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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득 코너

김시습과 남효온의 편지

부흐고비 2008. 7. 30. 08:33

 

남효온에게(與秋江書)


어저께 선생과 함께 하루 종일 아름다운 자연 속에 노닐다가 맑은 개울가에서 작별하였소. 우리 사이에 오가던 감흥은 끝나지 않았는데 그렇게 빨리 헤어지게 되어 아직까지 마음속의 미련을 못 버리겠소. 선생과 이별한 지 수일이 경과하도록 이 아름다운 자연과 문장 그리고 술에 대한 의논을 할 사람이 없소이다. 이른바 사흘 동안만 도덕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못하면 혓바닥이 굳어진다고 하는데, 두어 봉우리 청산(靑山)과 한 조각 떠다니는 구름만이 청하지 않은 벗이 되고 말없는 짝이 되어 변함없이 나와 마주하고 있소. 이것들이 모두 나의 십 년 지우(知友)들이라오.

선생께서 계신 성중(城中)에도 이런 벗들이 있소? 선생은 만나서 신선의 세계를 이야기하고 헤어진 뒤 고결한 인품을 흠모할 만한 무리를 날마다 접하겠지만 나는 그러지 못하니 우습소이다.

말씀드릴 것은 지난번에 만났을 때에 선생께서는 술을 끊었다고 하였소. 곧 하늘에 있다는 주성(酒星:술을 주관하는 별. 이백의 시에 나오는 말)을 가두고, 과거에 술 취한 날들은 진시황의 구덩이에 넣어 불태워 버리고 싶다고 하였소. 그 의도는 훌륭하다면 훌륭하오. 저 폭군으로 유명한 하(夏)의 걸(桀)왕이나 은(殷)의 주(紂)왕도 술로써 망하였고, 진(晉)·송(宋) 같은 나라의 선비들(죽림칠현 등)도 이것 때문에 나라를 어지럽혔소. 말할 것도 없이 술은 만대에 경계할 물건이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변명할 만한 말은 있소.

술의 본래 임무는 조상에게 제사지내고, 손님을 접대하며, 노인을 봉양하고, 복을 비는 것이었소. 그러니 인간 생활에 있어서 복을 빌자면 술이 꼭 필요했던 것이오. 술이 본래부터 사람을 나쁘게 만들어 패가망신하는 도구로 생겨난 것은 아니라는 뜻이오. 그리고 옛사람들은 술을 빚을 때에 쓴 술만을 만든 것이 아니라오. 맑고 순한 술도 만들고 달게 만든 단술도 만들어 그 종류를 다양하게 했던 것이오. 그것은 술에 취하여 이성을 잃고 난잡해지지 않도록 하려는 의도였소. 게다가 술을 먹는 데 있어서 예절을 까다롭게 정하여 술 한 잔씩을 나눈 뒤에 백 번씩 절을 하게 함으로써 종일토록 마셔도 취하지 않도록 하였소. 그러다가 그것도 부족하여 술을 먹는 제도를 만들었는데 옛날 제왕들도 좌우에 감시하는 사람을 세워 놓고 술을 많이 먹는 것을 경계하였소. 이것은 고전인 『시경』이나 『서경』에 실려 전해 오는 사실이오.

그러면 우리가 술을 먹어야 하는 경우를 열거하여 봅시다. 제사를 지내면 음복(飮福)을 하여야 하고, 집을 지으면 낙성식을 하며, 손님을 초대하면 환영식을 하고, 사람이 길을 떠날 때에는 환송연을 열지요. 활을 쏘는 데는 향사례(鄕射禮)가 있고, 시골 마을에는 향음주례(鄕飮酒禮)가 있으며, 집에서는 부모를 술로써 봉양하여야 하고, 오래도록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축수(祝壽)를 하는 예가 있소. 술을 가지고 우리가 행해야 할 도리가 이렇게 많소이다.

이러하거늘 염치불고하고 웃저고리를 벗어 던진 뒤에 함부로 지껄이며, 마치 짐승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더러 있소. 이것은 술의 본래 기능이 아니오. 이러한 사람은 술의 좋은 점을 이용하지 못하고 술 때문에 화를 자초하는 자들이오. 그렇다고 이러한 것들 때문에 술을 전혀 끊어 버린다는 것은 마치 밥을 짓는데 불을 때지 않겠다는 것과 같소. 곧 한평생 익은 밥은 먹지 않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소. 그러니 술에 흠뻑 빠져서 패가망신하는 것이야 논할 필요가 없지만 그렇다고 술을 전혀 끊는다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오. 군자가 지켜야 할 중용(中庸)의 도리에 맞지 않다는 뜻이오.

