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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스승을 구하는 법


예전 사람들은 덕을 보고 스승을 택하였지만, 지금 사람들은 권력을 보고 스승을 택한다. 덕이 있는 사람이 반드시 권력을 갖지 말라는 법은 없겠지만, 대개는 권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정말로 사모하는 것이 덕에 있다면 덕이 나날이 발전할 것이요, 권력에 대해서는 마치 종과 북을 연주하여 가을 풀벌레 울음소리를 없애는 것처럼 그저 즐기면서 잊고 살 것이다.1 이에 비하여 권력을 가진 사람이 반드시 덕이 없으란 법은 없겠지만, 대체로 덕이 없을 때가 많다. 정말로 사모하는 것이 권력에 있다면 권력은 나날이 경쟁이 될 것이요, 그렇게 되면 덕이라 하는 것이 마치 여름날 얼음이 쉽게 녹고 끓는 물에 눈이 쉽게 없어지는 것처럼 어떻게 사라져버리는지조차 알지 못하게 된다. 덕과 권력은 애초에 구분이 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 사모하는 바가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좌우될 뿐이다.

지금 사대부들은 툭하면 인재가 예전 사람만 못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스승에게서 구할 줄을 모르고 재능에서만 찾으려고 한다 . 맹자는 아성(亞聖)이다. 그로 하여금 학교 곁에 나아가 공부를 하게 하지 않았다면 맹자가 오늘 우리가 아는 맹자가 될 수 있었는지 알 수 없다. 아성도 그러한데 이보다 아래인 사람은 말할 것이 있겠는가? 지금 사람들은 어린 시절 똑똑하다고 칭찬을 받다가 장성하여서는 그 명성이 사라져버리고, 명성이 있다 하더라도 어릴 때의 똑똑하던 것을 확충시켜 나가지는 못하고 있다. 이는 스승으로 삼은 바가 스승으로 삼을 바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은 가업이 공부 가르치는 것이어서 ,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다. 가장 뛰어난 자질을 갖춘 사람은 정말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여 자질이 매우 뒤떨어지는 사람 또한 많지는 않다. 요컨대 가르칠 수 없는 사람은 없는 법이다.

돌아가신 조부께서는 집이 매우 빈한하여 초가조차 때맞추어 지붕을 이지 못하여 여름철 비가 내리면 비가 새어 앉아 있을 수 없었고, 겨울이면 얼음과 서리가 벽에 차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보리밥에 나물국도 거를 때가 있었다. 그런데도 서울의 사대부들 중에 찾아와 배우는 이들이 많았고, 모두 담박한 생활을 함께 하면서 고통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성실하게 공부하여 곁을 떠나지 않았기에, 마침내 성취를 이룬 사람이 매우 많았다. 당시에 조부가 스승의 역할을 잘한다고 칭송하였다. 이는 사람들이 사모하는 것이 덕에 있었지 권력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백년 사이에 풍속이 나날이 허물어져 제 집으로 스승을 끌어들여 사육하듯이 하면서 그 자제를 가르치게 하고 있다. 그들의 자제는 평소 교만한 데다 또 사육하는 듯이 하는 권세를 가지고 스승을 대한다. 스승 또한 권위를 세울 수가 없으니, 꾸짖을 수도 없고 회초리를 들 수도 없다. 그저 자기 일만 할 뿐이다. 자제들이 스승을 비하하고 그 가르침을 받으니 정말로 학업이 진보될 리가 없다. 그러면 또 스승이 힘이 없다고 책망하니 이는 썩은 고삐를 주고서 사나운 말을 몰도록 하는 것과 같을 뿐이다. 이 때문에 똑똑한 이들은 이러한 사람을 스승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렇게 스승이 된 자는 다만 무엇인가를 구하는 것만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습관이 이렇게 들고 나면, 장성한 후 산림에서 명망이 높아 권력을 쥘 만한 사람을 가려서 스승으로 삼지만, 한 해가 다 지나도록 학업을 익힌 적이 없고 그저 그 문인이 되었다는 이름만 빌려서 대중들에게 호가호위(狐假虎威)하여 떠벌리게 된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 스승을 재앙으로 모는 이도 많다. 이는 사모하는 바가 권력에 있지 덕에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스승 삼는 일이 또한 어려운 것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자제를 가르칠 때 어디에서부터 시작하여야 하는가? 스승에게 가서 공부를 하도록 하여야 할 것이며, 관사(館師, 가정교사)에게 맡겨서는 아니 된다. 어릴 적부터 스승의 도리가 엄중하다는 것을 안 다음에야 비로소 배움으로 나아가야 옳다. 임금과 아버지는 그 지위가 정해져 있지만, 스승은 정해진 지위가 없다. 오직 도가 있는 바를 스승으로 삼는다. 또 어찌 그 귀천과 존비를 가릴 수 있겠는가? 덕은 자신에게 있는 것이요, 권력은 남에게 있는 것이다. 배우는 사람이 자신을 위한 위기지학(爲己之學)을 해야 하겠는가, 아니면 남을 위한 위인지학(爲人之學)을 해야 하겠는가?

성해응(成海應, 1760∼1839)2, <스승에 대하여(師說)>,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


 

                  서당_단원 김홍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 한유(韓愈)의 위시강성산십이시서(韋侍講盛山十二詩序)에서 제방을 막아 새는 지붕을 막고 금석의 악기를 연주하여 귀뚜라미 소리를 사라지게 한다고 하였다. 군자가 효용을 생각하지 않고 대범하게 생활하는 것을 비유한다. [본문으로]
  2. 연경재(硏經齋) 성해응은 성대중(成大中)과 함께 반듯하지 못한 신분임에도 큰 학문을 이룬 위대한 인물이다. 성해응의 조부 성효기(成孝基) 역시 서얼로 포천에 은거하면서 후학을 가르치는 것으로 업을 삼았던 사람이다. 비록 권력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덕으로 학생을 지도하여 큰 성과를 이루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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