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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우물 / 박월수

부흐고비 2019. 12. 8. 23:24

우물 / 박월수


머지않아 헐리게 될 옛집을 둘러본다. 이미 퇴락해버린 흔적이 노을빛에 적막하다. 한때 이 집은 한 가족의 단란함을 앞세운 탈곡기 소리로 분주했었고, 마당 한 귀퉁이에 자랑처럼 높이 솟은 볏짚 단이 가장의 위상을 대변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부재 이후 줄곧 비워 놓은 집은 급속히 허물어져 갔다. 지금은 뜰 한 쪽에 무거운 뚜껑이 덮인 채 버려진 듯한 우물만이 그 깊이만큼 많은 이 집의 내력을 간직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 집과 덕산어른 댁, 그리고 양동할머니 댁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막다른 골목을 함께 쓰고 살았다. 깊은 샘을 가진 우리 집과 얕은 샘을 가진 양동할머니 댁 사이에 덕산 어른 댁이 있고 그 집만 우물이 없었다. 덕산 어른이 농사짓는 일 외에 평생을 두고 한 일은 샘을 파는 일이었다. 앞마당과 뒷마당 심지어는 부엌 안에까지 그 어른의 삽과 곡괭이가 지나지 않은 곳이 없었다. 팠다가 덮었던 곳을 또 파 보기를 수도 없이 했지만 희한하게도 그 집에선 물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덕산 어른이 병을 얻어 세상을 뜨시고 대를 이어 그 어른의 아들도 우물을 파기 시작했지만 허사로 그치고 말았다. 우물이 없는 그 집 아주머니는 날마다 양동할머니네로 가서 먹을 물을 긷고 빨래를 했다.

여름 한낮 들일을 나가셨던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어머니는 샘물을 퍼 올려 아버지의 등목을 해 드렸다. “어, 차갑다.” 하시면서도 연신 싱글거리시던 모습, 내가 끼얹은 물에 바지 뒤춤이 젖는다며 투덜대면서도 싫지 않아 하시던 몸짓을 아직 이 우물은 기억할 것이다. 텃밭의 상추를 뽑아 겉절이를 하고 시원한 샘물로 오이냉국을 만들어 점심상을 차려드리면 아버지는 우물 옆 평상에 앉아 특별할 것도 없는 그 음식을 드시곤 세상에 없는 행복한 표정을 지으셨다.

어느 날 덕산어른 댁 아주머니가 우리 집 우물에 담가 두었던 수박을 꺼내러 오셨다가 아버지가 등목 하는걸 보시고 화들짝 놀라던 표정이 지금도 역력하다. 한참 자라서야 나는 그 표정의 의미를 이해 할 수 있었다. 덕산어른이 왜 그토록 우물에 목말라 했는지, 또한 양동 할머니 댁에만 물을 길으러 가는 이유가 꼭 샘이 얕아 물을 긷기 쉬운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도. 아버지의 나뭇짐에 얹혀온 참꽃이 투박한 항아리에 꽂혀 샘가에서 환하게 웃던 풍경을 기억한다. 낮은 울타리너머로 저절로 눈에 띄었을 그런 정경은 일찍 남편을 잃은 아주머니의 마음에 외로움으로 쌓였을지도 모르겠다.

