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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득 코너

속태, 악태, 추태 / 권섭

부흐고비 2008. 8. 18. 21:10

 

속태, 악태, 추태


1. 속태(俗態)
○ 사람을 만나자마자 바로 이름과 자(字)를 묻는다. ○ 사람을 만나서는 불쑥 “오래도록 큰 명성을 들어왔습니다.”라고 말한다. ○ 빈궁한 처지를 돌보아 주지도 않던 사람이 “어떻게 살림을 꾸려 가시는지요?” 하고 묻는다. ○ 병자의 집에 이르러 “무엇을 드시고 싶은지요?” 하고 묻는다. ○ 상갓집에 가서 “제수를 어떻게 장만하시는지요?” 하고 묻는다. ○ 청탁 편지에 “오직 당신만을 믿으니 범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쓴다. ○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말할 만한 것이 못 된다”는 말을 예사로 쓴다. ○ 남의 집에 가서 낯선 사람과 번갈아 절한다. - 이 글은 ‘남의 집에 갔을 때 앉아있던 손님이 절하고자 하는데 상대를 해주지 않는다.’로 바꿔야 한다. ○ 가난을 말한다. ○ 병을 말한다. ○ 조금 이롭지 않게 되면 자신의 궁한 운명을 한탄한다. ○ 하문하면 바로 가서 뵙기는 하나, 끝내 자기가 한 말을 실천하지 않는다. ○ 부채를 흔들며 거드름 피운다. ○ 갓끈을 매만지고 허리띠를 만지작거린다.

2. 악태(惡態)
○ 남의 집에 가서 문서를 뒤져 본다. ○ 남이 숨기고 싶어 하는 일을 억지로 캐묻는다. ○ 남의 동정을 뒤따라가서 찾아낸다. ○ 남이 자신에 관해 말했다고 들으면, 그 말의 뿌리를 끝까지 따져 묻는다. ○ 남의 물건을 빌리고는 반드시 “물건이 있을 줄 분명히 알았어!”라고 말한다. ○ 남의 부인이 아픈 것을 묻고는 그 증상을 캐묻는다. ○ 문호를 출입할 때 큰 소리를 낸다. ○ 남과 마주 앉을 때 반드시 무릎을 바짝 붙이려 한다. ○ 많은 사람 속에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 ○ 입에서 나오는 대로 장황하게 말하며 남의 이야기는 귀담아 듣지 않는다. ○ 길에서 어른을 만나 어디 가느냐고 묻는다. ○ 어른에게 행동이 느리니 빠르니 따진다. ○ 어른 앞에서 비슷한 또래끼리 왁자지껄 인사를 나눈다. ○ 모임에 서둘러 나가지 않는다. ○ 남이 읍에 간다는 말을 들으면 반드시 재빨리 달려가 그 자리에 낀다. ○ 남이 주는 물건을 받고는 도리어 “좋은 물건이 아니군요!”라고 말한다. ○ 말끝마다 아무개 벼슬아치가 자신과 친하다고 말한다. ○ 고을의 수령이 되었을 때 잘사는 고을이 아님을 탄식한다. ○ 역임한 관직에서 잘 대처한 일을 자랑한다. ○ 그 고을의 수령노릇 하는 것이 싫지도 않으면서 체직되기를 바란다고 억지로 말한다. ○ 술이나 음식을 강권한다. ○ 술이나 음식을 요구한다. ○ 남의 집에 가서 오래 앉아 있다. - 특히 일하고 있는 집, 길을 떠나는 집, 병자가 있는 집, 상갓집에서. ○ 남의 집에 가서 말없이 오랜 시간 앉아 있는다. ○ 갈 듯 말 듯하면서 지루하게 말을 끈다. ○ 대청 밑에서 말을 내린다. ○ 억지로 기침을 한다. ○ 말도 꺼내기 전에 웃기부터 한다. ○ 같은 말을 거듭 한다. ○ 청탁하는 말을 하면서 시끄럽게 떠들어댄다. ○ 고상한 선비 앞에서 저속한 말을 한다. ○ 큰 소리를 내며 음식을 씹어 먹는다. ○ 큰 소리로 후루룩 국을 들여 마신다. ○ 크게 꾸짖듯이 재채기한다. ○ 큰 소리를 내며 신을 질질 끈다. ○ 잠자는 사람을 흔들어 깨운다. ○ 책 읽는 사람을 흔든다. ○ 정돈해 놓은 책을 흩어놓고 정리하지 않는다. ○ 책을 빌려가고 돌려주지 않는다. ○ 책을 읽을 때 발음을 분명하지 않게 낸다. ○ 서책을 접어놓는다. ○ 글도 잘 못 보는 사람이 심오한 책을 본다. ○ 식견이 천박한 사람이 고담준론에 끼어든다. ○ 바람이 부네 비가 오네 하며 꾸짖고 욕한다. ○ 추우니 더우니 이상하다고 하면서 탄식한다. ○ 밥이 뜨겁다고 입김을 훅훅 불어 식힌다. ○ 손을 맞잡고서 반갑다고 인사한다. ○ 귀에 대고 비밀을 속닥인다. ○ 남의 글을 보고서 대충 좋다 좋다 말한다. ○ 자신의 작품을 외우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서 선수를 친다. ○ 자신의 작품을 외우며, 먼저 아무개 어른이 칭찬했다고 포장한다. ○ 남의 글을 볼 때 먼저 누구의 작품이냐고 묻는다. ○ 남의 이야기를 불쑥 끊는다. ○ 남의 말을 억지로 뒤집어서 수수께끼처럼 만든다. ○ 담배를 피우면서 대청 구멍에 남은 재를 턴다.

