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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쉼표 / 고미영

부흐고비 2020. 10. 5. 10:48

난 글을 쓸 때 쉼표를 거의 안 쓴다. 지루해지지 않는 문장을 낳으려고 노력하다보니 만들어진 습관이다. 그러다 보니 간혹 인정미가 없어 보인다. 기계처럼 글을 조작하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밀고 당기는 탄력성이 있는 글이 되기를 원하는데 고집스럽게도 내 글쓰기는 일방적이다. 알면서도 안 되는 논리에 붙잡혀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이런 내가 싫어서 탈피해보고자 시도를 하는 날은 한 줄도 완성하지 못한다. 그만큼 무서운 게 습관이란 것을 손과 눈으로 확인한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내 글쓰기가 퍽퍽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과도할 정도로 쉼표를 사용했다. 능숙하지 못했던 것도 있지만 적당한 자리가 어딘지 몰라서 헤매다 결국은 남발했다. 무조건 쉬고 보자는 의미에서이다. 쓰는 내가 힘이 드니 독자들도 당연히 쉬어야 한다는 배려에서이다. 나처럼 어설픈 독자를 상대로 글을 쓰던 초보자였으니 말해 무엇 하랴. 쉬는 일이 편안한 줄만 알았지 낭비가 된다는 생각은 아예 못하던 시기이니 알 만하다.

쉼표는 그 어떤 문장부호보다 자유로운 글자이다. 쓰임이 다양할뿐더러 누구나 좋아해서 바쁘다. 물론 나 같은 사람은 거의 찾지를 않지만 애용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어린 아이들도 사용할 줄 모르다가 사용법을 알고 나면 헤프게 써버릇하는 게 쉼표이다. 인심 쓰듯이 한 문장에 두어 개 나란히 배치시키기도 한다. 쉼표만의 유일한 특권이다.

쉼표는 또 보일 듯 말 듯하다. 문장의 가운데에 있으면서도 나서지 않는 겸손함이 있다. 발뒤꿈치 낮은 곳에 밟힐 듯이 이름 모를 풀처럼 존재한다. 그러니 느낌표처럼 눈에 띄지 않아서 헤맬 때도 더러 있다. 있을 법한데 보이지 않아서 숨이 가쁘다. 그러다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다소곳이 있는 모습을 발견하면 안도가 된다. 겸손하게 자기 역할을 하는 모습이 새벽길 환경미화원 같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난 내 삶이 한 문장 한 문장으로 엮어진 초가지붕이라 여겼다. 언제고 바람이 불면 순식간에 날아갈 수도 있다는 말이다. 오직 완성하는 데만 급급하다보면 매듭이 엉성해지기도 하고 빈 구멍이 생길 수도 있다. 그게 다 서둘러 달리는 데에만 급급해서이다. 사는 것은 마침표가 목적이 아니잖은가. 한숨을 크게 몰아쉬며 처음 먹은 마음으로 돌아가는 여유가 필요하다. 쉬면서 앞과 뒤가 순조롭게 이어졌는지 확인하는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결과로 인한 성취감이 사람을 크게 만든다면 과정에서 얻은 지혜는 좀더 사람다워지게 한다. 마침표와 쉼표의 존재가치가 엄연히 다르다는 말이다.

그 말은 살아가는 방법에도 마침표를 제대로 찍기 위한 쉼표의 역할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달려야 할 때와 쉬어야 할 때를 구분해야만 삶이 권태롭거나 힘겹지 않을 터이다. 한숨에 달려갈 수 있는 게 인생이 아니기에 장거리 마라톤 선수처럼 호흡을 조절하며 완주를 위한 계획을 나름대로 세워야 한다. 물도 마셔야 하고 오르막길에서는 속도를 조절하며 신체의 무리를 최대한 줄여야 완주가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큰 숨을 내 쉴 수 있는 적절한 지점을 만들고 이용해야 한다.

현대인들의 삶은 쉼표가 없다. 그렇다고 느낌표가 어울리는 삶도 아니다. 오로지 자신의 최종 목표를 향해 돌진한다. 그러니 그들의 목표는 마침표이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짧은 시간 내에 목표지점에 도달하는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마침표를 통해 그들이 얻는 것은 결국 무엇일까. 명예나 돈일까. 과연 그것이 그들의 가슴에 얼마나 오랫동안 따뜻하게 살아 있을까.

난 아직까지 명예나 돈에 근접한 삶을 누려보지 못했다. 내 가슴에 살아 있는 사랑과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 동분서주했을지언정 사회적인 힘이 되는 것에 무관심해왔다. 그래서 그럴까. 지금 나는 자꾸만 쉬고 싶어진다. 내 가슴속에 들어 있는 얼굴들과 대화하는 시간이 필요함을 느낀다. 그냥 이 자리에서 더 오래 쉬며 내 젊음을 지킬 수 없나 하고 꾀가 생긴다. 그 어느 때보다 게으른 삶을 자처하며 은근슬쩍 눌러앉고 싶다. 인생의 전환점을 만드는 시점에서 아주 큰 쉼표가 절실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걸어온 시간과 쉬어온 거리만큼 남은 삶에 마침표가 다가오는 게 두렵다. 내가 지나온 길에 수없는 쉼표를 남기고 왔음에도 또 다시 쉼표를 찍는다는 것에 망설여진다. 과연 무엇을 위해 쉬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어서이다. 반드시 지켜야 할 욕심 덩어리가 없다고 하면서도 가지치기를 못한 삶이 어깨를 짓누른다. 쉬면서 할 일이 생긴다. 마지막으로 무엇보다 사람으로 차 있는 뜨거운 가슴에 물질적인 것에 굴욕하지 않을 자존심이 있는지 묻는 일에 투혼해 보리라.

마침표 앞에 당당해지기 위해서 할 일은 오로지 쉼표의 자리를 찾는 일밖에 없는 듯하다. 내가 나를 돌아보아야 하는 지금이 그 시기인 것 같다. 나에게 쉼표는 마침표에 무사히 도착하기 위해 거치는 풍경 좋은 간이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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