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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부부 / 강호형

부흐고비 2020. 8. 4. 11:16

무던한 부부지간에도 가벼운 말다툼쯤은 있게 마련이다. 그것이 도에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없는 것보다 낫다는 말도 있다. 실제로도 가벼운 입씨름이 자칫 무미건조해지기 쉬운 부부간에 활력소 구실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짓도 오래 지속하다 보면 단골 ‘메뉴’ 같은 것이 생기기 마련인데, 그것이 자존심에 저촉(?)되는 사안일 경우 잘못하면 위험 수위로까지 치닫는 수도 있다. 자식에 관한 문제가 그 중의 하나다.

자식은 어디까지나 부부의 합작품이니만큼, 부모 중 어느 한 사람을 닮거나 두 사람의 특성을 적당히 섞어서 닮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이럴 경우 부모 모두가 조금도 나무랄 데 없는 완전한 인간이고, 자식들 또한 그런 부모를 완벽하게 닮는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것은 한낱 이상론에 지나지 않는 욕심일 뿐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데 문제가 있다.

남매를 둔 우리 부부의 경우가 그렇다. 외모로만 보면 딸은 나를 닮았고, 세 살 아래인 아들은 아내를 닮았다는 것이 중평인데 외모가 반드시 성격까지 결정하지는 않는 것 같다. 비교적 활달한 편인 아내의 성격이 딸아이에게 더 많이 유전된 듯한 반면, 그렇지 못한 내 성격은 아들아이에게서 더 많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외모나 성격이 이처럼 공평하게(?) 교차하여 닮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발견될 때마다 원망의 화살은 내게로만 날아드니 딱한 노릇이다. 그 첫째는 고집이 세다는 점인데, 여기서 안씨와 최씨 제현께는 양해를 구하는 바이거니와, 고집이 세기로는 ‘안 · 강 · 최’라는 말을 진작 들었더라면 인생행로가 바뀌었을 것이라는 푸념이 나오는가 하면, 고집불통의 세 강가들 틈에 어쩌다 선량한 오씨 하나가 끼이게 된 것은 순전한 팔자소관이라며 신세를 한탄하기도 한다. 요즈음은 예외가 인정되는 모양이지만, 우리나라 관습상 자식의 성씨는 아버지를 따르도록 규정한 민법의 오류를 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아내는 언필칭 안 · 강 · 최를 내세우지만 내가 보기에는 오씨 고집 또한 이에 뒤질 것이 없어 보이니 하는 말이다.

둘째는 씀씀이에 관한 문제다. 아이들 용돈을 월급제로 하고 있는데, 나이 차이만큼 액수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딸아이는 그 중의 일부를 떼어 적금을 넣는 반면 아들 녀석은 보름을 못 넘기고 가불 신청서를 내밀기가 예사인 것이다. 물론 가불이 쉬울 리 없다. 그러니 정 급해지면 제 누나에게 꾸어 쓰기도 하는 눈치인데 그것도 여의치가 않았던지 어느 날인가는 무슨 쪽지를 내밀면서 서명을 해달라기에 보니 보증서였다. 저 아무개는 누나에게 일금 얼마를 차용하는 바, 모월 모일까지 갚을 것이며, 그 보증인으로 나를 세운다는 내용이었다. 어이가 없어 두 놈을 싸잡아 야단을 치려니까 딸아이가 해명을 하고 나선다. 녀석의 신용도가 엉망이라 그렇게라도 해서 버릇을 고칠 작정이라는 것이다. 이 장면을 목격한 아내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아이들이 혼쭐이 난 것은 물론 그날 저녁에는 애꿎은 나까지 공격을 당했다. 녀석의 하는 짓이 나를 닮았다고……. 대들어 봐야 과거지사를 들먹일 것이 뻔했으므로 국으로 잠이나 청할밖에.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이들의 학교 성적이다. 이 경우에도 물론 올라가는 건 오씨 덕, 떨어지는 건 강가 탓이다. 그러나 이건 자존심의 문제다. 내가 여사여사한 과거의 실적을 열거해 가며 반론을 제기하면 아내는 더 큰 실적을 들고 나온다. 차츰 언성이 높아지고 목에 핏대가 설 때쯤 되면 어김없이 결정타가 날아온다. 게으르다는 것이다. 성적이 떨어지는 것은 사당오락(四當五落)이라는 불변의 진리(?)를 도외시하고 게으름을 피운데서 오는 필연의 결과이며, 그 책임 역시 못된 유전인자를 물려준 내게 있다는 것이다. 하기야 사십대의 만학으로 나로서는 엄두도 내본 일이 없는 학위까지 취득한 ‘오씨’인 만큼 이 대목에서도 대세를 뒤집기는 불가능이다.

그러나 이런 오씨에게도 약점은 있다. 운동신경이 평균치 이하로 둔하다는 사실이 그것인데, 여학교 때 조별로 달리기를 하면 다음 조의 선두와 경쟁을 벌였노라고 고백을 한 적이 있을 정도다.

마침 딸아이가 달리기에 일등을 한 일이 있었다. 아내의 약점을 알고 있는 나로서야 더 좋은 기회가 없다. 항복을 받아낸 것은 물론이었다. 아들아이가 체력장에서 만점을 받았다고 자랑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래저래 기분이 좋은 김에 내 자랑까지 늘어놓았다. 내 말에 과장이 있었다 해도 나의 2세들이 현실로 그것을 입증한 이상, 그 방면에 관한 한 열성인자의 보유자인 아내로서는 믿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사실 단거리 경주며, 평행봉, 철봉 등에 상당한 재능이 있었노라고 떠벌인 것이 터무니없는 거짓말은 아니기도 하다.

얼마 전, 일요일 아침이었다. 모처럼 아내와 아침 산책을 나섰다. 아파트 단지 뒷동산에는 여러 개의 그만그만한 운동장이 있고 운동장마다 여러 가지 운동기구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일요일 아침이라 늦잠들을 즐기는지 젊은이들은 보이지 않고 대여섯 분의 남녀 노인들만 배드민턴을 치거나 맨손체조를 하고 있었다.

운동장을 둘러보다가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이 평행봉과 철봉틀이었다. 불현듯 옛날 생각이 났다. 실력(?)을 과시할 기회다 싶어 평행봉에 뛰어올랐다. ‘배 튀기기부터 시작해서 물구나무서기까지 보여 주리라.’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물구나무서기는 고사하고 첫 동작부터 실패였다. 몸은 납덩이처럼 무거운데 팔에는 힘이 붙지를 않아 후들거리는 것이다. 몇 번을 더 시도해 봤지만 참담한 실패였다. 망신은 이렇게 시작되어, 철봉에서 턱걸이 세 번을 채우지 못해 발버둥을 치다가 내려오는 것으로 끝났다.

벤치에 앉아 있은 아내 곁으로 갔다. 변명 따위는 하지 않기로 했다. 뭐라고 놀리든 다 받아 줄 참이었다. 그런데 한참을 지나도 아내는 말이 없다. 웬일인가 싶어 돌아보니 아내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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