결국은 구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니,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처음 병이 생길 때는 이목이 어둡고 어지러우며 팔다리와 손발이 시들고 마비되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 이러한 때에 사해는 비록 편안하다고 하더라도 복심의 형세는 위험하여 아슬아슬한 것인데, 그러한데도 군주는 안일에 젖어 양약(良藥)이 입에 쓴 것만 싫어하고 질병이 생기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므로 의사를 꺼리고 질병을 숨기게 되니 숨기는 질병은 날로 더욱 깊어져 복심이 팽만해지고 후설이 막히며 명맥이 동결되어 신체가 거꾸러지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때에는 편작(扁鵲)이 있다 하여도 어쩔 수 없게 될 뿐이니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장차 위에서 정치를 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내말을 마음에 담아두고 병객(病客)이 경계하여야 할 것으로 경계를 삼는다면 국가를 다행히 다스릴 것이다.

어찌 국가뿐이겠는가? 사람이 다스려야 할 것으로 병들지 않는 것이 없다. 약손가락 하나가 굽어져 펴지지 않으면 아플 것도 일에 지장이 있을 것도 아닌데 그 손가락 하나에 신경을 쓰면서 어깨나 등은 망각하고 있으니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지에 병이 없고 이 목에 별탈이 없다 하더라도 천군(天君 : 마음)이 편안하지 못하여 유혹에 이끌려 안정을 얻지 못하고 애태우게 된다면 일신의 질병으로 이보다 큰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모든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질병으로 여기지도 아니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여 약을 쓰지 않다가 마침내 심신이 거꾸러지게 되고 사체를 보존하지 못하게 되니 어찌 경계하지 않을소냐. 그렇다면 어떻게 약을 써야 할까. 그것은 오직 성(誠)과 경(敬)이 아니겠는가."

아, 경계할지어다. 나는 병객에게서 세 가지의 경계를 깨닫게 되었노라.

최충성(崔忠成, 1458∼1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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