3. 추태
○ 콧구멍을 후벼 판다. ○ 이 사이에 낀 때를 긁어낸다. ○ 손으로 발가락을 문지르고 냄새를 맡는다. ○ 수저를 놓자마자 바로 측간에 간다. ○ 남의 빈 벽에 제멋대로 침을 뱉는다. ○ 아무 데고 오줌을 눈다. ○ 종일 음담패설만 한다. ○ 이를 잡아서 문지방을 더럽힌다. ○ 침을 뱉어 붓에 묻힌다.

권섭(權燮), 〈첨산삼연삼계(添刪三淵三戒)〉, 《옥소고(玉所稿)》

<해 설>-안대회(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김창흡(金昌翕, 1653~1722)의 《삼연집(三淵集)》 〈습유(拾遺)〉 29권에는 ‘만록(漫錄)’이라는 표제로 인생과 학문에 관한 짧은 생각을 펼친 글을 묶어 두었다. 그 뒷부분에 속태(俗態)와 악태(惡態) 70칙(則)이 실려 있다.

권섭(權燮, 1671~1759)이 삼연의 그 글을 보고서 속태에 속한 내용을 악태에 속한 것으로 바꾸거나 악태에 속한 것을 속태에 속한 것으로 바꾸는 것이 좋다는 단서를 달기도 했고, 또 새로운 내용을 첨가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추태(醜態)라는 항목을 설정하여 9칙(則)을 첨가하였다. 전체적으로 삼연의 글에 비추어 22칙(則)이 불어났다.

이 글은 인생을 살면서 겪게 되는 꼴불견의 행태를 모아놓았다. 그런 꼴불견 행동을 기록함으로써 자신은 그러한 우를 범하지 말자는 목적에서 쓴 글이리라. 수많은 사람들이 무의식중에 또는 습관에 따라서 숱한 좋지 못한 행동을 하게 된다. 그런 행동들이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기분을 나쁘게 만들며, 살풍경의 볼썽사나운 장면을 연출한다. 사람 사는 사회에서 남을 배려하는 에티켓을 지키고, 품위를 유지하려면 그러한 행동을 피해야 한다.

이 글을 18세기의 에티켓 문화를 체계화한 이덕무의 《사소절(士小節)》에서 묘사한 것과 비교해보면, 서로 비슷한 점이 많다. 일상생활에서 목도할 법한 피해야 할 행동을, 저속한 행태인 속태(俗態)와 더러운 행태인 악태(惡態), 추악한 행태인 추태(醜態)란 세 가지 범주로 모아 놓았다. 모두가 짤막한 문구로 되어 있다. 그렇다고 아포리즘 또는 경구는 아니다. 한 칙(則) 한 칙이 인간이 사는 세상의 인정물태(人情物態)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더욱이 그 내용은 고전에서 뽑아낸 것이 아니라, 17세기 후반과 18세기 전반의 조선 현실에서 재료를 취해 왔다. 그래서 이 글을 읽다보면 역으로, 조선 사람 특유의 행동방식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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