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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대한민국 첫 해가 뜨는 땅, 독도입니다! / 박시윤1


태극기 나부끼는 소리가 천하에 울려 퍼진다. 바람이 불어가는 방향을 따라 힘차게 나부끼는 태극기의 끝단은, 바람의 강도를 가늠케 할 만큼 너덜너덜하다. 거칠게 불어오는 바람에 태극기는 온몸을 산화하며 한반도의 동쪽 첫 땅을 지킨다. 한 올 한 올 바람을 타고 한반도의 어느 땅, 어느 후미진 곳까지 날아가 우리의 첫 해가 뜨는 땅, 독도의 이야기를 전하리라.

태극기와 함께 동도 꼭대기에는 젊은 아들들이 산다. 온몸으로 소금기 서린 해풍을 맞으며, 내 나라 내 땅을 지키는 젊은이들을 우리는 독도경비대라 부른다. 발 디딜 공간 넉넉지 않아도, 두발 딛고 설 수 있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이 인다는 말에서 푸른 냄새가 인다. 어디에 시선을 두었을까. 어머니, 아버지가 계시는 서쪽부터 밑도 끝도 없는 망망대해, 저 먼바다를 두루 향하고 있으리라. 숱한 사람들을 태우고 하나의 점처럼 다가왔다 다시 멀어지는 여객선마저도 반갑고 설렌다는 그들에게, 이 섬은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이리라.

굳게 다문 입술과 무표정한 얼굴로 경비를 서는 대원들의 모습에서 나는 왜 이토록 푸르디푸른 여름 독도가 떠오르는 것일까. 섬을 딛고 선 시간, 눈빛조차 허투루 두지 않는 그들의 젊음은 밤낮 섬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새 섬을 닮아버린 듯하다. 깊고 견고하여 우람하기까지 한 대원들의 모습은 영락없이 독도를 닮았다. 들끓는 청춘을 누르고, 오로지 조국만을 가슴에 담고 독도로 자원했다는 대원들의 언어에서 먹먹한 고마움이 인다.

독도는 지척에 있었다. 더 멀어지지도, 더 가까워지지도 않는 일정한 거리에서 우리를 불렀다. 512년(신라 지증왕 13년) 이사부가 우산국(울릉도)을 신라의 영토로 귀속시킴으로써 처음으로 우리의 영토가 되었던 섬, 세종실록지리지에 울릉도와 함께 당당히 기록된 독도는 천혜의 땅이었다. 어느 역사서에서, 누군가의 이야기에서 독도가 전해질 때면 나는 온몸의 촉각이 곤두섰다. 잠자리에 누운 밤이면 괭이갈매기의 소리와 파도 소리가 고막을 두드렸고, 어떤 유혹도 어떤 연고도 없는 이 섬이 아프게 나를 불러댔다.

언 땅에 움이 돋고 봄꽃이 필 무렵, 나는 아무런 계획도 없이 배에 올랐다. 육지에서 멀어져 동 해로 동 해로 나오면서 왜 그렇게 평온했을까. 무엇엔가 홀린 듯 수평선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울릉도에서 87.4㎞, 뱃길로 1시간 반을 달려 드디어 독도에 당도했다. 해저 2000m에서부터 솟아올라 용암작용에 의해 생성된 독도는 거친 암벽, 깎아지른 절벽, 거센 파도를 맞으며 있는 모습 그대로 다가왔다. 날것의 섬 하나가 그렇게 내 동공을 파고들었다.

대한민국 해가 뜨는 첫 땅,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이사부길’과 ‘안용복길.’ 여의도 광장의 절반 크기, 18만7천 제곱미터(5만4723평), 89개의 부속도서를 끼고 동도와 서도는 서로 마주 보고 산다. 동도마을 이사부 길에는 등대원과 독도경비대원들이 살고, 서도마을 안용복 길에는 김성도 이장 내외와 울릉군 방호직공무원이 한마을을 이루고 산다. 옥신각신 싸우는 일은 없어도, 해마다 봄이 되면 괭이갈매기들의 산란으로 두 섬은 도떼기시장처럼 요란해진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못하는 서도 최고봉 168m에도 갈매기들은 쉼 없이 날아가 둥지를 틀고 산란을 한다. 독도 마을은 더 이상 작고 외로운 마을이 아니다. 어느새 나는 한 마리 갈매기가 되어 훠얼 훨, 독도마을의 일원이 된다.

