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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추억의 경의선 / 백임현

부흐고비 2019. 12. 7. 10:26

추억의 경의선 / 백임현


경의선이 지나가는 일산 신도시에는 나와 친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그런 연유로 나는 일산 나들이를 자주하는 편이다. 이곳 도봉에서 그 곳까지는 전철로도 두 시간이 더 걸리는 수월치 않은 거리이다. 이렇듯 가는 길은 멀어도 나는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간다. 일산을 중심으로 고양시 일대는 어디를 가나 내 추억의 편린들이 숨 쉬는 곳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일산 신도시인 탄현에서 작은 모임이 있는 날이다. 늘 전철을 이용하였으나 이번에는 특별히 경의선을 타기로 하였다. 신촌에서 출발하는 경의선 열차는 매시 정각에 문산을 향해 출발하는데 새로 만든 관광 열차이다. 기차 겉면에는 보통 열차와 달리 흰색 바탕에 예쁜 꽃 그림들이 그려져 있어 보기만 해도 꿈같은 여행길을 생각하게 한다.

오랜만에 달려 보는 경의선 기차다. 수십 년 전 나는 경의선 기차 통학생이었다. 아침, 저녁 이 길을 다녔기 때문에 눈을 감고도 철로 연변의 풍경이 환하게 떠오르곤 하였다.. 서울역에서 문산을 향해 가자면 왼 쪽에 한강을 끼고 펼쳐진 행주벌과 오른편으로 철로를 따라 이어지는 높고 낮은 야산들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니 산도, 들도 옛 모습은 아니었다. 눈이 시리게 이어지던 벌판에는 전에 없던 아파트 단지와 신작로가 뻗어 있고, 사철 숲이 무성하던 산들도 이리 깎이고 저리 허물어져 높고 낮은 건물이 들어서 시가지가 되어 있는 곳이 많았다. 예나 이제나 변함이 없는 것은 단지 평행선으로 이어진 경의선 선로뿐이었다. 그리고 퇴색하지 않은 나의 추억이었다.

일산역 못미쳐에 이름도 아름다운 백마역이 있었다. 이 정거장은 옛날에 없던 것이다. 백마역 앞에 있는 백마초등학교는 아버지가 칠년을 재직하시던 곳이다. 신설학교로 부임하신 아버지는 학교이름을 그 지역 두 곳의 머리자(백석, 마두)를 따서 백마학교로 명명하셨다. <백마학교의 백교장>이것은 그 무렵 심심치 않은 화제 거리였다. 지금은 확고하게 그 곳의 지명이 되어버린 <백마>는 우리 선친으로부터 유래된 것이었다. 평생 동안 아버지의 근무지는 고양 파주 일대인 경의선 부근이었기 때문에 나의 유년기와 젊은 날의 추억도 그 곳을 벗어 날 수가 없다. 경의선 철로와 기차소리. 통근차를 타고 내리던 수많은 사람들의 부산한 발소리 등...... 그리고 나의 꿈도 고뇌도 사랑도 경의선 부근에서 일어나고 사라졌다. 경의선, 거기엔 내 젊은 날이 있는 것이다.

직업상 전근을 자주하시던 아버지는 해방직후 경의선이 닿는 일산에서 근무 하시게 되었다. 아이들의 교육문제 때문에 일부러 지원을 한 것이라고 했다. 그 곳에서는 서울로 기차 통학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하루 서너 차례씩 오르내리는 경의선 열차가 교통수단의 전부였다. 일산뿐 아니라 문산 장단 개성에서도 모두 새벽 통근차를 이용하여 서울로 출퇴근을 하였다. 정거장 근처에서도 철로 변에 살았던 우리는 늘 흰 구름 같은 증기를 뿜으며 거대한 쇠바퀴를 움직이는 기관차의 힘찬 굉음을 생활 속의 한 부분으로 익히며 살았다. 언제보아도 그 광경은 아이들에게 신나는 구경거리였다.

꼬리를 물고 달리는 긴 기차 칸은 열 칸도 더 되었는데 그 중에 한 칸은 여학생만 타는 여학생 칸이었다. 아직 초등학생인 우리들은 통근차가 지나가면 언제나 여학생 칸을 먼저 찾았다. 밖에서 보아도 그 칸은 꽃밭인 듯 밝고 화사했다. 교복을 입은 예쁜 여학생들이 창가에 앉아 재잘거리는 모습은 너무도 행복해 보였고, 가끔 우리를 보고 웃으면서 손을 흔들어 주기도 했는데 그들은 우리 가슴에 선망과 동경을 심어 주고도 남았다. 그 때 우리 어린 친구들의 꿈은 어서 여학생이 되어 서울로 통학하는 것이었다.

