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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귀여운 도둑 / 손광성
아들 내외는 돌 지난 손녀랑 서울 상암동 살고, 4남매 출가시킨 우리 내외는 서울서 한나절 떨어진 경기도 용인서 빈 둥지를 지키네.
자주 못 만나면 낯설다고, 낯설면 못쓴다고, 늦어도 두어 주에 한번은 손녀를 데리고 오는데. 와서 두어 주일치 양식이 될만큼 낯을 익혀 두고 가는데, 파자마 바람에 봉두난발로 있다가도 손녀가 온다는 기별이 오면, 나는 면도하고, 샤워하고, 새 옷 단정히 갈아입고 나의 귀한 손님을 맞네.
머물다 가는 시간이야 언제나 복사꽃 피는 봄날이거나 모내기철 내리는 단비처럼 아쉽지만, 제가 부리는 재롱에 내가 커르르 커르르 웃고, 내가 부리는 재롱에 저도 차르르차르르 웃어, 봄 샘물 같은 그 웃음소리에 나는 낡은 재킷 벗듯 잠시 노인을 벗네.
가끔 꼭 쥔 작은 주먹이 궁금해서 가만히 열어 보는데, 지순한 신의 신탁일까. 손바닥에 고물고물 상형문자 같은 손금들.
첫봄에 막 피어난 참 여린 목련꽃 이파리 같기도 하고, 거기에 곱게 나 있는 엽맥 같기도 한데. 그 작은 손이 다녀갈 때마다 집어 가네. 내 마음을 한 줌씩 집어 가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잔고, 마저 가져가라고, 가슴 열어 놓고 기다리네. 나의 귀여운 도둑을.
귀여운 도둑, ㅎㅎ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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