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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은근과 끈기 (2) / 조윤제 ​

부흐고비 2020. 3. 23. 08:05

은근과 끈기 / 조윤제1


​ 국화(國花) 무궁화는 화려한 꽃도 아니고, 고운 꽃도 아니고, 또 그렇게 아름다운 꽃도 아니다. 그저 순순한 꽃으로 연분홍 빛깔이 야단스럽지도 않고 자차분하지도 않으면서 푸른 잎사귀 사이에 여기 저기 하나씩 피어 있는 것이 은근하여 좋다. 사실상 한 낱의 무궁화 꽃이란 보잘 것 없다. 그러나 그 꽃이 여러 개가 어울려 피어 있고, 그나마 꽃만이 피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성한 잎사귀와 같이 아울러 피어 있는 것은 탐스러워 보기 좋다. 무슨 왁자지껄하여 사람의 기분을 흥분시켜서 좋은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일층 화순(和順)하게 하고 또 안정시키는 데에 좋다. 더욱이 무궁화는 잠깐 피었다가 고대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한 송이 꽃을 보면 피었다가 쉬진다고도 할 수 있겠지마는 전체의 무궁화를 보면) 한 송이가 떨어지면 다른 한 송이가 피고 그 한 송이가 떨어지면 또 다른 한 송이가 달아 피어 실로 한여름과 가을을 두고 끈기 있게 피는 데에 믿음성이 있어 좋다. 누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하였던가. 무궁화는 십 일이 아니라 몇 달을 두고 하루같이 줄곧 왕성하게 핀다. 이로 보아 무궁화는 은근한 동시에 끈기 있는 꽃이다. ​

이 무궁화가 크게 아름다운 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무슨 이유로 국화가 되었으며 언제부터 그렇게 생각되어 왔는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수많은 꽃 가운데 하필 뽑히어 국화의 영예를 얻게 되었다는 것은 필시 우리 민족의 자연관과 관련이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국문학에 나타난 자연을 보면 그 하나하나에 미(美)가 있었던 것이 아니고 그들이 녹아서 조화된 대자연에 미가 있었고, 또 때로 변하여 가는 데 미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영원성이 있는 자연에 미가 있었다. 그러면 이러한 자연의 미를 무엇이라 할 것인가. 구체적으로 봄을, ​

나뷔야 청산에 가쟈 범나뷔 너도 가쟈 ​
가다가 져무러든 곳듸 드러자고 가쟈 ​
곳에셔 푸대접하거든 닙헤셔나 자고 가쟈 ​

라는 시조를 통해 보면, 나비 청산, 꽃잎이 다 하나하나의 자연이건마는 그 하나하나는 봄이라는 전체에 희생이 되진 않았어도 개성을 똑똑히 나타내지 못하고 전체에 녹아들어 그저 은근하게 그 자체를 나타냈을 뿐이고, 또 그러한 개개의 자연이 조화되어 이루어진 봄 자체도 또한 은근함을 면하지는 못하였다. 또, 농촌의 풍경을 ​

동창이 발갓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
쇼 칠 아희는 여태 아니 니러났나냐 ​
재 너머 사래 긴 밧츨 언제 갈려 하나니 ​

라는 시조를 통해 보면, 농가, 소, 농부, 햇빛, 산, 우짖는 노고지리 소리 등이 역시 은근하게 서로 조화되어 잇고 거기에서 고요한 농촌이 은근하게 떠올라 온다. 그리고 이 은근한 자연은 봄을 두고 보더라도 꽃이 피니 봄이요 나비가 나니 봄이라고 한다면 그 꽃과 나비가 없어지는 동시에 봄은 사라지겠지마는, 번하는 꽃과 나비를 초월하여 봄이 존재하였기 때문에 그 봄은 영원하여 끈기가 있고, 은근한 농촌의 풍경도 속히 사라짐이 없이 끈기 잇게 뒤에 남는다. ​