만일 술을 끊는 것이 타당하다면, 『논어』에 이르기를 “술이 아무리 많더라도 정신을 어지럽게 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는다.” 하였고, 또 “술로 인하여 때로 곤경에 빠질 때가 있었다.”라고 하였겠소? 그리고 옛날 위무령공(衛武寧公)은 술의 해(害)를 깊이 뉘우치고 이르기를, “석 잔만 마시면 정신이 혼미한데 어찌 그보다 더 많이 마시겠는가?” 하였으니 위무령공도 술을 완전히 끊지는 않고 다만 삼가기만 하였던 것이 아닌가 하오.

지금 선생께서 만일 술로써 지켜야 할 예절을 저버린다면 이는 임금이나 어버이를 버리고 종족을 멀리한 뒤에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살아야 가능한 것이오. 예절과 문물이 오늘날과 같은 세상에 살면서 옛사람이 가르치는 효도와 충성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불가능한 일이오. 그래, 아무리 술을 한 잔도 안 마신다지 만은 제사에 음복도 하지 않겠소? 잔치 자리에 가서 축하 술 한 잔도 안 마시겠소? 부모님을 봉양할 때에 음식 맛도 먼저 보지 않겠소? 그러니 절약한다든가 삼가는 것은 할 수 있는 일이지만, 평생토록 완전히 금주한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소. 선생의 생각은 어떠하오?

게다가 지난번에 내가 선생의 얼굴을 보니 옛날보다 더 여위었소. 기운도 부치는 것 같았소. 아니 많이 초라해 보였소. 만일 내가 본 것이 맞다면 살아 계신 자당께서 반드시 근심하실 것이오. 옛날에 부모를 즐겁게 하려고 병아리를 놀리다가 일부러 자빠진 효자도 있다고 하지 않소? 효자가 어버이의 뜻을 거슬러서야 되겠소? 그러니 술을 금하여 부모에게 근심을 끼치는 것은 효자가 취할 도리가 아니오. 사랑과 공경으로써 어버이를 섬겨야 된다는 교훈은 선생도 익히 아는 바이오. 그러니 넓은 도량으로 살펴보시오.

바라건대 이 편지를 자당에게 보여 드려 선생의 자당으로 하여금 곧고 진실하고 또 선생을 아껴 주는 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려 드리시오. 그리고 선생께서는 어버이의 뜻에 순종하고 벗을 믿는 마음을 보여 드리시오.

전번에 허락해 주신 약품 ‘신령(神笭)’ 약간을 이 편지를 가지고 간 사람 편으로 좀 보내 주시오.

삼가 몸 부중하시기를 빌며 이만 그치오.


김시습『추강집(秋江集)』


김시습에 답함(答東峯山人)

며칠 전에는 선생에게 너무나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돌아오던 날에는 저 옛날 원혜대사가 도연명을 전송할 때에 자신도 몰래 호계(虎溪)를 건넜다는 고사와 같이 알뜰한 배웅을 받았습니다. 돌봐 주신 과분한 은혜에 더할 수 없이 감사드립니다. 게다가 저와 같은 천한 사람을 욕하여 물리치지 않으시고 도리어 지혜와 학식이 있는 사람으로 취급하시어, 앞으로 몸을 닦고 나아갈 방향을 안내하여 주시며, 옛 성인들의 말을 인용하여 반복 훈계하여 주셨습니다. 스스로 생각건대 이 은혜를 평생에 갚을 길이 없을 듯합니다.

