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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득 코너

생일잔치의 의미 / 위백규

부흐고비 2009. 5. 13. 07:21

 

생일잔치의 의미


천지가 생긴 지 오래인데 내가 한 번 세상에 태어났으니 행운이요, 수많은 만물 가운데 내가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행운이다. 이 두 가지 행운을 가지고 부모에게서 태어났으니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없고, 태어나 이 몸을 이루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귀한 존재가 없다. 이같이 큰 은혜를 받고 이같이 귀한 존재를 이루어 태어날 날에 태어나게 되었으니, 이 날이 어찌 기쁘고 즐거운 날이 아니겠는가? 예로부터 이 날 잔치를 한 것은 기쁨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이 날을 맞이하여 더 클 수 없는 은혜를 생각하면 부모를 차마 잊을 수 없고, 더 귀할 수 없는 귀함을 생각하면 내 몸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부모를 차마 잊을 수 없다면 내가 어버이를 섬겨야 하는 도리를 알 수 있고, 내 몸을 잊어서는 안 된다면 내가 몸을 수양해야 하는 도리를 알 수 있게 된다.

내가 어버이를 제대로 섬기지 못하고 내 몸을 제대로 수양하지 못하면 눈과 코가 제대로 된 사람의 모습을 지니고 있더라도 절로 사람답지 못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한 번 살아도 허사가 되고 사람으로 태어나도 짐승이 될 뿐이다. 돌이킬 수 없는 삶이 허사가 되고, 거듭날 수 없는 몸이 짐승이 되어 버린다면 이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게다가 우리 부모가 낳고 기르시느라 고생하시고 정성을 다하셨는데 이렇게 사람답지 못한 사람을 낳아서 짐승의 부모가 되고 만다면, 부모는 원통하고 분하여 피눈물이 나고 애간장이 다 녹을 것이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풍속을 따라 술과 음식을 차려놓고 잔치를 벌여 즐기면서 “이 날은 내 생일이다.”라고 한다면 과연 어떻겠는가? 이렇게 짐승으로 태어난 날을 드러내놓고 칭송한다면 하늘의 태양도 성나고 부끄러워 대낮조차 어두컴컴해질 것이다.

백 년 인생에서 이 날은 해마다 돌아온다. 정말 사람의 마음을 지닌 자라면 늘 이 점을 명심하여 어버이를 잊지 않고 내 몸을 잊지 않을 것이니, 스스로 경계하고 두려워할 바가 무엇인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해마다 생일이 돌아오는 것이 어찌 큰 행운이 아니겠는가? 생일을 행운으로 여긴다면 당연히 술과 음식을 차려 놓고서 어버이를 대접하고 형제를 즐겁게 하며 이웃을 불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만약 사람답지 않은 사람인데도 이렇게 잔치를 벌인다면, 이것은 어버이와 형제를 속이고 이웃에게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러면 스스로 경계하고 반성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나와 뜻을 함께 하는 사람 열 몇 명이 의견을 모아서 생일잔치를 함께 하기로 하고 각자 자기 생일날 술과 음식을 차려놓고 초대하기로 하였다. 그러면 한 해 동안 모이지 않는 달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날 태어난 사람은 다른 사람이지만 모이는 모임 이름이 생일회(生日會)이니, 내 마음을 스스로 경계하는 일을 매달 이 날에 할 수 있는 것이다. 1년 12개월 중에 달마다 생일이 있으니 1년 동안 나는 행운을 얻은 사람이 되고, 1,200개월 중에 해마다 생일이 있으니 100년 동안 나는 행운을 온전하게 한 사람이 될 것이다. 내가 과연 행운을 얻어 내 행운을 온전하게 한다면, 내 부모의 행운도 지극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마음을 경계하고 몸을 수양하는 방법은 과연 어떠해야 하겠는가? 사람 중에 더 귀할 수 없는 존재가 성인이다. 옛글에 요(堯)는 신실함과 공경함[允恭]을 말하였으며, 순(舜)은 온화함과 공경함[溫恭]을 말하였고, 우(禹)는 자만하지 말라[弗滿] 하였다. 탕(湯)은 성스러움과 공경함[聖敬]을 말하였으며, 문왕(文王)은 아름답고 공경함[懿恭]을 말하였고, 공자(孔子)는 온화함과 공경함[溫恭]을 말하였다. 공경이란 덕의 기본이다. 이것으로 어버이를 섬기면 효가 되고, 형제와 함께 한다면 우애가 되며, 벗과 사귄다면 조화가 될 것이고, 자녀를 양육한다면 자애가 될 것이며, 사물을 접하면 잘 다스려질 것이다. 더 나아가면 성현이 될 것이요, 못해도 좋은 사람은 될 수 있을 것이니, 부모를 위태롭게 하거나 욕보이는 일은 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공경이라는 말이 겉으로 지나치게 신중하고 공손히 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실천하는 데 요령이 있으니, 《논어》에서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하게 하지 말라.”고 한 것이 그것이다. 우리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각자 이렇게 스스로 힘써야 할 것이다.

위백규(1727-1798)1, 〈생일모임에 붙인 글(生日會序)〉《존재집(存齋集)》
  

선묘조제재경수연도(宣廟朝諸宰慶壽宴圖)_필자미상(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1. 존재(存齋) 위백규(魏伯珪)는 조선 후기 호남을 대표하는 학자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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