그러면 우리의 자연의 미는 은근하고 끈기가 잇다 하겠으나, 무궁화가 우리의 국화가 되었다는 것은 실로 우리의 이 자연관이 곧 그렇게 하였다는 것을 가히 알 수 있겠다. 그런데 자연관이라 하더라도 우리 생활의 밖에 나타난 하나의 현상에 지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할 때, 그 자연관이라 하더라도 우리 생활의 밖에 나타난 하나의 현상에 지나지 못하는 것을 생각할 때, 그 자연관이 은근하고 끈기 있는 것이라 하면 우리의 생활 그 자체에 또한 은근하고 끈기 있는 데다 있다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사실 우리들의 실제 생활에 있어 의류의 빛깔이나 음식의 조미(調味)에는 다분히 은근한 데가 잇다 하겠으니, 우리나라 의복은 예로부터 백색(白色)을 숭상하였으나 젊은 여자의 의복을 보면 극히 단순하고 연한 빛깔로 조화시켜 은근한 빛을 나타내려 하였고, 또 그 의복 자체가 전신을 감아 고운 육체미를 역시 은근하게 나타내려 하고 있다. 그리고 음식도 김치찌개가 가히 주식물이 되겠으나 이들은 모두 여러 가지 조미를 뒤섞어 만들어서 거기서 우러나오는 맛은 은근하여 그 버무린 자료의 개성적인 맛은 본대 없지마는 그것도 영영 없어진 것이 아니라 그저 은근하게 남아 있어 향기롭다. 이러한 은근은 여운(餘韻)이 있어 저절로 거기 끈기가 붙어 오는 것은 또 정한 이치다. 그런데 의식 생활이라 하면 사람의 생활에 있어 기본적인 요소가 되는 것이나, 여기에 있어 이와 같이 은근하고 끈기 잇는 데가 있다 한다면 우리의 생활 자체에는 반드시 은근하고 끈기 있는 데가 있다 한다면 우리의 생활 자체에는 반드시 은근하고 끈기 있는 데가 잇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그러면 국문학은 어떠한가. 국문학은 민족 생활의 표현이요 민족 마음의 거울이다. 따라서, 민족을 떠나서 국문학이 있을 수 없고, 국문학을 버리고는 완전한 민족 생활을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는 없는 것이니, 은근하고 끈기 있는 민족의 생활은 국문학에 그대로 표현되어야 하며, 또 표현되지 않고서는 안 될 것이다. 실로 국문학은 속일 수 없이 민족의 생활을 그대로 표현하여 은근하고 끈기 있었다. ​

여기 춘향전(春香傳)을 예로 들어 보겠다. 춘향전은 고전문학에 있어 걸작이라 평하고 주인공 춘향은 절대 가인 만고절색이라 한다. 그러나 춘향과 이 도령과의 로맨스쯤은 어디서도 있는 일이고 또 그렇게 가슴을 놀랠만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춘향전을 읽어 보면 어딘지 모르게 좋고 몇 번을 읽어 보아도 좋다. 이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좋다는 점이 하나하나씩 뚜렷이 나타나 있지는 않지마는 거기서 여백(餘白)과 여운이 있어 은근한 맛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춘향의 미에 이르러서는 그 얼굴, 그 몸맵시 어디 하나 분명히 구체적으로 아름답게 묘사된 바도 없고, 그저 여운간지 명월(如雲間之明月)이요 약수중지연화(若水中之蓮花)로다라는 격이었지마는 춘향전 전편을 통해 보면 춘향같이 예쁜 계집이 없다. 즉, 춘향은 둘도 없는 절대 가인이요 만고절색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곧 춘향의 미가 은근하게 무럭무럭 솟아올라 독자로 하여금 그 상상에 맡겨 이상적인 절대의 미경(美境)에 춘향을 끌고 가기 때문이다. ​

또, 구운몽(九雲夢)에서 성진(性眞)이가 수궁(水宮)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석교상(石橋上)에서 꽃 같은 팔 선녀를 만나 연애하는 장면을 일부 인용하여 보겠다. ​

성진이 왕의 괴로이 권함을 벙으리왔지 못아여, 연하여 세 잔을 먹고 용왕께 하직하고 바람을 타고 연화봉으로 돌아올 새, 뫼 아래 이르러서는 스스로 깨달으니, 술 기운이 오라 낯이 달호이거늘 마음에 생각하되, ​

"만일 낯이 붉으면 사뷔(師父) 괴이히 여겨 책(責)지 아니하리요?" ​

하고, 즉시 냇물에 나아가 웃옷을 벗고 두 손으로 물을 우희여 낯을 씻더니, 홀연 기이한 내 코를 거스려, 향로(香爐) 기운도 아니요, 화초 향내도 아니로되, 사람의 골 속에 사무쳐 정신이 진창하여 가히 형언치 못할러라. ​
성진이 생각하되, "이 물 상류에 무슨 꽃이 피었관대 이런 이향(異香)이 물에 품겼는고?" 다시 의복을 정제히 하고 물을 좇아 올라가더니, 이때에 팔선녜(八仙女) 오히려 석교 위에서 말하는지라. 정히 성진으로 더불어 서로 만나니, 성진이 석장(錫杖)은 연화 도량(蓮花道場) 육관대사(六觀大師)의 제자로서, 스승의 명을 받아 산하(山下)에 나갔다가 장차 절로 돌아가더니, 석교(石橋) 심히 좁고 여보살이 교상(橋上)에 않았으니, 사나이와 계집이 깅르 분변(分辨)지 못하게 되니, 잡깐 연보(蓮步)를 움직여 길을 빌리고자 하나이다." ​

