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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월정교 기둥 / 김양희

부흐고비 2020. 10. 5. 15:28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장려상

기둥과 기둥 사이 잠시 멈춰 서서 여유를 바라본다. 여유는 기둥이 만든 액자 속에 살아 있는 풍경이다. 무더위에는 초록 바람을 들이고 눈이라도 내리는 날이면 그 정취가 무엇에도 비길 수 없이 고혹적이다.

기둥은 공간을 등분하여 균형을 잡아주고 공간을 터 풍경과 풍경을 이어주는 시각적인 효과를 나타냄으로써 시원한 멋을 낸다.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아름드리 기둥은 그 사이를 걸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경복궁 근정전 회랑, 남이섬 은행나무 길을 걸으면서 그들과 한 호흡일 때 평온해진다. 나를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걸음에 호응하리라는 믿음 때문이다.

지붕을 떠받치며 바닥과 천장을 이어주는 것이 기둥이다. 둥글거나 각지거나 곧추서거나 구부러지거나 배가 부르거나 그 쓰임새는 공간을 만들고 등분하는 재목이다. 우리는 기둥이 나누고 확보해준 터전에서 생활한다. 이런 기둥은 성장이 멈춘 나무나 철근, 플라스틱, 돌, 시멘트가 주된 재료다. 월정교의 기둥은 아름드리 소나무다. 수십 개의 기둥이 늘어선 누각다리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웅장하다.

얼마 전 경주 월정교를 여행하다가 특별한 기둥을 만났다. 질서정연한 모습을 하나하나 살피며 걷는데 무언가 흘러내려 엉겨 붙은 것이 보였다. 송진이었다. 소나무 재질이니 송진이 흘러내릴 수 있다지만 혹시 기둥이 생물학적으로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엉뚱한 상상을 하며 엉긴 곳을 만져보는데 끈적끈적한 진이 손끝을 꼭 붙잡았다.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대부분의 기억은 오감을 통해 입력된 것이 되살아난다. 보고 듣고 맡고 만지며 다가온 느낌을 온몸에 저장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흘려보낸다. 그중 손에 저장된 경험이란 기억은 여느 감각 못지않게 민감하다. 월정교 기둥에 흘러내린 송진이 손에 닿던 감촉은 아직도 생생하다. 소나무에서 송진이 흘러내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이 다리를 지탱하는 기둥에서 마주친 송진이 아니라면. 월정교를 다녀와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송진이 흘러내린 기둥이다. 무리에서 조금 다른 것이 특별한 것이 될 수도 있다. 동화에서 읽은 미운오리새끼처럼 말이다.

이처럼 어떠한 물체는 본래 쓰임새의 역할을 할 때 훌륭하지만, 자세히 바라보고 관심을 두는 사람에게는 다른 쓰임으로 즐거움을 선사하기도 한다. 무엇을 보든 한눈에 모두 살피는 방식과 자세히 바라보는 습관을 병행할 수 있다면 더 큰 재미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단조로운 삶에서 사소한 만남으로 특별한 추억이 된다면 얼마나 큰 활력소인가.

현실적인 상황으로만 산다는 건 참 무미건조하다. 삶의 윤기가 흐르도록 다양하게 만들어진 이야기는 유한한 시간을 풍부하게 만든다.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이 기본생활의 영위라면 그 위를 장식하는 고명이나 브로치, 조각물처럼.

오래전 읽었던 소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떠오른다. 실재했던 다리는 소설의 주요 배경이고 영화 촬영지로도 유명해졌다. 이후 화재로 소실되기는 했지만, 특별한 이야기가 있는 다리로 모두 기억한다. 월정교 다리도 그렇다. 왜 그 기둥에서 송진이 흐르는지 과학이 아닌 동화 속 상상의 나래를 펼쳐볼 수 있다. 요석공주와 원효대사의 설화보다 더 아름다운 이야기를 꿈꿀 수도 있지 않을까.

때로 칠에 묻혀버린 기둥을 바라보며 나무의 본성인 침묵과 성실을 엿볼 수 없음이 안타깝다. 붉은 페인트칠 안에 숨어 있는 결이 나무의 침묵과 성실이 빚어낸 본성의 무늬일 텐데. 비바람에 나무가 상하는 것을 막아 다리를 오래 보존하는 방편이 칠이라는 것을 알기에 아쉬운 마음을 누그러뜨린다. 아름다운 건축물인 월정교가 오래도록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월정교는 통일신라시대에 건축된 다리로 조선시대에 유실된 것을 2018년에 복원하였다. 다리와 더불어 마침내 그 역사도 함께 찾은 것이다. 역사의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 기둥 하나하나를 떠올려본다. 둥글게 제 몸을 말며 시간의 나이테를 감은 나무들이 기둥으로 세워지기 위해 얼마나 오래 견디고 버텨냈을지 짐작만 할 뿐이다. 또 그렇게 내일로 나아가는 역사를 본다.

밤에 더 아름다운 다리로 손꼽히는 경주 월정교는 오색찬란한 조명이 다리 곳곳을 비추고 있어 신비롭고 황홀하다. 월성과 남산을 잇는 건축물이면서 멀리서 바라보면 빛이 머물며 그 빛을 받쳐주는 구조물로도 보인다. 빛의 다리이기도 하고 물 위에 지은 집이기도 한 월정교는 물을 초석으로 하여 올린 건축물이니 물의 비위를 잘 맞추고 있다. 물이 흐르면 흘러가게 두고 머물면 머무르게 하며 낮이나 밤이나 물그림자의 기둥은 어른거리면서 균형을 유지한다. 오랜 세월 동안 흔들릴지언정 주저앉지는 않을 것이다.

여행은 특별함을 찾아 나서는 일이지만 오히려 마음에 남는 것은 내가 관심을 가지고 바라본 소소한 것들이다. 다리를 건너다 송진이 흘러내린 기둥을 만나게 된 것처럼.

송진이 내게 무슨 말을 하려던 것일까. 자주 세상살이에 흔들리는 감정을 든든한 기둥처럼 균형 잡으라는 뜻일 성싶다.

 

 

수  상  소  감



여행을 다녀온 후 마음에서 간질간질한 이야기가 있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풍경, 기억 속에 도사린 오감의 느낌. 어쩌면 누구에게 전하는 이야기라기보다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즐거웠던 시간을 오래 간직하려는. 수필을 쓰는 동안 마음에 깃든 월정교와 병산서원을 참 많이 드나들었다. 사물이나 장소를 눈으로 보지만 때때로 마음으로 보기도 한다. 저장된 기억이 사실과 다를 수 있다는 말이다. 현실이 상상으로 떠내려가는 걸 붙잡으려고 검색, 확인하며 기억을 탄탄히 다졌다. 경주와 안동 여행에서 전체를 스캔하려고 욕심내지 않았다.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자그마한 것들을 관심 있게 지켜보았다. 그것들은 큰 덩어리의 기본이며 시작이었다. 그걸 알기까지 꽤 오래 어슬렁거렸다. 그동안 목적하던 것들은 대체로 크고 화려하고 누구나 다 아는 유물, 유적이었다. 사소하더라도 감정이 이끌리는 대상을 자세히 보는 눈 공부, 마음공부를 한다.
쟁쟁한 수필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고 기회를 흘려버리지 않아 다행이다. 수필 장르를 조금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고 기쁘다. 날마다 글쓰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제주 한림 출생

△2016년 시조시학 신인상 △2018년 ‘푸른동시놀이터’ 추천완료 △2019년 제1회 정음시조문학상 △2019년 한국가사문학대상 특별상 △시조집 ‘넌 무작정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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