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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을은 화살나무의 붉은 단풍으로부터 많은 위안을 받았다. ‘붉다’고 한 단어로 말하기엔 부족하다. 투명하게 붉은 색깔에 약간의 분홍빛을 더한 그런 오묘한 색감은 자연만이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 우울하여 집을 나섰다가 화살나무들의 단풍을 보면 탄성이 절로 나왔다. 화려한 단풍도 잠시, 화살나무는 빈 몸으로 내 앞에 섰다.

화살나무는 내년이면 또 새잎으로 단장을 할 수 있지만, 숨탄 모든 생명은 단 한 번뿐이다. 몇 생을 윤회한다고 할지라도 전생의 나를 지금의 ‘나’라고는 할 수 없다. 생은 단 한 번뿐이기에 죽음을 두려워한다.

철학사에 길이 남는 두 사람의 죽음이 있다. 소크라테스와 세네카의 죽음은 철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큼 위대하다. 이 두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의연하게 받아들였다. 죽음을 맞이한 그들은 자신의 철학을 실현할 때라고 생각했다.

로마시대 최고 문학가이자 후기 스토아철학의 대가였던 세네카는 네로황제의 스승으로도 유명하다. 어느 화창한 봄날 교외별장에서 학문과 집필에 열중하고 있던 세네카는 네로황제의 친서를 받았다. 친서에 “세네카는 즉시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한다.”라고 적혀 있었다. 그 죄목이 ‘피소의 음모’ 사건에 가담했다는 것이다. 한때 자신의 제자이던 황제의 명령이 전해졌을 때 세네카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고 오히려 태연했다. 평소에도 죽음에 대해 의연한 태도를 보였던 세네카는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친구들을 꾸짖었다.

“자네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뭐가 그리 어려운가? 잘 죽을 줄 모르는 사람은 잘못 살게 될 것이네. 죽음을 가지고 호들갑을 떨 것이 아니라 목숨을 싸구려 물건처럼 여겨야 할 것이네.”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목숨을 싸구려 물건처럼 여기라고 하니, 말문이 막힌다. 일흔의 나이인 세네카는 다리와 무릎에 있는 동맥을 끊었다. 그 통증이 거대한 폭풍처럼 밀려왔겠지만, 세네카는 내색하지 않았다. 그는 평소에 “영혼이 육신에서 떨어져 나가는 죽음이라는 그 순간이 너무 짧아서 그 과정을 느낄 수 없다.”라고 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그의 죽음은 짧은 순간에 와 주지 않았다. 세네카는 독약을 부탁했고, 독약을 마셨지만 별 효력이 없었다. 세네카는 죽음이 빨리 찾아오지 않자 약을 마신 채 뜨거운 목욕물이 담긴 욕조에 들어가서 자신의 죽음을 재촉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물방울을 튀기면서 “이 물을 구원자 주피터에게 바친다.”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세네카의 죽음은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함께 철학적 죽음의 상징이 되었다.

세네카의 죽음은 ‘자크 루이 다비드’를 비롯하여 ‘클로드 비뇽’과 ‘루카 지오르다노’ 등 여러 화가들에 의해 작품으로 남아있다. 클로드 비뇽의 그림은 어두침침한 공간에서 세네카가 세숫대야에 발을 담그고 죽음을 기다리는 암울한 분위기다. 자크 루이 다비드의 그림에는 태연한 모습으로 시종에게 다리 혈관을 자르게 하는 세네카와 그것을 보고 경악하는 아내 파우리나의 모습이 잘 묘사되어 있다. 자크 루이 다비드가 침통하고 비장한 소재를 조금은 밝고 화사한 빛으로 표현한 것은 세네카의 죽음에 대한 철학을 반영한 것이리라. 세네카는 놀라 쓰러지는 아내를 부드럽게 포옹하면서 남편이 ‘스토아철학자로서 훌륭한 삶을 살았다.’는 데서 위안으로 삼으라고 당부를 했다.

소크라테스를 존경했던 세네카는 죽음마저도 소크라테스를 닮았다. 두 사람은 진정한 철학자에게 죽음은 불행이 아니라 영혼을 괴롭히는 육체로부터 해방시켜주는 신의 축복이라 생각했다. 나는 죽음은 삶으로부터의 해방이지 육체로부터의 해방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육체를 가지고 있는 한 인간은 몸에 봉사하기 위해 수천 가지 방식으로 분주하게 움직여야 한다. 문득 ‘이 몸뚱이가 원수여!’라는 스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셰익스피어는 ≪소네트≫에서 육체는 살찌우면서 영혼은 헐벗게 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왜 그대는 속으로 굶주리고 기근 겪으면서
그대 외벽 그토록 요란히 장식하는가?
어째서 잠시 임대받은 그대 허물어지는 저택에
그토록 엄청난 비용 쏟아붓는가?
(중략)
그렇다면 영혼이여, 그대 하인의 손실 먹고
그대의 곳간 키우기 위해 육신 굶주리게 하라.
찌꺼기 시간 팔아 영생의 세월 사라.
밖을 더는 치장 말고 안을 살찌우라.


셰익스피어는 육체를 ‘임대받은 허물어지는 저택’에 비유했다. ‘허물어질 육체를 위해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그대의 영혼을 살찌우라’는 셰익스피어의 46번 소네트는 현대인들이 귀담아 들어야 하는 시다. 소크라테스와 세네카가 죽음 이후에도 영혼은 윤회한다고 믿었듯이 셰익스피어도 영혼을 맑게 하여 영생하라고 노래했다.

죽음 이후에나 자신들이 원하던 염원을 달성할 수 있다고 믿은 소크라테스와 세네카는 죽음을 축복으로 생각했다.

세네카의 “많은 사람은 항해하려고 할 때 폭풍은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떠올린다.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다는 것을, 기쁨이 있으면 슬픔도 있음을 기억하라는 메시지다.

빈 몸으로 선 화살나무도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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