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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오뎅끼데스까 / 김정화

부흐고비 2020. 6. 11. 10:07

지나던 발걸음을 멈춘다. 골목시장 포장집에서 붕어빵 틀을 치우고 어묵 솥을 걸었다. 주황색 포장 천막에 '오뎅끼데스까'라고 쓴 비닐 간판이 재치 있다. 동강 난 무가 뜨거운 육수 속에 담기고 굵은 대파 사이로 청홍초가 띄워졌다. 펄펄 끓는 국물 속에 잠긴 어묵들이 얌전하다. 뿌옇게 피어오르던 김이 바람에 흩어져 내린다. 마치 자욱했던 물안개가 사라지듯 가뭇없다.

짭조름한 물 냄새가 난다. 때로는 냄새가 시간을 돌려놓기도 하는 법. 내게도 순식간에 기억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음식 냄새가 있다. 강물같이 파란 재첩국 내음을 맡으면 "재칫국 사이소" 외치며 발품을 팔던 어머니의 여윈 목소리에 선뜻 숟가락을 들지 못하고, 첫 소풍 때 아버지가 조선간장을 뿌려 토관같이 둘둘 말아 주었던 김밥의 고소함은 아직도 코끝에 배어 있다. 그러나 지금 골목길을 가득 메우는 저 냄새…. 어묵 솥이 뿜어내는 물비린내를 맡는다. 익다, 낯설지 않다. 아린 기억이다.

언니가 살던 춘천에는 딱 두 번 갔다. 처음 본 소양강 새벽안개는 기가 막혔다. 바닥에서 끓어오르던 물안개가 강변 버드나무 숲을 다 태울 듯 흰 불로 번져 오르다가 해가 뜨자 거짓말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떠나는 것들은 스스로 흔적을 지운다. 강물도 물길을 남기지 아니하고 바람도 소리를 재운다. 노을은 그림자를 싣고 가고 산사의 북소리도 능선을 타고 흘러 다시는 오지 않는다. 심지어 손 한번 흔들지 않고 가 버린 사람도 있다. 사라진 자리에 남는다는 것은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가.

두 번째 만난 소양강은 질리도록 푸르고 잔잔했다. 지난해 가을, 그 강물에 연꽃 같은 여자가 몸을 날렸다. 연화蓮花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 작고 가냘프고 정 많던 여자, 언제나 잘 웃던 여자…. 언니를 보내러 간 그날의 소양강에서는 물안개의 흔적을 다시 찾지 못했다. 한낮의 강물은 이생의 외로움을 저편으로 옮기느라 아주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뼈 항아리는 따뜻했다. 한 사람의 인생이 한 줌의 유골로 남아 봉합되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나오는 길에 자꾸만 목이 탁탁 막혀 왔다. 눈물이 안에서 마르는지 속이 바짝 타들어 갔다. 아버지와 엄마와 이복오빠의 죽음 때도 같은 증세였다. 진정 뜨거운 눈물은 혼자 있을 때 흘러내린다.

부산행 버스를 타기 위해 한참을 걸었다. 길은 걸을수록 더욱 낯설어졌다. 춘천을 떠올리면 언제나 따라붙던 '호반의 도시'나 '소양강 처녀'같은 낭만적 이름들도 생경해졌다. 안개가 좋아서 살고 싶었던 곳, 나와 춘천의 인연도 여기까지라는 허무함이 밀려왔다. 서서히 허기가 들었다. 그제야 며칠 동안 제대로 음식을 삼키지 않았음을 알았다.

국물 생각이 간절했다. 터미널 근처에는 길손을 위한 음식점이 즐비했지만 쉽게 마음 닿는 곳이 없었다. 평소 입맛을 당기던 매운 닭갈비는 간판만 올려 봐도 속이 쓰리고, 혼자 먹기에 좋을 중국 음식도 배만 더부룩해질 것 같았다. 그때였다. 길모퉁이 작은 어묵 가게의 허연 김이 눈길을 잡았다. 허리가 굽은 가게 할머니는 나에게 건성으로 인사를 하고 연신 찬거리를 다듬었다. 어묵 솥 가득 국물이 소리 내어 끓고 있었다. 곡기를 거부하던 몸이 뜨거운 국물 한 국자를 받아들였다.

언니는 육신을 바수어 이승을 하직하고 생선은 온몸을 바쳐 어묵으로 다시 태어났다. 나는 그 생선묵 국물을 연거푸 들이켰다. 따뜻한 기운이 전신을 데워 왔다. 아늑했다. 지느러미를 세운 물고기들이 내 몸을 휘돌면서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만 같았다. 울컥 생목이 넘어왔다. 참았던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아서 더 크게 후룩후룩 소리 내어 마셨다.

