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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동목 / 이영숙

부흐고비 2020. 9. 27. 21:19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동상

 

재산은 인간만이 소유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도 아닌 나무가 재산을 가졌다. 토지를 가졌다고 부자나무라고 한다. 국내 최초로 재산을 보유한 나무이기에 누구나 호기심을 가질 법하다. 영험한 기운을 가진 예천 천향리의 석송령(石松靈)은 석평 마을의 상징수이다. 반송인 이 소나무는 위대한 유산을 가졌기에 사람처럼 주소와 주민등록 번호도 가졌다. 재산을 가졌기에 석송령은 사람처럼 해마다 재산세와 방위세를 낸다. 또한 장학금도 조성하여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준다.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석송령은 인간과 똑같은 권리를 가졌다. 이러하기에 석송령은 인간 못지않게 존재의 가치를 가졌다.

낮은 키에 수많은 가지를 달고 있는 이 소나무는 반원을 그리고 있다.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 안는 듯 반송은 높게 자라기를 거부한 채 수많은 팔을 옆으로만 펼쳤다. 무한히 높은 곳을 향해 나가기보다 넓은 땅에 흩어진 사람들 곁에서 어깨를 맞추며 살아가고 있다. 석송령은 수 갈래로 펼쳐진 자신의 팔을 아래로 늘어뜨렸다. 그것은 포용의 미덕으로 늘 인간들 곁에서 오순도순 함께하고자 하는 온정의 마음이다.

키가 높은 나무가 보여주는 위엄보다는, 낮은 키의 소나무가 보여주는 아기자기한 모습은 매우 안정적이다. 위압적이지 않기 때문에 친근하고 편안하다. 마치 만물을 포용하려는 듯 석송령은 그의 넓은 가슴을 한껏 부풀렸다. 그것은 관용과 포용의 미덕이다. 늘 녹음을 잃지 않은 채 부대끼는 우리 삶의 얘기들을 모두 수용하여 정화시켜 나간다. 현자인 양 석송령은 인간의 모든 감정을 초월한 채 항상 의연한 모습으로 끝없는 세월을 건넌다.

천연기념물 제294호인 석송령은 동신목(洞神木)으로 사람들에게 섬김을 받는다. 거대 소나무가 수백 년의 세월을 건넜다는 것은 강인한 생명력과 함께 사람들과 더불어 대대손손 서로 더불어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람한 몸체를 지닌 석송령은 지난한 세월에도 아랑곳없이 장수를 누리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이 특별한 소나무를 신격화하여 매년 정월 대보름에 제사를 지낸다. 신령스러운 기운이 마을을 지켜주고 평안을 가져다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석송령은 석평 마을의 영험한 소나무로 사람들에게 보호를 받음과 동시에 공경의 대상으로 주민들과 함께한다.

석송령은 600여 년 전, 큰 홍수에 떠밀려 석간천을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 이때 지나가던 사람이 소나무를 건져 마을에 심었다. 이후 마을 사람들의 정성 어린 손길에 의해 반송은 무럭무럭 성장했다. 동민의 마음을 저버리지 않은 석송령은 그때부터 마을을 지키는 동목이 되었다.

1930년경 이수목은 자신의 재산을 물려줄 자식이 없었다. 이에 그는 동목인 소나무에게 자신의 재산을 다 주었다. 소나무가 언제까지나 마을과 동민을 지켜주며 평안을 가져다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모두 내놓게 되었다.

반송은 이수목에 의해 마을 이름을 딴 석송령이란 이름을 갖게 되고 동목이 된다. 삶의 마지막 문턱에서 그는 사람이 아닌 동목을 자식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 자식은 반드시 자신의 씨앗일 필요는 없었다. 특별한 애정과 함께 교감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이 식물이든 동물이든 굳이 따질 필요는 없었다. 자신의 씨앗이 아니어도 마음이 가는 것에 모든 것을 물려준다는 것은 유한한 삶의 아름다운 배려이며 포용이었다. 그렇게 해서 석송령은 마을 주민들의 나무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전 재산을 온전하게 물려준 이수목의 자식이기도 했다.

사철 푸른 생기를 잃지 않는 반송이 부챗살처럼 펼쳐져 있다. 넉넉한 마음을 가진 정(情) 많은 인간의 모습처럼 석송령 역시 너른 품을 가진 반송으로 마을을 평온하게 품는다. 수직 상승의 권위적이며 위압적인 느낌보다는 동서로 32m쯤의 넓은 가슴을 가졌다. 모든 것을 포용한 듯 반송의 넓은 품은 평온하기 그지없다. 마을을 평온하게 감싼 것 같은 석송령에 의해 동민들은 자동적으로 서로 온정의 마음을 나눌 수밖에 없다.