머지않아 나도 마침내 여학생 칸에 타게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내가 기차를 타고 보니 차 안의 모습은 밖에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화려한 것만은 아니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여학생들의 모임이라 학교간의 대립에서 오는 갈등도 만만치 않았고, 사소한 일로 다투기도 잘 했으며 얼굴 예쁜 여학생들은 가끔 연애사건에 휩싸여 흥미 있는 소문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배울 점도 많았다. 여학생 칸에는 여대생도 여럿 있었는데 이들은 선배답게 언제나 언행을 조심하며 모범적으로 구는 것 같았다. 그들은 늘 책을 읽고 있었으며 중고생들이 물어 오는 공부를 친절하게 가르쳐 주기도 하였다.

나는 개성에서 다니는 여대생 언니와 잘 알게 되었는데 그가 내게 준 영향은 매우 컸다. 그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 언니는 나에게 세계명작소설들을 소개해 주었고 이러한 소설들이 작가의 상상이 꾸며낸 허구적인 세계라는 것도 가르쳐 주었다. 그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나는 그 때까지 감동적인 동화나 소설들이 어느 작가가 쓴 상상력의 소산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이야기를 만들어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작가는 그래서 위대한 것이라고 그는 덧붙여 말하였다. 그러나 이 선배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는 이후 많은 세월이 필요 했다.

그 선배의 집은 개성이었다. 일산에서 개성까지는 기차로 사십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으므로 날씨 좋은 주말이나 방학 때면 우리는 그 선배가 사는 개성으로 놀러 가기도 하였다. 금촌 문산을 거쳐 임진강을 건너고 장단 벌을 지나 송악산이 솟아 있는 개성은 깨끗한 기와집들이 즐비하고 거리가 잘 정돈된 정결한 도시였다고 기억된다. 선배의 집은 부유해 보였다. 우리가 가면 언제나 그 선배는 다정했고 대접은 친절하여 아직까지 개성에 대한 추억은 즐겁고 행복하다. 깨끗한 도시 개성, 마음씨 좋은 선배가 있었기에 그 곳은 늘 그리운 곳이다. 중학 이학년 초에 전쟁이 일어났다. 개성사람인 선배의 소식은 그 이후 끊어졌고, 휴전 이후 개성은 갈 수 없는 먼 곳이 되고 말았다.

지금 경의선 종점은 문산이다. 한 때는 신의주까지 힘찬 기적 소리를 울리며 기차가 달리던 길, 경의선 철도 최북단인 문산 조금 위에는 북으로 가던 기관차가 오십년 풍상을 견디며 녹 슨 철로 위에 멈춰 서 있다. 다시 움직일 그 날의 역사를 기다리며 <철마는 달리고 싶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경의선이 이름 그대로 서울에서 의주까지 시원하게 달려 볼 날은 언제 올 것인지, 지척인 개성만이라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그 날을 내 평생 안에 볼 수 있을지 아득한 생각을 해 본다.

지난 일을 더듬고 있는 동안에 기차는 우리의 목적지인 <탄현>역에 섰다. 세련된 신도시 한 모퉁이에 한적하게 자리 잡은 아주 작은 간이역이다. 내리는 사람도 우리 일행 두 사람뿐이고 정거장 안의 사람도 우리를 마중 나온 두 사람 뿐이다. 우리는 오늘 시골 정거장의 낭만을 한 번 꾸며 보기로 하였다. 우리는 손을 흔들며 차에서 내렸고 마중 나온 그 여인들은 한껏 우아한 모습으로 차에서 내리는 우리를 맞이했다. 젊었을 때 일산을 떠났던 내가 주름 잡힌 노년이 되어 경의선 호박밭 질펀한 시골 정거장에 내려 멋진 두 여인의 마중을 받았다. 우리는 반가와 서로 얼싸 안으며 이거 꼭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즐거워했다. 먼 훗날, 오늘 일이 아름다운 추억이 안 되겠는가. 그리운 경의선, 참으로 장구한 세월을 두고 가지가지 추억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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