춘천 어묵은 부산 어묵처럼 탱탱하지 않았다. 꼬깃꼬깃하게 접혀서 퉁퉁 불어터진 폼이 속울음을 삼킨 내 몰골과 엇비슷했다. 어묵집 앞에만 가면 습관처럼 흥얼거려지는 노래가 생각났다. "삼거리 오뎅탕집 내가 정녕 울고 있었나 있지도 않은 사랑을 키워 갚지도 못할 공약을 걸고 하지도 못할 기적을 깨워 그렇게도 가지려 했나… 다 지난 사랑아 더 이상 날 잡지 마라 이 못난 숨 한번 들이키고 난 내 갈 길을 가련다…." 부산 출신 가수 정차식이 흐느끼듯 부른 '삼거리 오뎅탕집'이다. 쓸쓸한 노랫말에 언니의 야윈 얼굴이 자꾸 겹쳐 왔다. 그날의 어묵 국물은 산 자의 빈속을 채우며 남은 삶을 가없이 위로해 주고 있었다.

포장집 어묵이 뭉근히 끓는다. 음식 중에 어묵 국물만큼 만만한 것이 있을까.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되고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해도 괜찮다. 꼬치어묵 하나를 먹으며 몇 번이나 국물에 국자를 들락거려도 눈치 보이지 않고, 까다로운 주모에게 생소주 한 병만 시켜도 어묵 국물만큼은 덤으로 내어준다. 심지어 '어묵 국물 무한리필'이라고 붙여 놓고 인심을 얻는 리어카 어묵집도 본 적 있다. 접빈의 격이 있는 음식은 아니지만 서민을 섬기는 따뜻함이 담겨 있다. 뜨거운 국물을 천천히 마셔야 하듯 인생도 욕심내지 말라고 넌지시 알려준다.

태생적으로 주인공이 될 수 없는 것도 국물의 운명이다. '국물부터 마신다'거나 '희멀건 국물만 있더라'는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하고, '국물도 없다'는 매운 말에 쏘이기도 한다. 멀쩡한 입천장을 데게 하는 주범이 될 때는 기가 팍 꺾이고 만다. 건더기를 덜 익히거나 불게 해서도 아니 되며, 갖은 양념이 맛을 보태어줄 때까지 묵묵히 불기운을 견뎌야 한다. 맛의 시험대에서 태클을 당하는 것도 국물이 먼저다. 싱겁지도 짜지도 않은 조화와 균형미를 갖춰야 한다. 삶도 그렇다.

꼬챙이에 꿰인 어묵들이 몸을 불려 낸다. 몇 해 전의 일이다. 해마다 여는 통도사 봄꽃 시화전에 어느 남성작가가 '오뎅꽃'이라는 시를 써서 내건 적이 있다. 모두 동백과 매화, 금낭화와 산수유 등 계절 꽃으로 글꽃을 엮었는데 그분의 엉뚱한 표현에 적이 당황하였다. 그런데 가마보코라는 어묵의 일본 이름이 부들꽃 이삭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니 충분히 고개가 끄떡여지는 일이다. 열기 가득한 국물 솥에서 봄꽃이 된 어묵들이 춘몽을 꾸고 있다.

내가 어릴 때는 천어賤魚로 어묵을 만들었다. 읍내 공장에서는 깡치나 매퉁이 같은 잡어로 가공했지만, 시골집에서는 새끼 물고기들을 한뎃솥에 쪄서 통째 절구에 바수었다. 구수한 시장 어묵 맛과 견줄 수는 없어도 잔뼈가 씹히던 손어묵과 어수제비의 비릿한 맛을 잊어본 적이 없다. 뼈째 내어주는 것은 아낌없이 목숨을 바친다는 뜻이다. 인간을 위한 장렬한 죽음, 그것은 절대적 헌신이다. 오늘날 어묵이 뼈를 발라낸 연육으로 만들지라도 어묵과 마주하면 생선의 거룩한 희생을 먼저 생각한다. 생선을 뒤집으면 선생이 되듯이 천어賤魚를 고쳐 천어天魚라고 늦은 글 대접이라도 해 주고 싶다.

무엇보다 어묵의 미덕은 부드러움에 있다. 물어묵을 건져 한입 베어 보라. 사탕의 단단함이나 청량음료의 되쏘임처럼 항거나 역행이 없다. 마치 바람을 타고 풀이 눕듯 머뭇거림이나 망설임 없이 단번에 꺾여 입안으로 엎드린다. 어묵의 순한 천성이 사람의 마음을 열게 만드는 것이다. 이 뻣뻣한 세상에 자신에게 바싹 수그려 준다는 것이 얼마나 갸륵한 일인가.

빨간 플라스틱 컵에 담긴 어묵 국물을 삼킨다. 익숙한 맛이 목젖을 타고 흐른다. 아픈 마음을 데워주던 온기가 온몸을 감싼다. 맛이 다감하다. 언니가 떠나던 날 춘천터미널에서 먹었던 바로 그 맛이다. 어묵 솥에서 뿌옇게 물안개가 피어오르더니 짧은 인연처럼 금세 흩어지고 만다.

여리디여리던 사람. 나는 또다시 잊히지 않는 한 사람을 생각한다. 이곳에 오래 서 있으면 "오뎅끼데스까" 하고 툭툭 농을 치며 다가올 것만 같은 그리운 사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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