여름이 깊어지면 우리 집 우물 위로 얼기설기 엮어놓은 쇠 그물을 타고 포도 넝쿨이 뻗어나갔다. 어머니를 위한 속정 깊은 아버지의 배려일 터였지만 시원한 그늘 드리운 우물가에서 찬물에 발 담그고 앉아, 포도 알이 여물어 가는 걸 보는 즐거움은 늘 내 차지였다. 밤사이 포도넝쿨 위를 지나던 강아지만한 쥐 한 마리가 우물에 빠져 버린 날 아버지는 빌려온 양수기로 하루를 꼬박 샘을 펐다. 그날의 소동이후 우리 집에도 펌프란 걸 들여오게 되었다. 팔 아프게 두레박을 끌어올려야 하는 수고를 들어줄 신식 설비가 갖추어진 것이다. 하지만 예쁘장하게 생긴 펌프는 미운 다섯 살 계집아이처럼 삐치길 잘해서 물을 긷고 돌아서면 금방 물이 나오지를 않았다. 그럴 땐 까무룩 삼켜버린 물 한 바가지를 부은 후 펌프질을 해야 했다. 이 마중물이 없어 우리 집에 우물을 두고 남의 집 물을 꾸러 가는 웃지 못 할 일도 있었다. 힘이 달리는 어린 나는 펌프에 매달려 널을 뛰듯 물을 길었다. 그러면서 가끔씩 내가 마중물이 되어 기다리곤 했다. 이제는 물 긷기가 훨씬 수월해진 우리 집으로 덕산어른 댁 식구들이 오겠거니 하고……. 하지만 끝내 옆집 식구들은 우리 집으로 물을 길으러 오는 일이 없었다.

두레박에서 펌프로 한 단계 더 편리한 생활을 하게 되신 어머니는 우물 옆 빈터에다 꽃을 가꾸셨다. 목단과 덩굴장미, 달개비가 순서대로 피고 봉선화와 채송화도 흙 담 아래 나직하게 제 모습을 드러냈다. 이남박에 쌀을 씻던 어머니는 그 물을 꽃들에게 부어주고는 지긋한 눈으로 바라보시곤 했다. 함지박만한 목단 꽃잎에 얼굴을 묻었다가 노란 꽃술을 코끝에 묻힌 채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를 보며, 그 꽃은 향기가 없다고 일러주시던 어머니는 영원히 늙지 않을 것처럼 젊고 예뻤다.

큰 가뭄이 들던 해에는 온 동네사람들이 샘이 깊은 우리 집 우물물을 길어다 먹었다. 바닥이 보이도록 퍼내어도 이튿날 아침이 되면 맑은 물이 가득 고여 있곤 했는데 사람들은 고마운 우리 집 우물물이 달기도 하다며 입을 모았다. 사람사이의 인정도 움켜쥐기보다 베풀수록 더욱 깊어짐을 말없는 우물이 우리에게 보여주려 했던 건 아니었을까.

몇 해 후 우리 마을에도 수도가 들어오면서 덕산 아주머니 네의 물 걱정도 끝이 났다. 때맞춰 마을에 생겨나기 시작한 염색공장은 집집마다 거의 하나씩 있던 맑은 우물을 뿌옇게 오염시켰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소독 약 냄새를 참아가며 수돗물을 식수로 써야 했다. 갑작스런 변화에 적응 못한 나는 알레르기와 소화불량에 시달려야 했고 집집마다 우물은 무거운 뚜껑이 덮인 채 제 할 일을 마감하여야 했다.

신령스런 기운이 스며있다고 믿어 언제나 정갈하게 다루던 우물, 길한 날을 기다려 첫새벽에 길은 물로 장을 담그고 술을 빚던, 덕산어른이 그토록 갖고 싶어 하셨던 우물이 이제는 우리들 기억 속에서나 존재하는 이름이 되어가고 있다. 더운 여름 날 우리 부모님의 정을 더욱 돈독하게 해주었던 이 우물도 곧 사라지게 될 것이다. 동네 전체가 재개발이라는 명분에 밀려 본 모습을 잃어가더니 급기야 우리 집도 학교 부지로 내어 놓게 된 때문이다.

흙으로 입이 봉해져 흔적 없이 묻힐 우물을 내려다본다. 고른돌로 테두리를 쌓아올린 이끼 낀 우물 위로 꽃노을이 진다. 그 속에 바람 불어 비 오고 볕들고 달 기울던 많은 날을 백화등처럼 잔잔하게 꾸려가던 한 가족의 단란함이 빛이 바랜 채 펼쳐지고 있다. 두레박 끈을 길게 늘여 길은 물로 어머니가 진하게 타주시던 미숫가루 한 그릇이 목마르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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