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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검정

부흐고비 2011. 6. 30. 13:00

 

세검정(洗劍亭)


-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세검정에서 놀며[游洗劍亭]>《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한국문집총간 281집)

 

蕙山 유숙(劉淑,1827~1873)의 세검정도(洗劍亭圖)

 

[해설]
한여름 태양의 뜨거운 열기가 대지를 태울 듯하더니, 어느새 먹구름이 사방에서 일어나고 마른천둥 소리가 멀리서부터 은은하게 울리기 시작하였다. 조정의 동료들과 명례방(明禮坊)의 집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나는 창밖을 내다보고는 불현듯 세검정을 떠올렸다.

“이것은 폭우가 쏟아질 징조이다. 그대들은 세검정에 가보지 않겠나. 만약 가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벌주(罰酒) 열 병을 내어야 할 걸세.”

갑작스런 나의 제안에 모두들 흔쾌히 일어나 말을 타고 나섰다. 광화문 앞 육조(六曹) 거리를 지나 경복궁 서쪽 길을 돌아 창의문(彰義門)에 도착하니 주먹만 한 빗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이내 말을 달려 세검정에 다다르자 수문(水門) 좌우에서는 벌써 한 쌍의 고래가 토해내는 듯한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정자에 올라 자리를 펴고 난간 앞에 앉아 있으려니, 나무들은 미친 듯이 흔들렸고 비에 흠뻑 젖은 몸에는 한기(寒氣)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이때에 갑자기 비바람이 한바탕 크게 일어나더니 산골짜기에서 거대한 물이 흘러내려 눈 깜짝할 사이에 계곡을 메우고 물 부딪치는 소리가 아주 요란하였다. 흐르는 모래와 구르는 돌이 물과 뒤섞여 쏟아져 내리면서 정자의 초석(礎石)을 할퀴고 지나갔다. 그 웅장하고 맹렬한 광경에 놀라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술과 안주를 가져오게 하고 익살스런 농담을 하며 즐기다 보니, 얼마 뒤에 비도 그치고 구름도 걷혔으며 골짜기의 물도 점점 잔잔해졌다. 석양이 나무에 걸리니 붉으락푸르락한 경치가 천태만상으로 변화하였다. 서로를 베개 삼아 누워서 시를 읊조렸다.

이상은 정약용 선생이 1791년 여름 사간원(司諫院)에 재직하고 있을 무렵 세검정을 유람하고 지은 기문(記文)의 대략이다. 조선시대 서울 사람들은 장마철 물이 불 때면 세검정으로 물 구경을 갔다고 한다. 정약용 선생도 세검정으로 물 구경을 가려고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남들과는 달리 비가 내린 뒤가 아니라, 비가 막 내릴 때의 장관을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에 빗속에 말을 달렸던 것이다.

지금 여기 구기동에는 200여 년 전과 같이 비가 내리고 멀리 안개 속에는 선생이 보았을 인왕산 성곽이 어렴풋이 보이는데, 당시 고인들의 자취만은 어디에서도 찾을 길이 없다.

글쓴이 : 양기정(한국고전번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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