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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지네 / 윤승원

부흐고비 2020. 10. 5. 10:44

등목하러 엎드린 아버지 옆구리에 지네 한 마리 꿈틀거린다. 발이 수십 개인 이 다족류多足類는 왼쪽 옆구리에서 길게 복부 쪽으로 늠실늠실 기어가고 있었다. 갈비뼈 사이로 숨었다 나타나는 불그스레한 자국은 언뜻 보기엔 문신 같아 보였다. 이젠 저도 늙었는지 색깔이 흐릿하다. 지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때문인지 나는 그 상처를 오래 쳐다보지 못했다. 젊은시절 읍내 체육대회에 나가 씨름으로 황소를 타 왔다던 근력은 이제 찾아볼 수가 없다.

집 앞에는 큰 못이 있다. 동네 초입의 못은 마을의 젖줄 같은 것이었다. 가뭄이 들 때는 그 못의 물을 끌어대어 농수로 사용했다. 못둑의 갈대 덤불에서는 지네가 자주 출몰했다. 몸통은 대나무처럼 마디로 되어 있고 마디마디 다리가 한 쌍씩 있었다. 껍질은 갈색이거나 검은 색으로 광택이 났다. 그 번들거림과 곧추세운 더듬이, 수많은 붉은빛 발을 볼 때마다 등골이 오싹했다. 동생들과 나는 못둑으로 가길 꺼려했다. 지네를 본 날엔 놀라 고함을 질렀고 그런 밤엔 커다란 지네가 내 몸을 갉아 먹는 꿈을 꾸었다.

열두 식구의 가장이었던 아버지는 어느 한 계절도 편한 날이 없었다. 봄, 가을 농번기 때는 물론이고 여름에는 논 메기며 피 뽑기, 꼴 베는 일까지 혼자서 했다. 겨울 농한기에도 몸을 쉬는 날이 없었다. 공사현장을 찾아가 막노동을 하거나 일 없는 날엔 땔감을 하러 다녔다. 할머니와 늦둥이 막내 삼촌까지 열두 명이나 되는 식솔을 거느렸지만 워낙 부지런한 덕분에 논밭은 조금씩 늘어났다.

환갑이 되도록 건장한 아버질 두고 동네사람들은 천하장사라고 했다. 평생 안 아플 사람이라며 백수는 너끈히 살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화장실을 다녀오다 갑자기 쓰러졌다. 당황한 엄마는 내게 전화를 했고 이웃에 사는 한의사를 급히 찾아갔다. 소변을 보는데 피가 쏟아져 나왔다고 하자 당장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진단한 결과 신장암이었다. 콩팥 하나를 떼어내는 큰 수술을 했다. 그때부터 아버지 옆구리에는 지네가 살게 되었다.

그 후 아버지는 자주 수술한 자리가 아프다고 했다. 마치 지네가 무는 것처럼 따끔거리고 콕콕 쑤신다고 했다. 고통이 심해서 수술한 것을 후회했다. 그럴 때마다 진통제인 양 담배를 피웠다. 처음엔 수술자국이 잘못 아물어 그런가 했다. 그러나 그 때문이 아니었다. 아버지 몸에는 암이 조금씩 퍼져가고 있었다. 췌장을 기점으로 십이지장 소장까지 전이 되었고 또 한 번의 큰 수술을 받았다.

지네는 생김새가 징그럽지만 인간에게 해를 주지는 않는다. 또한 약으로도 쓰임이 있다. 어릴 적 편도가 심하게 부어서 말린 지네 가루를 목에 발라 나은 적이 있었다. 당시엔 몰랐으나 지네라는 것을 알고 내내 찝찝했다. 목에 무언가 걸리는 느낌이 있으면 지네가 붙어서 그런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목젖이 보이도록 입을 벌리고 수도 없이 거울을 봤지만 지네는 있을 리 만무萬無였다. 이후로도 소화가 잘 안 되거나 두드러기가 생기면 으레 지네 탓이라 여기곤 했다.

못 주변에 왕지네가 산다는 소문은 오래 전부터 떠돌았다. 어른들은 지네가 우는 아이들을 물고 간다거나 말을 듣지 않는 아이들을 잡아간다며 겁을 주었다. 어린 우리는 못둑에 산다는 지네가 이무기처럼 클지도 모른다며 밤길을 삼갔다. 안개가 짙게 피는 날엔 희미한 형체 같은 게 꿈틀거리는 듯이 보이기도 했다. 비 오는 밤엔 못에서 우~우 울음소리 같은 게 들리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와 동생들은 이불을 덮어쓰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결혼하고는 한동안 지네에 대한 기억을 잊고 살았다. 그러던 몇 해 전 여름이었다. 갑자기 엄마한테서 다급한 전화가 왔다. "느그 아부지가……, 느그 아부지가…… ' 엄마는 말을 잇지 못했고 정신없이 병원으로 달려갔을 땐 이미 아버지는 눈을 감은 뒤였다. 그날 아침 아버지는 여느 때처럼 못가에서 낚시를 했다고 한다. 엄마는 간밤에 꿈자리가 좋지 않다고 가지 말라고 했지만 아버지는 막무가내였다. 평소처럼 무릎 정도 되는 얕은 수심에서 낚시를 했는데 어떻게 물에 빠진 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엄마는 연신 눈물을 흘렸다.

