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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男자지圖 / 김근혜

부흐고비 2019. 12. 12. 09:59

男자지圖1 / 김근혜


여성학은 반기를 들었다. 남자들의 우월주의와 가부장적인 사고에. 그런 여성학에 구미가 당겼다.

유교적인 사회 분위기나 남아선호사상으로 여자들은 늘 피해를 당했다. 갓난아기라도 남자가 누워 있을 때는 머리 위로 지나가면 안 되었다. 남자들의 옷을 타 넘어도 안 되었다. 이름조차도 남동생이 태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男’자가 따라다녔다. 남자에게 여자는 금기 이상이었다. 남자들은 스스로 신이라 부르는 男자지圖를 가지고 있는 존재였다.

강의실 공기가 만만치 않았다. 여성스러움보다는 남성적인 강인함이 느껴져서 발이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애써 태연하려 했지만 분위기에서부터 제압을 당하고 말았다. 몇몇 남학생들이 눈에 뜨였지만 다른 학과 수강생들이었다. 여성학과생들은 모두 여성이었다. 이름도 부모님 성姓을 사용해서 네 글자였다. 그들은 훈련소 교관이었고 난 신입 훈련병이었다.

첫 수업 시간부터 성적인 차별을 주제로 하는 자유토론이었다.

“우리 딸아이가 남자아이한테 맞고 왔는데 속이 상해서 치료비는 얼마든지 물어 줄 테니까 앞으론 절대 맞지 말고 실컷 때려주라고 했어요.”

아줌마들의 일상적인 얘기가 학교 강단에서 화제가 되리라곤 생각도 못했던 일이었다. 여자들의 한恨서린 말이 몇몇 남자들의 가슴을 찔렀다. 여자아이한테 맞았다면 좀 괜찮았을 거라는 뉘앙스가 장교 출신의 어떤 남학생의 귀에 걸렸다.

“여자들의 단순한 피해의식으로 남자들을 매도하지 마세요.”

“피해의식, 그거 누가 만들어 놓은 거죠? 남자들은 우월한 존재라는 男자지圖가 깔려 있는데 그거 고리타분한 유교적 산물 아닙니까? 여자들의 능력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힘의 논리로 왜곡하고 여자들을 매장했으며 정당화시켜놓은 것이죠. 여자들을 배제시키고 억압함으로써……종속적인 관계 …… ?”

남학생은 맞섰다가 속사포에 뼈 한 줌도 못 추리고 처참하게 짓밟히고 말았다.

“음,……아, 네, 네, 남자들이 죽일 놈입니다”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그들에게는 어머니의 어머니, 또 그 어머니의 자자손손에 이르기까지 첩첩이 쌓인 한이 유전자 속에 남아 있었다. 남학생들은 아버지의 아버지들이 지은 죄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그녀들은 남자들에게 알레르기를 일으켰다. 여자인 나도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한 학기 동안 수업할 생각을 하니 머리가 노래졌다. 선택필수과목이라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신청한 남학생들의 표정엔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호기심으로 신청한 우리 학과생들도 주눅이 들긴 마찬가지였다. 입이 얼어서 뻥긋거리지도 못하고 서로의 얼굴만 바라봤다. 여성학을 전공하는 다수의 학생들은 여성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여성들의 인권을 위해 일하는 그들이 용기 있고 존경스러웠다. 그들의 유창한 말솜씨나 당당함에 기가 죽었다.

성 차별은 당하고 살았지만 심한 비하발언은 귀에서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그렇다고 전공자들보다 논리정연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지식은 없었다. 말을 잘못했다가는 남학생들처럼 본전도 찾지 못하고 혼이 날 것 같았다. 무섭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꿀 먹은 벙어리로 있는 게 상책이었다. 여자라는 이유로 차별 받았던 억울함은 시원하게 대리만족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적응을 하지 못해 수업 시간이 괴로웠다. 그들이 부르짖는 남성우월, 여성차별을 떠나서 남성이나 여성이 동등하게 대접받는 사회가 되길 바랄 뿐이다.

차별을 당하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들에게 마음이 더 쓰이는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유전자 속에는 여자로서 겪어야 했던 아픔도 있지만 남아선호사상이 뿌리 깊이 박힌 男자지圖에서 아들을 출산하지 못하면 죄인 취급을 받는 유전자도 공존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나는 이런 억울함 때문에 남자로 태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많았다.

뉴기니의 어떤 지역이다. 난 그들 속에 서 있다. 그들은 무언가를 자랑하고 있었다. 궁금해서 가까이로 걸음을 옮겼다. ‘그것’이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물건이었다. 그들은 ‘그것’이 남자들한테만 있는 신성한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땅의 기운으로써 대지의 신만이 가질 수 있다고 했다.

‘그것’은 은밀한 곳에 있지만 한 달에 한번 나들이하는 것을 좋아한다. 가끔 낯선 물건을 충동 구매하는 때가 있다. ‘그것’을 만족시키려고 백화점으로 쇼핑을 간다. 백화점에는 ‘그것’이 좋아하는 많은 물건들이 진열돼 있었다. 난 그들을 낱낱이 훑는다. 긴 것에서부터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그것’에 맞게끔 여러 가지가 있었다. 내 사이즈와 맞는지 ‘그것’에 대보기도 하고 쇼핑 커트에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그것’이 만족한다고 사인을 보낼 때까지 고르고 또 골랐다.

한 남자는 달을 보며 내일 봉선화 꽃이 필 것이라고 했다. 달의 주기를 보며 몸의 변화를 예측하는 것 같았다. 몇몇 남자들은 꽃잎으로 가리개를 하고 있었는데 ‘그것’에 손을 갖다 대며 만족스러워 했다. 남자들은 ‘그것’에서 자신의 존재를 찾고 싶어 했다. 동경해오던 상징이었다. 봉선화 꽃을 피울 수 없는 사람들은 그들 속에서 소외되었다. ‘그것’이 있는 사람들에게 복종하며 어둡고 침침한 곳에서 살았다. 심지어는 전쟁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 ‘그것’은 신으로부터 성별된 거룩한 것이었다. 삼손의 머리칼에서 힘이 나오듯이 그들은 ‘그것’에서 생명 창조의 힘을 받았다. 그들만이 ‘그것’을 가질 수 있고 생명을 부양하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 ‘그것’이 있는 사람들만이 신의 제례의식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들은 남산만한 내 배를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나는 손가락 다섯 개를 펼쳐보였다. 다섯 번째 잉태라는 뜻이었다. 남자들은 예를 갖춰 존경의 표시를 했다. 남자들은 내 배가 불러갈수록 신령스럽게 여겼다. 심지어 절을 하는 남자도 있었다. 어떤 남자는 자신의 배를 불룩하게 내밀기도 했다. 쓰다듬기도 했다. 하늘을 보며 주문을 외는 남자도 있었다. 자신의 ‘그것’을 원망하는 눈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자신의 ‘그것’이 혐오스럽고 수치스럽다고 감추는 사람도 있었다.

“남자들의 무의식 속에는 자궁(womb)을 선망(envy)하는 男자지圖가 그려져 있다.…누가 자궁선망(womb envy)에 대해 …그기, 남학생의 생각은 어떤지 좀 들어볼까”

  1. 男자지圖: 男子之圖, 男子地圖, 자지(penis) - 여러 개의 뜻으로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제목을 男자지圖라 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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