쉼 없이 일어나 섬을 할퀴는 파도는 소름이 돋을 만큼 거칠다. 흰 포말을 내뱉으며 억겁의 세월 동안 파도는 저리도 처참하게 밀려오고 밀려갔으리라. 때리고, 할퀴고, 부서지고, 갉히고. 때로는 몽깃돌 해안을 드나드는 물결은 또 얼마나 순하고 고요하였을까. 몽그르르- 돌 구르는 소리가 깊고 맑아 종일 귀를 열고 앉았어도 좋겠다 싶다.

누 억년을 지나와도 변하지 않는 건 독도, 이 작은 섬에 한반도의 민초들이 대代를 이어 여전히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해풍도 거뜬히 이겨낸 민초들은 이 섬을 감옥이라 말하지 않는다. 육지의 너른 대지를 잊고 지독한 고독과 맞서서 섬의 골마다 가녀린 뿌리를 내려 ‘한국령’을 새기고 또 새겼다. 이 지독한 고독이 누 억만년을 또 흘러간대도 민초들이 부르짖는 한 가지, 천지가 개벽을 한데도 여기는 대한민국 첫 해가 뜨는 땅, 독도라고.

무엇이 나를 이토록 강하게 이 섬으로 이끌었을까. 탕건봉·가재·독립문·촛대·얼굴 바위, 저 기암절벽과 더불어 지독한 고독을 이겨내는 강인한 민초의 정신을 배우고 싶은 내 본능은 아니었을까. 동도 이사부길 333개의 계단을, 서도 안용복길 998개의 계단을 숨이 막히도록, 무릎이 욱신거리도록 오르고 또 오르며 인내를 배우고 싶은 내 욕심은 아니었을까. 독도를 읽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독도의 풍경을 눈에 익히고, 독도의 암석 구석구석을 손끝으로 느끼며 그리 살고 싶다. 그러다 문득 육지의 시간이 그리우면 꼭꼭 눌러쓴 육필의 연서를 여기, 빨간 우체통에 넣고 싶다.

멀리서 그리워하고, 멀리서 흥분하던 우리 땅 독도! 오래 묵어 닳고 닳아 아름답게 단련된 저 깊은 고독, 수 겁을 이어온 동해 물빛 속에 외따로 떨어져 아련한 그리움이 되어버린 섬. 눈 감으면 아련하게 떠오르는 영혼을 맑히는 섬. 나는 이 신비한 섬에서 쌓이고 부서지길 억만 겁을 거쳐 나온 천혜의 절경을 읽는다.

독도는 결코 저무는 곳에서 오지 않는다. 그 아련한 곳에서 한반도의 첫 햇살을 받으며 첫 땅으로 우리에게 온다. 이 너른 바다에 우뚝 솟아 있는 섬 독도는, 시간이 빚어낸 장엄함이다. 영토 분쟁으로 얼룩진 비운의 섬이 아니라 똑똑히 보라, 여기 음각된 해석海石 ‘한국령韓國領’을. 여기는 독도, 대한민국 젊은 아들들이 살고 있는 한반도의 대범하면서도 평범한 일상의 땅이다.
















  1. 박시윤: 목포문학상 신인상, 동양일보 신춘문예 당선,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대상, 보훈문예대전 최우수상, 한국수자원공사 물사랑 공모전 대상, 대한민국 독도문예대전 최우수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공감 스토리텔링공모전 & 낭독경연대회 최우수상, 농민신문사 전원생활수기공모전 최우수상. 국가보훈처 사보 스페셜테마에세이 주 필진(2014.4~2015.12) 대구일보 에세이마당 및 스토리로 만나는 문화재 기고(2014.11~2015.12), 매일신문 매일춘추 기고 및 울릉도 개척史 ‘검찰사의 길’을 가다 연재, 매일신문 에세이산책 기고. 공동저서: 우리가 몰랐던 울릉도 1882년 여름.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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