팔 선녜(八仙女) 답례하고 이르되, "우리는 위 부인 낭랑 시녜(侍女)러니, 부인 명을 이어 대사께 문안하고 돌아가더니, 첩(妾) 등은 들으니 '도로의 남자는 왼녘으로 말미암고, 부녀는 오른편으로 행한다.'하니, 이 다리 심히 좁고 첩 등이 이미 바랐으니, 도인의 말미암음이 심히 마땅지 아니니, 청건대 다른 길로 행하소서." ​

성진이 가로되, "냇물이 깊고 다른 다리 없으니, 빈승으로 하여금 어느 길로 좇으로 하시나뇨?" ​

선녜(仙女) 가로되, "옛 달마 존자(達磨尊者)는 갈잎을 타고 바다를 건넜다 하니, 화상이 육관 대사에게 도를 배웠으면 반드시 신통이 있을 것이니, 이런 작은 냇물을 건너지 못하여 아녀자와 길을 다투시나뇨?" ​

성진이 웃고 대답하되, "낭자의 뜻을 보니, 행인에게 갈 사는 돈을 받고자 하는도다. 가난한 중에게 어이 금전이 있으리? 마침 명주(明珠) 여덟 낱이 있더니, 이제 낭자께 드려 길을 사고자 하나이다." ​

손을 들어 도화(桃花) 한 가지를 꺾어 모든 선녀의 앞에 던지니, 여덟 봉오리 땅에 떨여져 화하여 명쥐(明珠) 되거늘, 팔인이 각각 주워 손에 쥐고 성진을 돌아보며 찬연(燦然)히 한 번 웃고 몸을 솟아 바람을 타고 공중으로 올라가니, 성진이 석교 위에 오래 있어 선녀의 가는 곳을 바라보더라. ​

성진과 팔 선녀는 내세에 부부의 의를 맺어 만복을 누리고 이간의 가진 영화를 다하였던 것이다. 성진과 팔 선녀의 이 만남의 장면에서 쌍방을 왕래하는 불타는 청춘 남녀의 애정은 한없이 뜨거웠지마는, 그것은 쌍방이 주고받는 간단한 몇 말 가운데 실로 은근히 나타나 있다. 이 얼마나 은근한 연애인가. 다음은 다시 시가에서 몇 예를 들어 보겠다. ​

가시리 가시리잇고 나난 ​
바리고 가시리잇고 나난 ​

날러는 엇디 살라하고 ​
바리고 가시리잇고 나난 ​

잡사와 두어리마라난 ​
선하면 아니 올셰라 ​

셜온 님 보내노니 나난 ​
가시난듯 도셔 오쇼셔 나난 ​

이것은 고려때의 '가시리'라는 이별가다. 그리운 님을 보내는 애끊는 정은 측량할수 없고 그 애원(哀願), 호소, 연연한 정은 지극하였지마는 그 정은 실로 은근히 나타나 있다. 또, ​

청산리(靑山裏) 벽계수(碧溪水)야 수이감을 쟈랑마라
일도 창해하면 도라오기 어려오니 ​
명월이 만공산하니 수여 간들 엇더리 ​

이것은 황진이의 시조인데 뿌리치고 가는 님을 은근히 붙들고, 또 ​

전나귀 모노라니 서산에 일모(日暮)로다. ​
산로(山路) 험하건든 간수(澗水)나 잔잔커나 ​
풍편(風便)에 문견폐(聞犬吠)하니 다왓는가 하노라​

이것은 산촌 은자의 집 혹은 그 산촌을 읊은 듯한 고시조이나 두문동(杜門洞) 같은 산촌이 황혼에 은근히 가로누워 있고, 거기서 사는 사람의 생활이 또한 은근히 떠올라오고 있다. ​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초(秋草)로다 ​
오백 년 왕업이 목적(牧笛)에 부쳐시니 ​
석양에 지나는 객이 눈물 계워 하노라 ​