그런데 제가 일찍이 듣자오니 천근이 아무리 무겁더라도 맹분(孟賁:춘추 시대의 용사) 같은 이는 가볍게 들고, 깃털 하나가 아무리 가벼워도 초파리가 들기에는 무겁습니다. 왜냐면 힘의 강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행실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용히 행하여도 법도에 맞는 사람이 있고, 있는 힘을 다하여 억지로 행해야만 비로소 법도에 맞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억지로 행하는 자가, 법도에 맞게 조용히 행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억지로 행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타고난 기질이 모자라서 남보다 백배는 노력해야 따라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술의 이해(利害)에 대해서는 오경(五經)이나 자사(子史:제자백가 및 사기) 등의 책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곧 적당한 양의 술이 가져다주는 이로움을 열거해 보면, 손님을 접대하는 데 좋고, 노인을 봉양하는 데 좋고, 일상생활에 활력을 주어 좋고, 천지 귀신과 교감하여 좋습니다. 그리고 또 근심 걱정을 풀어 주고, 초조함과 답답함을 안정시키며, 천지와 함께 조화를 이루고, 만물과 함께 변화를 추구합니다. 그리하여 옛 성인들과도 사우(師友)의 입장으로서 사귈 수 있으며, 오랜 세월 동안 한가로움을 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술을 과음함으로써 오는 해로움은 다음과 같습니다. 죄수처럼 머리를 풀어 헤치고 요란스레 노래 부르며 춤을 춥니다. 조심하고 예절을 지켜야 될 자리에서 소리 지르고 자빠지며, 지켜야 할 체면을 돌보지 않습니다. 심하면 공연히 눈을 부릅뜨고 남에게 싸움을 걸어 작게는 목숨을 잃고, 크게는 집안을 망치며, 아주 크게는 나라를 망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술의 피해가 이러하건만 주공(周公)이나 공자 같은 성인이 마시면 난잡하지 않아서 술에서 얻는 이득이 앞서 말한 것처럼 많습니다. 그러나 진준(陳遵)이나 주의(周?) 같은 이가 마시면 자신의 목숨을 잃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술을 마셔 얻는 이해가 애초에는 아주 작은 데서 출발하지만 그 결과는 이렇게 크게 나뉩니다. 신중하지 않아서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中下)의 등급에 있는 사람은 중심이 굳지 못하고 절제할 줄을 몰라서 그 달콤한 맛의 유혹을 남에게까지 옮겨 주어 날이 갈수록 위험해지다가 마침내는 패가망신하게 됩니다. 그러면서도 그 패가망신의 원인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선비가 되어 의지가 굳지 못한 자는 마땅히 중심을 다잡아 난잡한 마음의 싹을 끊고 평범한 삶보다 백배의 노력을 한 뒤에야 이 화를 면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서경』에는 술을 경계하라는 ‘계주(戒酒)의 고(誥)’가 있고, 『시경』에도 역시 ‘빈연편(賓筵篇)’이 있으며, 양자운(揚子雲) 같은 이는 좌우명을 지었고, 범로공(范魯公)은 시로 써서 경계하였습니다. 제가 어찌 예절에 알맞게 적당히 술을 마시고 싶지 않겠습니까? 다만 의지가 약하고 덕이 모자라서 그 술 맛에 유혹되어 절제하지 못한 결과 정신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초파리가 깃털을 이길 수 없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술을 무척 좋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중년에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많은 나무람을 들었습니다. 결국에는 주광(酒狂)이 되어 자신의 본분을 영구히 잊어버리고 몸과 마음이 술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정신은 옛날에 비하여 흐려지고 도덕은 처음 먹었던 마음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결국 집안에까지 화가 미치고 어머님을 수치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맹자께서 이르시기를, “장기, 바둑과 같은 도박이나 술을 잘 마셔서 부모를 돌보지 않는 것은 불효한 것이라.”고 한 말씀은 그만두고라도, 술에 미친 지경이 되었으니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술이 깬 뒤에 생각해 보니 그 죄는 3,000가지의 죄목 가운데 가장 큰 불효죄인 것입니다. 무슨 면목으로 다시 술잔을 들겠습니까? 그리하여 하늘과 귀신에게 맹세하고 마음속으로 결심한 뒤에 어머님에게 말씀드리기를, “앞으로는 임금님이나 부모님의 명령이 아니면 절대로 마시지 않겠습니다.” 했는데 이는 취하는 것을 증오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사를 올리고 술잔을 드는 음복이나 수연에서 수작(酬酌)으로 올리는 단술 같은 것들은 체면을 살리고 위장을 부드럽게 적셔주는 것인데 제가 어찌 거절하겠습니까? 저의 뜻은 대략 이와 같습니다. 그런데 선생께서 비록 술을 권하는 말씀이 있다고 한들 제가 약속한 것을 어길 수야 있겠습니까? 혹 제가 한 말은 어길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저의 마음을 어떻게 속일 것이며, 마음은 속인다손 치더라도 귀인을 어떻게 속이겠습니까? 또 귀신은 속이더라도 천지는 어떻게 소홀히 대할 것이며, 천지는 소홀히 대하더라도 저의 몸은 어떻게 소홀히 할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어머님께서는 평소 술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제가 술을 끊겠다고 했더니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그렇거늘 술을 끊겠다는 맹세를 어찌 바꿀 수 있겠습니까? 선생께서는 평생 동안 술을 마시지 않았던 저 한나라의 목생(穆生:후한 사람으로 왕이 술을 대접하자 벼슬을 버리고 떠남)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시 한두 자 적어서 가르쳐 주십시오.

너무도 더운 중하지절(仲夏之節)에 선생께 만복이 깃들이시기를 삼가 기원하며, 조제한 약품 ‘신령(神笭)’ 한 봉을 올립니다. 신선 세계의 세월을 혼자서만 누리지 마십시오. 신비스러운 방법으로 여윈 육체를 겸하여 구제하십시오.

남효온『추강집(秋江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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