사고 난 며칠 전부터 아버지가 좀 이상했다고 한다. 이웃해 농사지으면서 옥신각신 다투었던 사람들과 일일이 화해를 했다. "윗집은 차나락을 안 지었으니 참쌀 두 되를 주라." "건너 집엔 콩 농사를 안 지었으니 메주 쑤게 콩을 주라."는 등 챙기는 것을 잊지 않았다. 평소에 무뚝뚝하게 대하던 엄마에게도 "이녁, 나 만나서 고생해서 글치 참 예쁜 얼굴이었는데…….'라며 몇 번이나 말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당신의 운명을 미리 아셨던 것일까. 아니면 집 앞 못에는 정말 큰 지네가 살고 있어 아버지를 데리고 간 것일까.

아버지 몸에 붙은 지네는 어쩌면 당신의 고단한 삶을 나타내는 상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할아버지는 농사짓기 싫다는 아버지를 억지로 붙잡아 일을 시켰다고 한다. 육 남매의 장남이었던 아버지는 몇 번이나 대처로 도망쳤지만 그때마다 할아버지한테 붙들려 돌아와 다시 농사를 지었고 그게 평생의 일이 되었다. 둘째 동생이 네 살 때 탈곡기에 다리가 끼는 사고가 있었다. 아버지는 동생을 업은 채 자전거를 타고 시오리 떨어진 읍내로 치료를 다녔다. 그럼에도 성장판이 다쳤는지 초등 오학년에서 성장을 멈추어 버렸다. 그 많은 노동과 가족들을 위한 헌신, 둘째 동생에 대한 걱정 등이 아버지에겐 지네가 아니었을까. 평생 떼어내지 못하는.

아버지를 염하면서 처음으로 당신의 몸에 난 상처를 만졌다. 처음에는 차갑고 섬뜩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손끝에서 오히려 따뜻한 온기가 돌았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내게 한 말이 생각났다. "니가 딸이었지만 재주가 있었는데, 그때 공부를 더 시킬 걸……." 원망은 했지만 나는 결코 아버지를 미워한 적은 없었다. 당신은 외동딸을 원하는 대로 공부시키지 못한 것을 평생 가슴에 묻어두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지네가 왕성하게 활동하기 시작하는 계절에 아버진 지네처럼 광이 나는 검은색 리무진을 타고 마을로 들어섰다. 정자나무 아래 동네 어른들이 다 모였다. 그 사이에 서 있어야 할 아버지의 얼굴은 없었다. 아름드리 큰 느티나무 그늘 아래 꽃가마가 놓였다. 아버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꽃가마를 타고 못이 바라보이는 언덕으로 올랐다.

관을 내릴 때 문득 무덤 아래서 큰 지네 한 마리가 꿈틀거리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평소의 형체보다 굵고 선명했다. 지네는 관 위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옆에 선 오빠와 동생들을 쳐다보았지만 아무도 지네의 존재를 모르는 듯했다. 곡을 하면서 하마터면 "아버지"라고 소리 지를 뻔했다. 지네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본 후 관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 위로 흙이 부어졌다. 비 온 뒤의 흙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마을에서 우-우 호수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네’에 물렸을 때 증상과 처치법

  지네에 물려도 주의는 필요하지만 크게 걱정할 것은 없다. 왜냐하면 지네는 맹독성이 아니기 때문이다. 병원이나 약국을
  방문해도 지네 전문약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면역력이 약한 사람이나 알러지가 있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심하게 반응
  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지네에 물리게 되면 나타나는 가장 대표적인 증상은 가려움이다. 벌레나 곤충에 물렸을 때에 생기는 가려움 정도라고 생각
  하면 된다. 하지만 가렵다고 손톱으로 긁어주는 것은 좋지 않다. 손톱에 있는 독성이 옮아갈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일단 비누를 이용해 흐르는 물로 상처 부위를 씻는 것이 좋다. 비누가 알카리성의 띄고 있기 때문에 산성인 지네독을 해독
  하기에 좋기 때문이다. 그 다음 냉찜질이다. 냉찜질은 통증을 완화 시켜주고 붓기를 빼 주는 역할을 한다. 그 후에 곤충에
  물렸을 때 사용하는 연고를 발라주면 된다.

  추가적 조치가 있다면 온찜질을 하는 것이다. 지네독은 40도 이상의 물에는 빨리 해독이 되기 때문에 냉찜질을 통해서
  통증이 완화된다면 온찜질을 이용해서 해독작용을 촉진해주는 것이 좋다.

  지네에 물리더라도 침착하게 처치를 한다면 크게 위험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응급조치를 했음에도 심하게 붓거나 통증이
  지속되는 경우에는 피부과나 의료기관을 방문해서 꼭 전문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이용훈 김천소방서 구조구급과 소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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