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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남에게 빌린 것 / 이곡

부흐고비 2011. 5. 26. 08:20

모두가 남에게 빌린 것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 중에, 남에게서 빌리지 않은 것이 무엇이겠는가.
人之所有 孰爲不借者 인지소유 숙위불차자
- 이곡(李穀) <차마설(借馬說) > 《가정집(稼亭集)》

[해설]
고려말 학자 이곡(李穀, 1298∼1351)이 지은 차마설(借馬說)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집이 가난하여 말을 빌려 타다가 느낀 점을 얘기하면서, ‘빌린다’는 데 초점을 두고 논의가 점점 확대되더니, 마침내 ‘임금은 백성으로부터 힘을 빌려서 존귀하고 부유하게 되는 것’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임금의 권력이 백성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은 오늘날의 민주주의 개념과 다를 바 없으니 당시로서는 대단히 충격적인, 그리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발언이라 하겠습니다.

권력을 국민에게 잠시 빌린 것, 언젠가 돌려주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지금처럼 권력자가 권력을 이용하여 횡포를 부리고, 비리를 저지르는 일들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요? 이 권력이 절대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깨달음이 오히려 자신을 지켜주는 무기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는 돈에도 똑같이 적용될 듯합니다. 내가 노력해서 모은 것이라지만 그 과정에는 분명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과 가난한 사람들의 피땀, 눈물이 들어갔을 테니, 이 돈을 남들에게 잠시 빌린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비록 자기 돈일지라도 좀 더 값있게, 다른 사람 아프지 않게 쓸 수 있지 않을까요?

환경운동을 하는 분들은, ‘자연은 우리가 후손에게 잠시 빌려 쓰는 것.’이라고 얘기합니다. 정말 그 표현대로 우리만 살고 끝날 세상이 아니라 바로 내 아들딸, 내 손자에게 이어질 세상이라는 데 생각이 미친다면, 참으로 우리는 후손에게 이 자연을 잠시 빌려 쓰고 있구나, 그러니 최대한 깨끗하고 온전한 상태로 돌려줄 의무가 있구나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지금처럼 환경을 함부로 망가뜨리는 일들도 조금은 줄어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최근 터져 나오는 뉴스... 남의 나라, 잠시 빌린 땅... 그 깨끗하고 아름다운 산하에... 저 끔찍한 물질을 함부로 파묻어 버렸다는... 미국 어느 퇴역군인의 폭로가... 우리의 가슴을... 너무나 막막하고... 아프게 합니다.

글쓴이 : 조경구(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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