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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무종霧鐘 / 조옥상

부흐고비 2020. 10. 6. 08:53

제6회 천강문학상 수필부문 우수상

새벽이면 세상의 아버지들은 바다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간다.

짭조름한 바람에 아침 햇살이 반짝이면 부두에 매여 있던 배들도 뚜우뚜우 뱃고동 소리를 내며 출항을 서두른다. 세상물살에 등 떠밀리듯 떠내려가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던 기억이 갯벌처럼 질척인다. 언 손을 비비며 고향 하늘을 바라보시던 아버지의 향수를 헤아려 주듯 바다 갈매기가 끼룩끼룩 가슴을 후린다.

장지문으로 새어나오던 아버지의 한숨이 자식들의 귓전을 맴돌다 스러졌다.

마당에서 두엄더미를 해작거리던 수탉 한 마리를 본 기억이 있다. 갑자기 몰려온 검은 구름이 비를 퍼붓자 날개 젖은 수탉은 횃대에 오르지 못하고 담 밑에 웅크리고 있었다. 그 수탉은 마치 싸움에서 패배한 패잔병 같았다. 축 처져서 푸드득거리던 아버지의 어깨도 그랬다.

세상이라는 거대한 함대에 승선했던 항해의 수고가 암초에 걸려 부서지는 이변은 한 가닥 심지까지 꺼버린 듯 지독한 안개로 돌변했다. 아버지의 갯바위 같은 의자가 치워진 자리에서 허공으로 치솟은 크레인 탑에 좌절과 고통이 매달려 있었고 겁에 질린 자식들은 짐승처럼 떨었다. 가족을 거느린 가장은 신음소리 조차 내지 않았지만, 모로 누운 아버지 옆으로 다가가면 파리한 몸에서 쩌 정 쩡 얼음 갈라지는 겨울강소리가 들렸다. 다시 봄을 맞기까지 성난 파도는 숱한 시행착오를 밀어다 놓고 저만치 도망갔다. 노을에 물들기까지 죽으면 죽으리라는 심줄 같은 각오로 다시 걸어 나왔을 때야 잿빛안개는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

세상의 아침은 모든 아버지의 피곤한 눈을 비비며 군중 속으로 걸어가게 한다. 육지 한 모퉁이에 저마다 이루어 놓은 가족을 위해 힘차게 솟아오르는 태양을 마중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태양을 마중 나가는 길은 소소리바람 불어와 어지럽고 춥다. 하지만 아버지들은 무거운 짐을 검불처럼 지고 걸어간다. 그러했던 내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식솔을 거느린 아버지의 등으로 안개비가 자욱하게 내리고 또 내렸다.

안개가 자주 출몰 했던 아버지의 바다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직면했다. 푸른 깃발을 내걸고 망망대해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버릴 아버지, 앞을 가늠 할 수 없는 해무로 표류중일 때 포구로 인도하는 무종[霧鐘]이라도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련한 종소리가 가까이 들리도록 아버지의 귀를 재촉 하면 아버지의 가슴에 달린 자식들의 이름표가 반짝였다. 어떤 처지에서도 포대기의 끈을 목숨처럼 쥐고 놓지 않았던 가장의 손, 가족이라는 인연이 해조음과 어우러진 비바체로 외로움을 달래주는 노래가 되었다면 얼마나 다행인가, 힘든 상황을 내색하지 않았던 아버지가 그리운 날이면 흩뿌려진 흔적이라도 찾을까 싶어 바다로 나간다.

배한척이 들어온다. 어부의 고독을 어느 부두에 내려놓고 오는지, 담보로 잡혔던 자식들이 만선滿船의 뒤를 힘껏 밀었는지, 뱃머리가 씩씩하다. 바다는 시간의 간극에 대해 의태구연하다. 폭풍이 무색하리만치 평온하다, 그렇다 해도 함부로 다가가지 못한다. 세상 물을 다 받아드린 위대함을 보여주면서도 냉정하기가 엄청나니 말이다. 기로에 선 사람들이 곧잘 바다를 찾아온다, 아름아름 터득한 이야기가 해변에 누워 있다는 평범한 아포리즘들, 바다는 식상한 잠언을 왜 싫어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삶에 지친 저마다의 발길을 비장의 지주대로 잡아 주는 스승 같은 물두멍으로서, 각자 처한 위치에서 준비한 제 그릇에 소화할 만큼 담아가기를 원하기 때문일 게다,

아버지의 두 발을 거두어들이는 해상의 달밤은 처연토록 교교했다. 나무처럼 직립한 부성이 아름다워서일까,

프랑스 철학자 ‘엘베시우스’의 내리사랑이라는 명언을 떠올려 본다.