이것은 고려의 유신(遺臣) 원천석(元天錫)의 회고가(懷古歌)이다. 여기도 쓸쓸한 고도(古都)가 은근히 말없이 가로누워 있을 뿐 아니라, 땅이라도 꺼질 듯한 유신의 큰 한숨과 말할 수 없는 깊은 설움이 문자(文字) 밖에 은근히 솟아오른다. ​

이렇게 소설에나 시가에서나 국문학은 은근하다. 이러한 은근은 또 저절로 끈기가 붙어 오는 것이니 춘향의 미에나 성진의 연애에는 끝이 없어서 끈기가 있고, 또 '가시리'에 보더라도 그칠 줄 모르는 그 애운하는 정은 끝간 데가 없어서 역시 끈기가 있다. 그러면 다시 이 끈기의 문학을 몇몇 들어 보겠다. ​

이 몸이 주거 주거 일백 번 고쳐 주거 ​
백골이 진토(塵土) 되어 넉시라도 잇고 업고 ​
님 향한 일편 단심이야 가꾉 줄이 이시랴 ​

이것은 유명한 포은(圃隱)의 단심가(丹心歌)이다. 죽더라도 내 마음은 변할 수 없다는 '주거 주거'라 하고, 또 '일백 번 고쳐 주거'라 하였으며, 그래도 만족하지 않아 '백골이 진토 되어'라 하였는가 하면, 다시 '적시라도 잇고 업고'라고 하여 그때까지도 내 마음은 변하지 못하겠다 하였다. 그 끝없이 그어가는 끈기란 실로 놀랄 만하다. 또 다음 노래, ​

층암 절벽상(層岩絶壁上)의 폭포수는 콸콸 수정렴(水晶廉) 드리운 듯 이 골 물이 수루루루룩, ​
저 골 물이 솰솰, 열의 열 골물이 한데 합수(合水)하여 천방져 지방져 소쿠라져 펑퍼져 넌출지고 ​
방울져, 건너 병풍석으로 으르렁 콸콸 흐르는 물결이 은옥(銀玉)같이 흩어지니, 소부(巢父) 허유​
(許由) 문답하던 기산 영수(箕山潁水)가 예 아니냐. ​

라 하는 유산가(遊山歌)의 일절에 보면, 이것은 봄날 산 들에 얼음 녹은 물이 풍부하게 흘러간다는 말인데 그 흐르는 물이 어쩌면 그렇게 끈기 있게 흘러가느지 도무지 끝간 데를 볼 수 없다. 또, ​

사랑 사랑 고고이 매친 사랑 왼바다를 두루 덮는 그몰같이 매친 사랑 ​
왕십리라 답십리라 참외 너출 수박 출 얽어지고 틀어저서 골골이 벋어 가는 사랑 ​
아마도 이 님의 사랑은 끝간 데를 몰라 하노라. ​

나모도 바히돌도 업슨 모헤 매게 친 가토리 안과, 대천(大川) 바다 한가온대 일천 석(一千石) ​
른 배에 노도 일코 닷도 일코 뇽총도 근코 돛대도 것고 치도 지고 바람 부러 물결치고 안개 뒤​
섯계 자진 날에 갈 길은 천 리 만 리 나믄듸 사면이 거머어득 져뭇 천지 적막 가치노을 떴는듸 ​
수적(水賊) 만난 도사공(都沙工)의 안과, 엇그제 님 여흰 내 안히야 엇다가 비흘리오. ​

이러한 사설시조에서 보더라도 끈기는 역시 대단하여 도대체 어디까지만 가면 끝이 오는가 하는 것을 도무지 알 수 없다. ​

이와 같이 국문학은 은근하고 끈기 있다. 민족의 생활이 은근하고 끈기 있어 자연미를 관찰하는 데 있어서도 은근하고 끈기 있었고, 또 그 생활이 국문학에 표현되어 여기에 은근하고 끈기 있는 문학을 보았다. 물론 국문학은 오직 은근하고 끈기 있다고만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외에도 또 다른 성격이 있다고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나, '은근'과 '끈기'는 국문학의 하나의 중요한 특질이 될 것은 의심할 수 없다. ​

  1. 조윤제(1904~1976): 국문학자. 호는 도남. 경북 예천 출생. 경성 제대 졸업 문학 박사. 서울대 문리대학장, 성균관대 부총장 역임. 그의 국문학사 연구는 민족 정신의 고취와 독립 운동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저서로 "국문학사" "조선 시가 연구" 등이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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