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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화동 복사꽃 구경 / 서형수

부흐고비 2009. 4. 7. 08:21

 

도화동의 복사꽃 구경

도성의 동쪽으로 나가 북쪽으로 3, 4리를 가면 북적동(北笛洞)이 있다. 북적동은 도성에 가까우면서 명승지로 소문난 곳이다. 봄이 저물 무렵이면 하루라도 거리에 사람이 없는 때가 없다. 나는 천성이 둔하여 도성 밖으로 나가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도성 밖으로 나가는 경우는 어쩔 수 없이 나갈 때뿐이다. 이 날은 어떤 사람이 억지로 독촉하는 바람에 소매와 옷깃을 나란히 하고 느릿느릿 걸어서 북적동에 도착하였다.

북적동 입구에는 드러누운 너럭바위 위로 물이 질펀하게 흐르는데, 물가를 따라 계속 이어져 있어 이곳저곳 골라 밟기도 하고 풀쩍 뛰어넘기도 하였다. 북적동 안으로 들어가자 널찍하던 바위가 길쭉하게 이어지고 질펀하게 흐르던 물은 한 곳으로 모여 골짜기 가운데에서 개울을 이루었다. 개울을 사이에 두고 언덕이 있으며 언덕이 높이 솟아 산을 이루는데 둘레가 거의 몇 리나 되었다. 사이사이에 촌락이 별처럼 드문드문 자리 잡고 있었다.

촌락 너머로 언덕에서 산에 이르기까지 복사꽃이 빽빽하게 피어 있었다. 흰 것도 있고 붉은 것도 있으며, 짙붉은 것도 연붉은 것도 있었다. 게다가 꼿꼿한 소나무와 축축 늘어진 버드나무의 일산이나 병풍 같은 모습이 희뿌연 비와 희미한 안개 사이로 어리비쳤다. 왕왕 꽃잎이 개울로 떨어지면 개울물이 온통 꽃잎과 같은 색으로 변하는 듯하였다.

마을에 김씨 성을 가진 업무(業武: 무관의 서자)가 있는데 나와 구면이다. 개울 상류에서 동쪽으로 꺾어 숲속으로 난 오솔길을 뚫고 그의 집을 찾아갔다. 초가집이 호젓하고 깔끔하여 속세에 있는 집 같지가 않았다. 주인이 나더러 앉으라고 마루를 양보하고는 몸소 술과 안주를 준비하여 정성껏 대접하였다. 조금 있자니 관리들이 말과 수레를 타고 시끌벅적하게 집을 지나가는데 술에 취해 노래하고 춤추느라 먼지가 자욱하였다. 내가 주인에게 말하였다.
“어르신이 이곳에 살면서 어릴 적부터 젊은 시절을 거쳐 늙어서까지 하루라도 오늘처럼 골짜기가 요란하지 않았던 날이 없지요?”

그러자 주인이 말하였다.
“사방의 교외에 명승지로 알려진 곳은 동쪽 교외가 최고인데 동쪽 교외에서도 북적동이 더욱 유명하지요. 아리따운 꽃이 향기를 뿜고 아름다운 경치가 자태를 뽐낼 때면 도성의 남녀들이 미어지지 않는 날이 없지요. 그러다 꽃이 지고 물이 줄면 산은 텅 비어 버립니다. 때때로 오가는 이들이라고는 푸닥거리를 하는 노인이나 빨래하는 아낙네뿐이요, 봇물이 빠진 듯 썰렁하지 않은 적이 없지요.”

나는 객을 돌아보고 말하였다.
“1년 사이에도 땅에 이처럼 성쇠가 있는 법이니, 백년 인생이야 말할 것이 있겠소? 이와 같은 것을 누가 억지로 꾀어서 그렇게 하거나 억지로 빼앗아서 그렇게 한 것이겠소?”

나는 한숨을 쉬며 배회하다가 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이번 여행에서 시를 잘하는 이들은 모두 시를 지었으나 나만 짓지 못하였기에 마침내 그 일을 기록하여 시권의 머리에 얹는다.

서형수1(徐瀅修,1749~1824),〈북적동에서 노닐고 쓴 글(遊北笛洞記)〉,《명고전집(明皐全集)》

 

출처 : 데일리안경기( 영덕군 오십천변의 복사꽃)

  1. 본관 달성(達城). 자는 유청(幼淸), 호는 명고(明皐)이다. 실학의 대가이자 북학파(北學派)의 시조인 서명응(徐命膺)의 아들로, 숙부인 서명성(徐命誠)이 양자로 들였다. 조상의 덕으로 벼슬을 얻는 음보(蔭補) 방식을 통해 선공감가감역(繕工監假監役)으로 재임하다가, 1783년(정조 7) 증광문과에 을과(乙科)로 급제하였다. 지방관인 광주와 영변의 부사로 재직하였으며 1799년 진하 겸 사은부사(進賀兼謝恩副使)가 되어 정사 조상진(趙尙鎭) 등과 함께 청나라에 다녀왔다. 1804년(순조 4) 이조참판, 1805년 경기도관찰사가 되었다. 1806년 벽파(僻派)인 우의정 김달순(金達淳) 등이 김조순(金祖淳) 등 안동김씨 세력의 탄핵을 받고 유배되었다가 사사되자, 이 사건에 연루되어 전라도 흥양현(興陽縣) 등지에서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였다. 1823년 전라도 임피현(臨陂縣)으로 유배지가 옮겨진 뒤, 이듬해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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