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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객토 / 김상환

부흐고비 2019. 12. 7. 21:52

객토 / 김상환
The 수필, 2019 빛나는 수필가 60인 선정작


텃밭에 객토客土 작업을 했다. 객토란 산성화되었거나 질 나쁜 토양 위에 새 흙을 넣어 땅의 힘을 상승시켜 주는 작업이다.

지난날 보릿고개를 겪던 시절, 우리 집에는 산을 깎아 만든 논이 있었다. 그 논은 원체 박토라서 아무리 애써도 작물이 잘 자라지 않았다. 애쓴 보람도 없이 부득이 갈아엎었다. 그때마다 돌을 골라내고 퇴비를 듬뿍 주었다. 하지만 갈아엎을 수 없는 땅이 있다. 돌도 아니고 흙도 아닌 비륵땅은 쟁기로도 갈 수가 없다. 삽 끝도 들어가지 않으니 곡괭이로 조금씩 파내야 한다. 이런 땅은 객토를 해야 한다.

어린 시절 내 삶의 땅이 바로 그런 비륵땅이었다. 혹독한 가난 속에 아버지는 내가 말을 배우기도 전에 돌아가시고, 건강까지 좋지 않았다.

나는 열세 살 때부터 일을 했다. 낮에는 농사일을 하고 밤에 공부하려면 피곤함보다 무섭게 밀려오는 졸음을 참기가 더 힘들었다. 졸음을 쫓기 위해 찬물로 세수를 하거나 머리를 감기도 하고, 살을 꼬집거나 연필로 팔다리를 찔러도 눈꺼풀은 천근만근 무겁게 감겼다.

열여섯 살 되던 어느 날이었다. 이십 리쯤 되는 먼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다. 그곳은 워낙 산세가 험하여 어른들도 가기를 꺼려 하는 곳이다. 사방이 높은 신들로 막혀 하늘밖에 안 보이는 곳이다. 그날따라 꿩과 산비둘기 우는소리가 유난히 구슬프게 들렸다. 잡념을 떨쳐버리기 위해 평소보다 더 부지런히 땔감을 모았다. 덕분에 빠른 시간에 나무 한 짐이 다 되었다. 시간이 넉넉하여 바위 그늘 아래 누워 잠시 쉬었다. 무심코 위를 쳐다보니 나무 한 그루가 바위틈을 뚫고 거꾸로 나와 옆으로 자라고 있었다. 나는 그 나무를 보고 어떠한 어려움에 처해도 절망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위틈의 나무처럼 이 세상 모든 것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그중에서 사람만은 자신의 힘으로 어느 정도 환경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계모에게 천덕꾸러기로 취급받던 친척 형님이 도시로 나가 크게 성공하는 것을 보고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나도 척박한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 차례나 가출을 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내가 발을 디딜 땅은 없었다.

기술도 능력도 없으니 첫 직장은 외판원이었다. 몸이 자본이고 부지런함이 최대의 무기였다. 물러설 곳 없는 나는 바위에 정釘을 대고 쇠망치로 쪼아가는 석수장이처럼 내일을 만들어갔다. 모래땅, 자갈땅, 가리지 않고 갈아엎기 위해 힘을 기르고 나를 단련했다. 잠자는 시간을 줄이고 밥값도 교통비도 아꼈다. 내 삶의 땅이 햇볕도 받고, 바람도 잘 통하고, 물도 잘 흐르게 한 후, 희망의 씨를 뿌릴 수만 있다면 두려울 것이 없었다.

처음에는 곡괭이로도 팔 수 없는 비륵땅인 줄 알았는데 큰 돌 몇 개를 파고 나니 작은 돌멩이들이 나오고 부드러운 흙도 조금씩 섞여 있었다. 이때 자갈밭은 모래밭 같고 모래밭은 옥토처럼 느껴졌다.

온갖 어려움 끝에 가까스로 내 사업을 시작했다. 원체 적은 자본금으로 시작한 탓에 3개월 만에 큰 고비를 맞았다. 하루하루 살얼음 위를 걸어가듯 아슬아슬하게 넘겼다.

2년 후 겨우 집 한 칸 마련하고 심호흡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러자 삶의 가치를 좀 더 높이고 싶은 욕심이 고개를 들었다. 남이 만들어 놓은 상품만 판매하는 것보다는 내가 직접 우수한 제품을 개발하여 보람과 가치를 함께 느끼고 싶었다. 그렇지만 기술도 경험도 없으니 아이디어로 승부를 걸었다.

그 후 세 번이나 실패를 했지만 나는 절망하지 않았다. 삶의 땅을 바꿀 수 없으니 내가 바뀌고 연장을 바꾸었다. 연장도 내 손에 맞지 않으면 나만의 방식으로 만들었다. 땅의 성질에 적합한 새로운 연장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실패도 하고 상처가 덧나기도 했지만 보람도 있었다.

가난히 죽음보다 더 무서워 모험을 했고, 바닥에서 비상할 수 없으니 갈아엎었다. 그 과정에서 나와 만났던 사람들 중에는 흙 속에 숨겨진 바윗돌처럼 나를 속이고 더욱 힘들게 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돌밭에 섞인 흙처럼 힘을 보태주는 소수의 사람들이 길을 열어주었다.

농촌에서는 가을이 되면 수확의 결과에 상관없이 다음 해의 풍작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땅을 갈아엎는다. 묵은 땅은 갈아엎어야 위아래 흙이 서로 바뀌어서 땅의 질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살아간다는 건 삶의 땅을 개간하고 갈아엎는 것의 연속이라 생각한다. 삶의 땅이 아무리 기름지고 풍요로워도 수시로 갈아엎어주지 않으면 땅의 힘이 유지되기 힘들다. 묵히고 방치해두면 잡초가 무성하고 돌처럼 굳어진다. 굳은 땅에 물이 고일 수는 있어도 새로운 싹이 움트기는 어렵다. 설령 싹을 틔웠더라도 무성하게 자라지는 못한다. 그래서 박토뿐만 아니라 옥토도 가끔 뒤집고 갈아엎어야 한다. 그래도 안 되는 비르 땅은 객토 작업을 해야 한다.

농사꾼의 가을처럼 인생의 완성은 노년에 결정된다. 객토 작업은 멈출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요즘 시민대학에서 삶의 마지막 객토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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