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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득 코너

사부인께 / 송숙자

부흐고비 2008. 7. 31. 05:37

 

“사부인께!”

뒷산 산책길에 계절은 어김없이 하얀 찔레꽃을 초여름 전령으로 보냈나 봅니다.

찔레꽃이 피면 먼 산에는 새벽부터 가끔씩 뻐꾸기가 웁니다. 뻐꾸기 울음소리는 어쩐지 시집간 딸이나 누이를 생각나게 하지요. 사부인께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 어렵게 펜을 들었습니다.

하필이면 지진이 발생한 시기에 중국 여행길에 오르셨다는 새아기 말에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만 무사히 귀국하셨다니 다행입니다.

여독에 몸살은 나지 않으셨는지요?

새아기 편에 사돈댁 소식은 자주 듣습니다. 후덕한 모습의 정이 넘치는 사부인 뵌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자식을 나눠 가졌으니 제일 가까운 사이련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사이가 사돈지간이라고들 말하지요. 기둥처럼 생각하셨을 장녀를 대학 졸업 후 어렵게 입사한 직장도 그만두게 하고 빼앗다시피 데려 왔으니 사부인의 쓰리셨을 속내를 모르는바 아닙니다.

삼십 년 넘게 사시던 집을 헐어내고 새 집을 지으신 해에 딸까지 결혼시키자니 어려움이 무척 크셨을 것입니다. 혼수가 마음에 걸려 삼 년이 지난 후에 김치냉장고를 들여놓아 주시던 사부인! 결혼시킬 당시 저희도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생떼를 쓰면서도 참으로 죄송했었습니다. 사려 깊은 판단을 하시고 무리를 하시면서 혼사를 치러 내신 사돈댁에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사부인!
여식은 시집보내고 아기를 낳아야 마음이 놓이는 것이 우리나라 문화지요. 더구나 사위가 사십을 바라보니 애가 타실 것이 뻔합니다. 차츰 발걸음이 뜸해지시니 아이들이 아기가 없어서인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노심초사하실 사돈댁 눈치를 제가 왜 모르겠습니까? 길 가다가 아기를 보면 예뻐하는 새아기 모습도 가슴이 짠합니다. 거역스러운 약을 삼키는 모습도 안타깝기만 합니다.

새아기를 데리고 불임클리닉을 찾았었지요. 너무나 안쓰럽고 못 할 짓이어서 일년 다녀본 후 제가 말렸습니다. 아기에게 부담 주는 일은 이제 하지 않기로 굳게 마음먹었습니다. 몸이 튼튼해지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따름입니다. 워낙 약한 아기였지 않습니까?

사부인!
아이들이 결혼한 지 아직 십 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하였지요? 늦게 아이를 갖는 부부를 종종 보았습니다. 선한 마음으로 살다보면 우리도 기쁜 날이 있을 것입니다. 저희는 순리대로 살 것입니다. 심려 놓으세요. 저는 아버님이 어렸을 때 돌아가셨기 때문에 아이들 아버지는 장인사랑을 받아보지 못했습니다. 미안하기도 하고 부러워서 훗날 꼭 아들은 장인 사랑을 받게 하리라 마음먹었지요. 사위를 사랑하시는 사장 어른이 계시어 행복해 하는 아이들을 보면 저도 행복해 진답니다.

사부인!
항상 밝고 명랑한 얼굴로 딸처럼 곰살궂게 생활하는 새아기가 정말 사랑스럽습니다. 남편 내조 잘 하고 틈틈이 공부하여 한식조리사, 양식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제빵제과사 자격증도 발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놀지 않고 무엇인가 해 보려는 새아기는 저희 집의 움직이는 꽃이랍니다. 가정교육을 제대로 시켜주시어 사치는 물론 모든 면에서 절약이 몸에 배어 비닐봉투 하나도 아껴 씁니다. 조금 있으면 큰 평수로 늘려 갈 모양입니다.

할머니를 모시고 살아서인지 어른 공경할 줄 알고 모든 면에서 따뜻한 마음이 보여요. 제가 마시던 물 컵을 스스럼없이 마시는 것을 보며 참 고마웠습니다. 감추는 것 없이 모든 일을 다 이야기 해 줍니다. 연말이면 통장도 제게 다 보여주고요. 파도 못 썰던 아기가 맛있는 것 만들면 식을 새라 가지고 달려옵니다. 사부인께서 사시는 모습일 것입니다. 훈풍이 불어오면 꽃이 피고 햇살이 뜨거워지면 열매가 익어 가지요. 우리 아이들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가치 있는 삶의 열매를 키워 갈 것입니다.

사부인!
사돈댁이 농사를 지으시니 단비가 내리면 기쁘고 태풍이 불면 걱정이 됩니다. 농사를 지어보았자 농사비용은 많이 들고 농산물 개방으로 제값도 받지 못하니 소득 없이 고생만 하시지만 그래도 농토를 지키는 사돈댁 같은 분들이 계시기에 마음이 놓입니다. 머지않아 식량으로 고통을 받을 것이라 합니다. 아무리 외국쌀이 좋다한들 신토불이만 하겠습니까? 틀림없이 우리농산물이 우대 받을 날이 올 것입니다. 올해도 재해 없이 풍년들기를 기원합니다. 아이들이 햇볕에서 사시는 친정 부모님 걱정을 많이 합니다. 저도 걱정이 됩니다.

사부인!
제가 한참 연상이니 사돈이라 어렵게 생각지 마시고 언니라 마음 편하게 생각하시면 안 될까요? 저를 믿고 모든 염려놓으세요. 절대로 새아기 시집살이시키거나 마음 다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농사일 끝이 없으실 것이나 틈나시면 한번 다녀가십시오. 늘 편안하시기를 빕니다.

2008년 5월 明雲母 드림

송숙자
제9회 보은의 달 편지쓰기대회, 일반부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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