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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소리에 귀 기울이다 / 조현미
The 수필, 2019 빛나는 수필가 60인 선정작


사위가 수족관 속 물때처럼 가라앉을 무렵, 전화벨이 울린다. 미끌미끌한 잠의 수역으로 막 입수하려는 참, 이만큼 다가와 있던 피안이 저만치 달아나버린다.

수면 즈음에 울리는 벨소리가 소음에 불과하다는 것을 불면증에 시달려 본 사람은 안다. 제아무리 기다리던 전화도 예외일 수 없다. 과연 누굴까, 가을밤을 송두리째 뒤흔든 이는?

“나야, H.” 음절마다 ‘ㅇ’ 소리가 덧나는 걸 보니, 그녀는 이미 혀를 술기운에 저당 잡힌 듯하다.

이 야심한 시간에 전화라니. 와중에도 전화를 받은 이유는 혹여 시댁에서 온 전화가 아닐까 싶어서였다. 우려했던 일이 아니라 안도를 하면서도 마음이 좋을 리 없다. 그녀, 취중에도 날 선 말투가 서운했다 보다. 느닷없이 울음을 터뜨리는데 당최 당해낼 재간이 없다. 결국 남은 밤을 고스란히 내주는 수밖에.

H는 내가 사회에 발을 디딘 후 처음으로 만난 친구였다. 성격이 서글서글해 주변에 사람들이 끓었고 무엇보다 늘 당당한 게 매력적인 아이였다. 그 누구보다 스스로의 안목을 믿는다던 그녀는 성인이 되자마자 결혼했다. 남편은 H보다 아홉 살이나 많은, 시쳇말로 잘나가는 CEO였다. 나를 비롯한 다른 친구들이 여물지 않은 자아와 싸울 때, H는 첫딸을 낳았다. 우리들이 겨우 직장을 잡고 ‘청춘’이며 ‘사랑’이며 ‘삶’의 허상을 논할 때 그 아인 둘째를 낳았고, 첫째를 낳았을 때보다 두 배쯤 행복한 듯 보였다. ‘너희보다 삶을 개척한 선구자’라며 제법 점잖은 척 조언을 하기도 했다.

H 남편의 사업은 나날이 번창했고, 신도시의 노른자 위에 아파트를 두 채나 거느리고 있다는 소식이 한 입 건너 전해오기도 했다. 허나 삶이 윤택해질수록 그녀는 주변을 겉도는 듯했다. SNS를 통해 ‘아주 잊지는 않을 정도’로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그뿐. 그녀와, 가계부의 마지막 자릿수까지 꼼꼼하게 따져야 하는 우리 사이엔 이미 너무 큰 간격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가 울고 있다. 깊은 가을밤에, 혼자서. 오랜 단절은 무수한 억측의 주범이기도 하다. 남편의 사업이 잘못된 건 아닐까? 그도 아니면 외도를 한다든가, 어쩜 자식들이 말썽을 피우는 건지도…. 짧은 시간임에도 갖은 잡생각이 거미줄을 친다.

“외로워, 외로워….” 한참을 어른 끝에야 그녀가 입을 연다. 남편과 아이들이 단단히 자리를 잡아갈수록 자신은 푸석해지더란다. 배는 부른데 영혼의 허기는 더하더라고, 결국 우울증으로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하루를 버티는 중이라던가. 든든한 항체가 되어 엄마를 지켜줘야 할 아이들은 집을 떠났고 남편의 무관심만 가시처럼 남았다. 제아무리 좋다는 약조차 몸의 변방만 떠돌 뿐, 오로지 알코올에 의존해 하루를 채워가는 중이라고 했다.

그녀 외로움의 출처가 ‘소리’의 결핍이라면 나의 불면은 ‘소리’의 과잉에서 비롯된 것 같다. 나는 천생이 귀가 얇은 사람이다. 그런 탓인지 마음의 용량을 가늠하지 못하고 모든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래서 늘 피곤했다. 적당히 까불러야 할 쭉정이와 알곡을 구분하지 못했다. 그러곤 늘 남의 입을 탓했다.

작정하고 익숙한 것들로부터의 칩거에 들어갔다. 며칠을 먹고 자며, 오로지 생리적인 데만 집착했다. 난데없는 고요에 당황할 귀를 위해 라디오를 틀어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한 달쯤 지나니 몸이 관성을 내세워 항거를 시작했다.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았고 잠도 오질 않았다. 디제이와 패널들이 연방 떠들어댔지만 환청처럼 아득했다. 어렵사리 잠에 들면 기다렸다는 듯 꿈이 찾아왔다. 일관성 없는 토막 꿈들엔 어김없이 형체 없는 소리만 등장했다. 그제야 알았다. 그 많은 소리로부터 도망쳐 온 내가 그 소리들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었다는 걸. 나도 모르는 사이 그것들을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다 같이 소리를 나타내는 글자인데도 성聲이 단순히 자연의 소리만을 뜻한다면, 음 音은 그 안에 ‘뜻’을 품고 있는 글자란다. 백아伯牙가 종자기鍾子期 사후 거문고를 멀리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나 또한 소리들이 지겨운 게 아니라 ‘나를 알아주는’ 소리에 너무 주렸던 건지도 모른다.

여전히 H는 전화를 걸어온다. 주저리주저리 내뱉는 말은 거의 도사리들. 몸과 맘이 허하니 말이 성할 리 없다. 그러나 나는 전개가 빤한 그녀 소리의 가장 성실한 청자가 되어주리라 맘먹는다. 장황한 사설에 담긴 메시지는 ‘나 이렇게 외로우니 나 좀 바라봐 달라.’는 내면의 외침임을 아는 까닭이다. 깊은 밤중에 무거운 지구가 홀로 고독에 잠긴다는 가을, 불면을 않는 이는 나뿐이 아닌가 싶어 한편 위안이 되기도 한다.

어쩌면 신이 사철의 중간지대에 가을을 배치한 것은 ‘들어주는 데’ 인색한 피조물을 일깨우고자 한 의도였는지 모른다. 그래서 가을엔 유독 소리들이 선명한지도. 가으내 귀를 열어 소리들을 들이라고, 귀를 씻어 도래할 안거에 대비하라는 메시지는 아닐까 싶다.

가을 안에는 참으로 많은 소리들이 기거 중이다. 벼이삭을 쪼는 햇빛 소리, 차고 투명한 바람 소리, 목이 긴 코스모스들의 가느다란 웃음소리, 풀잎을 켜는 풀종다리의 노랫소리…. 그것들은 어린아이가 새의 부리 같은 입술로 건네는 인사와도 같다. 사심을 거느리지 않아 더 많은 의미를 함의한. H 마음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소리 또한 음音보다는 성聲에 가까웠다.

소리의 통로가 비단 입과 귀뿐일까. H 마음속 협곡을 두루 에도는 동안 해질 대로 해진 말의 상흔을 만나기도, 잘 벼린 말의 결석에 찔리는 날이 있었으나…. 마음. 결국 그곳만이 숱한 말들의 순교지가 아니겠는가. 닦고 문지르고 쓰다듬으며 소리를 바룰 때 생의 가을 또한 순연히 물들지 않겠는가.

닫아건 날 많았던 소리의 빗장을 이제야,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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