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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김훈의 자전거 여행'

부흐고비 2020. 6. 11. 10:10

'여름에 이동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 경기만 등대를 찾아' 중에서

선박을 움직여 대양을 건너가는 항해사는 <나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대답할 수 있어야만 목적지 항구에 닿을 수가 있다. 그리고 그 '나'의 위치는 물 위에서 항상 떠돌며 변하는 것이어서 항해사의 질문은 늘 새롭게 태어난다. 지나간 모든 위치는 무효인 것이다. 바다 위에서 '나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은 미래의 시간과 함께 인간의 앞으로 다가온다.

내가 나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거점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밖에 있다. 나를 움직여주는 지표는 나침반 바늘의 중심점이 아니다. 나침반 바늘의 중심점은 나의 관념적 위치이지, 나의 현실적 위치가 아니다. 관념상의 위치는 외로운 단독자의 위치다. 나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나침반 바늘 중심점에 새겨놓은 이 단독자의 위치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단독자의 위치가 나의 밖에 존재하는 거점들과 교신하지 못할 때 선박은 방향을 설정할 수 없고, 사람들 사이에는 신호가 작동하지 않는다.

내가 나에게 위치를 가르쳐주는 것은
내가 아니라 너이며,
이 세계이며, 이 세계의 표지물이다.

항해사는 등대의 위치와 등대의 이름을 알아야 비로소 바다 위에 뜬 저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다. 내 밖에 존재하는 타자의 위치와 그 타자의 이름을 알아야만 나는 나를 확인할 수 있다.

모든 등대는 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깜박인다. 등대는 밤바다의 선박을 향해서 그 선박이 존재의 지표로 삼을 수 있는 신뢰할 만한 타자로서 등대 자신을 제공해 주는 것이다. 그 신호를 접수하는 항해사는 등대가 저 자신을 불러대는 이름을 듣고 자신의 위치와 진로를 가늠한다.

항해사는 자기 존재의 좌표와 진로의 방향이 선박의 엔진에 있지 않고, 선박의 뱃머리에 있지 않고, 방향타의 회전 각도 속에 있지 않고, 오직 선박 밖에 존재하는 타자와의 거리와 각도와 그 관계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는 운명을 안다. 그는 그 운명에 순응하는 방식으로 대양을 건너가고 모항으로 돌아온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신호가 가장 아름답다. 신호는 나 자신을 상대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자의 슬픈 울음과도 같다. 그 신호들이 서로를 확인하고 서로의 상대성을 긍정할 때, 선박은 대양을 건너가고 자동차는 고속도로를 달릴 수 있고 자전거는 산맥을 넘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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