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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깡밥 / 김은주

부흐고비 2020. 9. 8. 12:28

설 대목이 가까워져 오면 우리 집 아랫목에 식구 하나가 더 불어난다. 목단 꽃 이불 아래 칠 남매 발 묻기도 급한데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객식구가 하나 있다. 위는 좁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아낙의 엉덩이마냥 펑퍼짐한 우리 집 부조단지다. 동네잔치가 있으면 엄마가 단술을 빚어 부조하는 단지라 해서 우리는 곧잘 부조단지라 불렀다.

아래는 검은 유약이 저절로 흘러내려 검게 물들어 있고 위는 붉은 황토색이다. 부조 단지가 우리 사이에 끼여 어엿이 식구 행세를 하는 걸 보면 설이 멀지 않았다는 증거다. 서로 발을 비비다 단지라도 건드리는 날은 엄마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부조단지가 이불 안으로 들어오는 날은 우리도 덩달아 얌전해져야만 했다.

겨우내 마실 요량으로 만드는 단술은 질금 윗물만 따라내서 맑게 앉히지만 조청을 고을 엿 질금은 아랫물도 받아 걸쭉하게 푹 삭히다 보니 단지가 더 묵직해졌다. 따끈한 방에서 몸을 지진 단지는 꼬박 하루가 지나야 밥알이 삭아 동동 떴다.

얼추 익었다 싶으면 정주간으로 들고 나가 아궁이 가득 장작을 넣고 조청을 곤다. 엄마는 불을 때고 우리는 번갈아 가며 키보다 더 긴 나무주걱을 들고 솥을 저었다. 엿이 바닥에 눋지 않게 찬찬히 저어야 맛난 조청이 됐다. 부뚜막에 올라앉아 엄마를 내려다보면 아궁이 불빛에 발갛게 익은 엄마 얼굴이 그렇게 고울 수 없었다.

조청이 고아지면 그릇 그릇 퍼 담아 장독대위에 올려두고 고두밥을 볶기 시작한다. 고두밥은 찹쌀을 푹 불려 뒀다가 면 보를 깔고 고슬하니 찜기에 쪄 겨울 추위에 슬쩍 얼려가며 말리면 튀밥 꽃이 더 풍성하게 일었다.

엄마는 초겨울 내내 말려 놓은 고두밥을 손바닥으로 살살 비벼 서로 붙은 밥알을 떼고 바닷모래에 볶았다. 포항 먼 바다에 가서 가져온 모래는 떡가루처럼 곱고 보드라웠다. 엄마는 가져온 모래를 헝겊 주머니를 기워 그곳에 보관했다. 정지 시렁 아래 매달아 뒀다가 겨울이면 내려 쌀을 볶았다. 연탄불 옆에서 종일 어른 밥숟갈만큼씩 떠 넣고 볶는 고두밥은 모래에 뛰어들기가 무섭게 목화송이처럼 벙글었다. 금빛이던 모래가 까맣게 익을 때까지 엄마는 종일 그렇게 앉아 쌀을 볶았다. 불이 달면 달수록 더 희고 곱게 일었다.

풍성하게 튀겨진 고두밥은 얼기미에 내려 깡밥을 만든다. 달여 놓은 조청을 우선 솥에 넣고 거품이 일 때 까지 엿을 졸인다. 엄마는 주걱으로 엿의 농도를 가늠하며 ‘엿 청 잡는다.’라고 말했다.

“청을 잘 잡아야 깡밥이 손에 안 붙고 맛있는기라.”

깡밥을 잘 만드는 조건 안에 가장 중요한 것은 엿 청 잡는 것이라고 우리에게 강조하셨다. 청 잡는 일은 말로 설명이 불가한 엄마만의 고유한 능력이었다.

봄에 뜯어 가루를 내놓는 쑥을 넣으면 초록 깡밥이 나오고 치자를 넣으면 노란색 깡밥이 나왔다. 백련초로는 분홍을, 검은 흑미로는 검은색 깡밥을 만들었다. 엄마 손만 닿으면 흰 쌀 튀밥이 요술처럼 색색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다 민 깡밥을 긴 나무 자로 가지런히 자르고 나면 자 끝에 칼 밥이 생겼다. 어린 나는 강정 만드는 일보다 그 칼 밥 주워 먹는 일을 더 재미있어했다. 엄마 치마꼬리를 잡고 빙빙 돌며 맛있는 것만 골라 챙겨 먹었다.

깨와 쥐눈이 콩은 아주 작게 한입에 쏙 들어가게 만들었다. 예전에는 쌀이 귀했던 터라 아이들 깡밥으로 옥수수를 동그랗게 뭉쳐 하나씩 손에 들고 먹기 좋게 만들기도 했다. 깡밥하는 날 종일 정주간을 쥐 방구리 드나들듯 하면 엄마는 큰소리로 우리를 닦달하셨다.

“야들아 입천장 헤진다 고마 묵어라. 입 까그랍으면 밥맛도 없어진데이”

그러고 엄마는 광으로 장독대로 부지런히 깡밥을 숨기셨다. 광주리 가득하던 깡밥은 순식간에 모두 사라졌다. 군식구 많은 집안에서 엄마만의 음식 저장법이었다.

“깡밥 없데이”를 입에 달고 사시는데 손님만 오면 신통하게도 어디선가 깡밥이 나왔다. 집안 곳곳에 숨겨둔 깡밥을 엄마 아니고는 그 누구도 찾아내지 못했다. 내놓으면 한나절에 없어질 깡밥이 정월 대보름이 되도록 남아있었다. 엄마는 부지런히 숨기고 우리는 또 그것을 부지런히 찾아 먹으며 쑥쑥 키가 자랐다.

엄마가 입은 광목 앞치마에 대추나무 그림자가 어룽거리면 설이 코앞이다. 온 집안을 감싸고돌던 그 달달한 단내와 앞치마 입은 엄마가 나는 지금 눈물겹게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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