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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풍경소리 / 김이랑

부흐고비 2020. 8. 27. 14:14

땡그랑 댕 댕

맑은 소리가 절간의 고요를 깨운다. 동그란 소리가 물수제비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가는데, 저 파장에 공명하지 못하는 까닭은 내면의 지평이 시끄러운 탓이다.

닭 울음소리가 아침을 깨워 지게를 지고 나서는 보행의 나날, 게으르지 말라고 밭이 있고 목마르지 말라고 샘이 있어 삶이 척박하지는 않다. 알몸 가릴 무명 몇 필 얻을 수 있기에 춥지도 않다. 외롭지 말라고 이웃이 있어 내 하늘에게 버림받지 않았음도 안다. 하지만, 가끔 하늘을 보면 알 수 없는 허기를 느낄 때가 있다.

사람 사는 세상은 요란하다. 마찰음, 파열음, 충돌음, 문명의 소음은 하루도 쉬지 않고 일상을 흔들어댄다. 빠앙 참을성 없는 소리에 귀가 멍하고 끼이익 놀래는 소리에 오금이 저린다. 쿵쾅쿵쾅 묵직한 소리에 심장이 두근거리고 부아앙 성질 부리는 소리에 몸이 움츠러든다.

불협화음을 피해 구름 위에 누워 휘파람 불 수 있다면 꼬리에 불 달고 솟구치다 곤두박질쳐 구겨지는 망신쯤이야 별일일까만, 어디 하늘이 무거운 자에게 자리를 내주던가. 들짐승의 욕심 비우고도 모자라 뼛속까지 비우고 하늘로 간 새도 지상에서 둥지를 틀고 알을 낳는 것을.

지상은 오늘도 다툼의 연속이다. 공평하다는 하늘은 어째서 싸움을 말리지 않는 걸까. 남의 장미를 탐하다가 가시에 찔리고, 앞서가려다가 돌부리에 걸려 무릎이 깨지고, 때론 마음이 가라고 하는 길을 거역해 길을 잃고 헤매다가 깨달음 한 조각이라도 건지라는 걸가. 아니면 행위 하나하나에 점수를 매겼다가 나중에 그 업보를 심판이라도 하려는 속셈일까.

불혹을 넘은 나이에 삶에게 야단맞았다. 마뜩찮은 세상에게 마구 대들다가 마음이 많이 망가져 있었다. 잠시 이 산에서 저 강으로 떠돌다가 고향을 찾았다. 유년기에 소풍 가던 기스락에 아담한 절간 하나 있어 그곳에 잠시 머물기로 했다. 세속의 시름을 모두 짊어진 듯 몸도 마음도 무거웠다. 자다가도 불쑥 깨어나 소리를 지르곤 했다. 이대로 삭발하고 불가에 귀의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새벽마다 참선에 들었다. 천 배니 만 배니 하는 자만의 셈은 하지 않았다. 삶이 낙제를 받더라도 불구덩이에는 던지지 마십사고 빌지도 못했다. 오체투지로 영혼의 고향으로 가는 행자처럼 몸만 접었다 폈다. 적멸궁 안에는 옷깃 스치는 소리만 들렸다. 하루 이틀 사흘, 달포…….

바다로 가는 물조차 숨을 죽인 새벽, 여느 날처럼 고요를 가르며 적멸궁으로 걸어갔다. 일찍 길 떠난 바람이 적멸궁 처마를 지나다가 풍경을 툭 건들었다. 참선의 뜰에 풍경소리가 울려 퍼졌다.

땡그랑 댕댕

여느 때 듣던 소리와 달랐다. 뭐라고 할까. 맑디맑은 웅덩이 고요한 수면 위에 물 한 방울 떨어지는, 유리구슬보다 더 투명한 소리였다. 나는 적멸궁 계단에 앉아 눈을 감은 채 풍경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명상에 들었다.

풍경을 깨우는 건, 어두운 세상을 환히 밝히는 해도 아니요, 삶에 지친 하루를 은은히 위무하는 달도 아니다. 범종을 울리는 스님도 아니요, 깨달음을 구하는 행자도 아니요, 정처 없이 다니다가 절간을 지나는 바람이다.

어째서 풍경을 처마 끝에 걸어 놓았을까. 풍경은 작은 종이다. 종은 속을 다 비운 채 열려 있고 또 아래로 열려 있어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 괴로워하다 별을 헤던 시심詩心도 바람이 깨웠으니,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어느 곳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혼만 깨우라고 바람의 길목에 걸었으리라.

풍경은 남을 놀라게 하지 않는다. 둥둥둥 가슴을 훙분시켜 전의를 북돋우지도 않는다. 간지럽게 속삭이지 않는다. 얄팍한 동전처럼 짤랑대지도 않는다. 처마 끝에 매달린 채 바람이 떠밀어도 자기 잘못인 양 제 몸을 때릴 뿐이다.

잘 되면 내 탓이요, 안 되면 남 탓이요, 욕심은 챙기고 책임은 미루어야 내가 잘사는 세상이다. 배는 부르되 철이 들지 않은 영혼들로 어지러운 세상이다. 제 몸을 때려 그 아픈 파장으로 세상을 나무라는 이 저 말고 또 있을까.

풍경소리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들린다. 밤손님에게는 뒷걸음질 치다 양은그릇 차는 소리요, 소소한 탐욕에 찌든 속물에게는 동전 떨어지는 소리다. 득음하려는 소리꾼에겐 온몸이 공명하는 소리요, 마음의 지평을 넓히는 명상가에게는 심안을 밝히는 소리다. 마음 맑은 사람에게는 내면을 가만히 두드리는 소리다.

아직 내 마음의 풍경소리는 둔탁하다. 내 안에 응축된 욕심 덩어리들을 다 도려내려면 더 아파야 한다. 겉을 단단히 하려면 더 담금질해야 한다. 내면의 중심에 추 하나 달고 빈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을 때, 모르는 사람이 내 어깨를 툭 치면 맑에 웃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절간에 가면 처마 모퉁이를 올려다보곤 한다. 하늘이 있고 풍경이 매달린 풍경風景에 한 줄기 바람이 불어오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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