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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해지 / 정은아

부흐고비 2020. 6. 13. 00:08

 핸드폰을 해지하러 대리점에 갔다. 주인 잃은 핸드폰을 계속 유지할 수는 없었다. 번호표를 뽑고, 순서를 기다렸다. 해지 전에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전원을 켰다. 다시 생명을 얻듯 불빛이 반짝였다. 갑자기 노래가 흘러나왔다. 잘못 누른 걸까. 재빨리 소리를 줄이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니, 음악 파일이 재생 중이었다. 꿈속에선 보이나 봐.

 

꿈이니까 만나나 봐.

그리워서 너무 그리워. 꿈속에만 있는가 봐.

- ‘부활’의 노래. ‘생각이 나’

 

남편의 핸드폰은 다시 살아나 노래를 불렀다. 가슴이 일렁거렸다. 눈물샘은 버티지 못하고 터졌다. 대리점 안은 고객들로 소란스러웠고, 아무도 나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어폰을 끼고 고개를 숙여, 흘러내린 머리카락 안으로 숨었다. 가려진 작은 공간에서 노래가 하는 얘기를 들었다. ‘그가 마지막으로 들었던 노래였을까. 이 노래를 들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혹시, 나에게 들려주는 마지막 노래일까.’ 두 손으로 지압하듯 눈을 꾹꾹 눌렀다. 이제 그만 멈추라고.

 

해지는 서류가 필요했다. 그와 내가 이 세상에서 맺은 관계가 적힌, 종이 쪼가리를 원했다. 혼인관계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와 같은 서류는 그와 내가 부부였고, 가족이었다는 것을 알려줬다. 이제 서류는 다른 것도 말해줬다. 내 삶도, 내 가정도, 내 아이들도 불완전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배우자 이름 옆에 네모 테두리로 ‘사망’이라고 찍힌 후로, 세상이 나를 다르게 보는 듯했다. 어쩌면, 출근했던 남편을 영안실에서 마주한 순간, 나 스스로 ‘예전과 다른 나’로 인식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서류를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서류를 내밀 때면, 한없이 초라해졌다. 서류를 보고 알았다는 듯이, 흘깃대는 사람들에게 동정의 눈길을 받아야 했고, 서류를 보고도 내 상황을 읽어내지 못하는 사람에게 내 입으로 직접 알려줘야 했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와 나의 관계를 알리고, 그가 내 삶 속에서 빠져버린 이유를 설명하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죽음’을 말해야 했다. 그럴 때면, 마치 내가 금기어를 말하는 사람처럼 조심스러웠다. 이 세상에는 죄를 짓고도 떳떳하게 제 할 말 하며, 아무 잘못 없다는 듯이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나는 무슨 잘못을 했기에, 세상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은 걸까. 왜 사람들 앞에서 주눅 들어야 하나. 사랑한 것이 죄는 아닐 텐데…. 상실 후에, 끊임없이 밀려오는 두려움과 헛된 죄책감은 한동안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세상은 무심했다. 그가 없어졌는데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흘러갔다. 나만 고장 난 시계처럼 멈춘 채, 시간을 거꾸로 돌리려 애썼다. 혹시나 하는 기대로 눈을 비비며 다시 봐도, 언제나 ‘지금 현실’에 놓여 있었다. 울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남편과의 사별은 내가 감당하기엔 버거웠다. 살아온 삶이 짧은, 30대 중반에게는 예상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 문제였다. 머리로 생각해도 풀리지 않았고, 마음으로 풀려 해도 눈물에 젖어 번지고, 찢어져 문제조차 읽기 힘들었다. 별도리가 없었다. 주변에서 시키는 대로, 아무 생각 없이 움직였다.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내 앞에 놓인 것들을 풀어야 했다. 시계 방향에 맞춰, 시계의 움직임을 따라 하나씩 풀어가는 것. 그게 세상을 사는 법이었다.

 

남편의 해지 담당자는 나였다. 세상의 틀 안에서 그가 맺은 계약들을, 내가 해지해야만 했다. 누군가가 나를 도와줄 순 있어도, 나를 대신할 수 없었다. 하고 싶지도 않았고, 맡고 싶지도 않았지만, 내가 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가 세상에서 맺은 관계 중 가장 친하고 가까운 관계는 나였으니까. 계약 당사자는 아무리 불러도 불러낼 수 없다. 이미 죽음과 새로운 계약을 맺어버렸으니까. 그는 거부할 수 없는 힘에 끌려, 낯선 세계로 넘어가 멀뚱히 이쪽을 바라봤는지도 모른다. ‘여기는 어디고, 저기는 어딘가. 왜 다시 건너가지 못하는가.’ 우리가 고심해도 여전히 나는 여기에, 그는 저기에 있다.

 

해지는 내 삶 속에서 그를 지워나가는 과정이었다. 계약을 하나씩 해지할수록 그 사람의 흔적이 하나씩 지워졌다. 내 곁에서 평생 함께 할 거라던, 그는 세상에 없는 존재가 되어갔다. 어떤 곳은 그의 이름이 있던 자리에 내 이름이 들어가 앉기도 했다. 결국, 모든 삶의 서류에 그는 존재하지 않았고, 나는 아직 존재했다. 누군가 나에게 반복된 해지 작업을 시키는 것 같았다. 이제 그만 받아들이라고, 이렇게 서서히 지워나가는 거라고 말이다. 상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사랑하는 사람을 내 손으로 끊고 지우는 것은 잔인했다.

 

핸드폰은 서류가 있으면 해지할 수 있다. 마음은 지우고 싶다고 지워지는 것이 아니었고, 지우기 싫다고 지워지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어떤 서류를 내밀어야 마음 해지가 가능할까. 가족관계증명서를 가만히 바라봤다. ‘배우자’ 이름 옆에 선명하게 찍힌, ‘두 글자’가 마음에 걸렸다. 예전에는 한낱 서류일 뿐이었는데, 이제는 ‘사망’이란 글자로 도배된 상실의 공간 같았다. 상실의 흔적 없이 말끔하게 정리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릿함이 흐릿해지기를 묵묵히 기다리는 것이다. 아래 칸으로 내려가니 ‘자녀’가 보였다. 큰딸, 작은딸 이름이 칙칙해진 내 눈을 밝히듯, 차례로 들어왔다. 우리가 있다고, 혼자 아프지 말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뭐든 같이 하자고 했던 남편과 나의 약속이, 이젠 나와 아이들의 약속으로 바뀌고 있었다. 서류를 접었다. 아무래도 이번 생엔 해지 불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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