언제나 녹음으로 우거진 반송의 가슴은 한여름 땡볕을 가려주는 시원한 그늘이 된다. 더위에 지친 사람들에게 금방이라도 땀방울을 씻어줄 그늘이다. 길고 넓게 드리워진 그늘 아래서는 언제든지 끝없이 정겨운 얘기들이 흘러나온다. 생활 속의 이야기들은 석송정 아래에서 꽃이 핀다. 실타래처럼 풀려지는 우여곡절의 이야기들은 동민들의 이해와 공감을 이끌어내어 서로를 보듬게 한다.

석송령은 사람들의 보호와 정성을 받으며 그 곁에 머물고자 자신의 키를 줄였다. 반송으로 자란 석송령은 수백 년을 건너면서 수많은 가지를 불려 나갔다. 어느 순간 반송은 만지송이 되어 마을의 번영과 집안 개개인의 다복한 가정의 행복과 평안을 기원하게 되었다. 헤아릴 수 없는 가지들의 지속적인 생성은 날로 번성하는 인간의 어울림이기도 하다. 더불어 가야 할 운명공동체적인 삶 속에서 서로 함께 걸어가는 화목과 화합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우리의 삶 그것처럼, 반송도 이제 수백 년의 삶을 건너면서 철골(鐵骨)에 몸을 기대게 되었다. 노년의 사람이 마치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모습이다. 그럼에도 으뜸나무는 거대한 몸을 철골에 의지하면서도 한층 더 키를 낮추는 것은 주민들과 더욱 가까이하려 함이다. 그것은 한때의 피로를 씻어주고, 정겨운 이들이 풀어 놓는 이야기들을 포근하게 보듬어주기 위해서다.

거목인 노송은 동민들에게 지조와 절개를 지키느라 시듦을 알지 못한다. 아담한 키와 넓은 가슴을 가진 석송령은 마을의 수호신이다. 동목은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람들 가까이에서 두런두런 삶의 얘기를 들어주고 삶의 애환을 흡수한다. 이에 사람들은 석송령의 너른 가슴에 기대어 삶의 고뇌를 쏟아 내거나 풀어내며 평안과 위안을 얻는다. 한 떼의 새들이 석송령의 품속으로 날아들어 재잘재잘 경쾌한 음률을 흘린다.

 

 

수상소감 - 삶의 온기를 여백에 담아내는 일

 

5년 전, 무작정 떠난 길 위에서 거대 반송(盤松)이 단박에 저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마치 자석의 이끌림처럼 빨려들었던 저는 한동안 석송령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불현듯 솟구치던 내면의 감동이 컸던 탓이었는지 오랫동안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때의 감동을 몇 줄로 적은 후 잊을 만하면 다시 그곳을 찾곤 했습니다. 특별하게 와 닿았던 반송이 제게 무엇인가를 들려주려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무언의 말을 헤아리고자 여러 차례 반송을 찾아 갔습니다. 갈 때마다 시야는 넓어지는 듯 했으며 무언의 말은 조금씩 구체적인 의미로 다가옴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여러 해 정제된 언어로 다듬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무엇인가 끌쩍이고 싶었던 저의 간절한 마음은, 해마다 반송의 마음을 헤아려 가며 여러 차례 퇴고를 거듭하게 했습니다. 그것은 저만의 언어로 보이지 않는 삶의 온기를 여백에 담아내는 일이었습니다.
간혹 글의 방향을 잃어 주춤거리거나 낙담할 때도 많았습니다. 여러 해 시행착오를 거듭하는 날이 이어지자 한동안 묵혀두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하나의 생각이 찾아들면 다시 언어의 조각들을 꺼내들고 퍼즐 맞추듯 재배열해 나가며 묵묵히 걸음마를 옮겼습니다. 혼자 걸어가는 저의 외로운 글쓰기는 이렇게 달팽이가 걸음을 옮기는 듯 느리기만 합니다. 글쓰기는 제 삶의 위안이자 기쁨이었기에, 저는 그 끈을 놓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결과 이렇게 수상의 기쁨도 주어지게 된 것 같습니다. 부족한 글 채택해 주셔서 깊이깊이 감사드립니다.
△ 한국방송통신대학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0년 동서문학상 맥심상 △2013년 대한민국 편지쓰기 대회 은상 △2014년 김유정기억하기 전국문예작품공모전 대상 △2017년 고택숙박체험 공모전 동상 △여성시대 ‘그 해 여름’ 공모전 은상 △효사랑 글짓기 공모전 우수상 △2018년 독도문예대전 최우수상 △2019년 산림문화작품 공모전 우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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