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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아픈 것도 직무유기 / 정성화

부흐고비 2019. 12. 11. 15:08

아픈 것도 직무유기 / 정성화
The 수필, 2019 빛나는 수필가 60인 선정작


​ 대학병원 안과는 늘 환자로 붐빈다. 예약시간이 아무 의미가 없을 정도로 대기 시간이 길다. 내 옆에 앉아있는 어르신이 아들로 보이는 젊은이에게 말했다.

“야야, 내 차례가 아직 멀었는가? 간호사한테 좀 물어봐라.”

아까부터 휴대폰만 들어다보고 있는 그가 답했다.

“가만있어. 가만있으라니까!”

그 순간 병원 복도 공기가 더 탁해지는 듯했다. 어르신은 더 말이 없었다. ‘이이그, 못된 놈! 그거 알아봐드리는 게 뭐 힘들다고….’

이 병원에 주기적으로 다닌 지 2년이 되었다. 어느 날 아침, 냉장고를 열려는데 냉장고 문의 손잡이가 구부러져 있었다. 누가 이랬을까. 놀랍게도 오븐과 전자렌지도 찌그러져 있었다. 그런데 냉장고 문의 손잡이를 잡아보니 매끈했다. 내 눈에 이상이 온 걸 직감했다.

의사는 내 왼쪽 눈에 황반변성이 왔다고 했다. 약으로 다스릴 단계를 넘어섰으니 눈에 주사를 맞으며 경과를 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주사를 눈가에 맞나요, 아니면 눈알에 맞나요?”

의사는 간단히 “눈알에요.”라고 했다. 병도 고약하지만 치료법도 끔찍하다. 인상을 찌푸리는 나에게 의사는 말했다. 제때 치료하지 않으면 시력을 잃을 수도 있다고.

황반이란 눈 안쪽에 망막 중심부에 있는 신경조직으로 우리가 사물을 불 수 있도록 상이 맺히는 지점이다. 황반변성이란 이 황반부에 변성이 일어나면서 사물이 찌그러져 보이거나 휘어져 보이는 병이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인테넷으로 황반변성을 검색했다. 주로 칠십대 이상의 노인들에게 오는 병으로 정확한 원인을 모른다고 한다. 병의 원인을 모르니 완치도 안 된다고 한다. 병에 대한 설명 중 ‘실명’이라는 용어가 자주 나왔다. 남편이 며칠째 웃지 않는다. 내가 저 사람을 힘들게 하는구나 싶어 일부러 명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여보, 내 병이 더 깊어지기 전에 안마 기술이라도 배워둬야 하지 않을까?”

이에 남편이 답했다.

“당신은 안마 기술 배워봤다 손아귀 힘이 약해서 손님도 못 끈다.”

소중한 걸 잃고 나니 누가 그걸 가져갔는지, 아니면 어디에 떨구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내 눈이 왜 이리 되었을까. 신경 조직에 탈이 났으니 내 신경을 가장 많이 건드린 자가 범인이겠다. 내가 자주 접하는 인간들- 남편, 아들, 딸 중에 누구일까. 그런데 이 세 사람이 나를 애먹인 정도가 다 고만고만하니 어느 한 사람을 지목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내가 글을 쓴답시고 눈을 너무 혹사해서일까. 그동안 대하소설을 집필한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독서를 많이 한 편도 아니다. 등단해서 쓴 글이라 해봤자 겨우 수필집 두 권 분량이니 문학도 범인이 아니다. 오리무중이다.

눈에 주사를 맞기 위해 대기하는 환자들 중에는 내 또래가 없다. 어떤 이는 나에게 보호자로 따라왔느냐고 묻는다. 그런 날은 우울하다. 어깨가 드러나는 반짝이 원피스 한번 못 입어보고 내 ‘젊음’이 다 갔다. 나에게 축지법을 쓰며 달려오는 이 ‘늙어감’이 낯설다. ‘늙어감’ 이 분은 마치 보부상처럼 보따리 속에 여러 가지를 싸들고 다닌다. 이명과 코골이, 탈모에다 팔자주름, 눈꼬리 처짐과 건망증 등. 그가 이번에 가져온 신상이 황반변성이다. 이 또한 내가 주문한 것이었다고 우기며 내게 안기고 갔다.

가족의 삶은 끊임없이 돌아가는 콘베어 벨트를 닮았다. 각자 맡은 구역이 있고 그 지점에 서서 제때 처리해어야 할 공정이 있다. 갑자기 어머니를 여의는 바람에 어린 동생들을 돌보느라고 혼기를 놓친 지인을 보며, 아프고 죽는 것도 가족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시기를 잘 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아프면 일종의 직무유기가 된다. 라면 끓일 물도 가늠하지 못하는 남편, 급할 때마다 전화를 해대는 갓 시집간 딸, 코에 간이호흡기 줄을 꼽고 있는 친정어머니 때문이라도.

내 눈에 이상이 생긴 후로 남편이 달라졌다. 전에는 내가 코 고는 것 때문에 불만이 많았다. 웬 머슴이 들어와 옆에서 자고 있는 줄 알았다며 툴툴대기도 하고 자고 있는 사람의 코를 비틀리도 하더니, 이젠 안방이 떠나가도 괜찮으니 “푹 주무시라.”고 한다.

눈에 주사를 맞고 온 날은 붕대를 감은 채 한 눈으로 지내야 한다. 거리 조절이 안 되어 반찬을 집는 것도 어둔하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도 힘들다. 그 날은 청각도 둔해지고 미각, 후각도 흐릿해지는 듯하다. 그 대신 ‘생각의 눈’ 하나가 떠진다. 그동안 내가 너무 한 쪽으로 치우친 시선으로 살아온 게 아닐까 싶고, 앞으로는 세상을 삐딱하게 보지 말라는 신(神)의 경고 같기도 하다.

고난과 극복을 반복하는 게 내 숙명이다. 지금은 ‘극복 모드’다. 아무래도 왼쪽 눈에 ‘와이로’를 좀 써야 할 것 같다. 오늘 저녁에는 눈 건강에 좋다는 소 간을 사러 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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