‘부모의 사랑은 내려갈 뿐 올라가는 법이 없다. 사랑이란 내리사랑이므로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자식의 부모의 대한 사랑을 능가 한다’ 어련한 말씀 아니겠는가, 폭풍이 잦은 바다에서 홀로 겪어야 했던 아버지의 고통에 대하여 자식들은 얼마나 괴로워했는가, 칠흑漆黑같은 밤바다의 고독을 조금이라도 느껴 보았는가, 검푸른 물이랑에 숙연한 자세로 다가서면 아버지의 바다는 숨기고 싶은 치부를 툭 건드려 준다. 스멀스멀 기어 나온 회한이 아버지를 찾는다. 뚜 우 뚜우 떠나는 뱃고동 소리에 눈시울이 젖노라면 바다는 실 컨 울어도 좋다는 손짓을 한다. 바다의 비릿한 냄새가 식솔의 젖줄이었다고 고백하면 초심을 잃지 말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밤하늘의 별들을 품고 자식들의 꿈을 희망의 등대로 안내하는 아버지의 바다, 하여 엄위하고도 위대함에 정비례 되는 바다의 감성지수는 적잖이 높다. 삶의 여정이 고해苦海라는 관념을 깨고 긍정적인 가치관을 갖는다면 누구나 힘차게 저어 가볼만한 매력 있는 바다다.

아버지의 바다를 찬양한다. 해초의 냄새가 아버지의 냄새처럼 든든하고 미역이 풀풀 살아 펄럭이는 삶의 현장이 우리들의 가정이기 때문이다. 쪽빛으로 넘실대는 파도의 춤 그 유연한 자세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나름 잔잔한 여백을 즐길 수도 있으리라.

아버지의 정신은 바다를 닮아 건강했지만 곧았던 등은 휘어졌다. 그 등을 펴 들릴 수 있는 세월이 다시 돌아온다면 이보다 더한 영광이 어디 있을까 싶다, 바다 속을 들여다본다. 다시마와 청각 바다가 내는 것을 먹고 마시며 자식들의 근육을 키우신 아버지의 유전자가 보인다. 바다 속으로 들어가 그 뼈를 집으려 하면 곧 사라진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허사다. 회한의 안개 속을 허우적거리자 안전한 포구로 돌아가라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몽환에서 깨어나자 살구 빛 낙조가 분분한 넋두리를 갈마 안는다. 아버지의 바다는 격랑도 일지만 어둠을 밝히는 횃불 같은 은유로 영원히 철썩일 것이다.

소박한 마당에 꽃들이 피어난다. 얼굴을 비비며 웃는다. 검은 이끼에 발목을 접질리며 바다로 나간 아버지의 수고가 올망졸망한 짐을 싣고 육지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제 자식들은 그 품에 안겨 인내로 다져진 아버지의 가슴을 따습게 데워드릴 차례를 기뻐하리라.

태초부터 바다는 해를 낳고도 생색내지 않는다. 어둔 밤이 지나면 반듯이 해가 떠오른다는 그 자명한 사실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간에게 내어주는 자연의 섭리 그런 배려가 있기에 자식들은 거친 바다로 아버지를 내몰고도 감사한 마음으로 견디는 것이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재기의 힘을 키웠던 원동력이라면 범선을 가득채운 아버지의 사랑은 가없이 높고 위대하다.

무종霧鐘이 울린다. 그 종소리 따라 세상 아버지들이 자욱한 안개를 헤치며 각 가정으로 돌아오고 있다. 아버지의 바다는 역동적이다.

 

 

수  상  소  감


산을 좋아 했습니다. 그 산은 가파르기도 하고 때로는 완만하기도 했지요. 숨을 고르고 잠시 앉았노라면 잔잔한 들꽃이 웃어주고 산새들이 노래를 불러 주었습니다. 정이 들었고 얘기를 나누다 보니 몇 해인가 지났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자꾸 뒤돌아보았습니다, 오늘 다 늦은 오후 쭉쭉 뻗은 낙엽송 그늘아래서 기쁨에 젖어 감사한 분들의 이름을 불러보았습니다. 천강 문학상을 준비하시기에 노심초사하신 관계자님들과 피곤을 무릅쓰고 심사하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늦게나마 연락받았으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호들갑 떠는 친구들 사랑하는 가족들 지인들께도 고맙고 감사하기 그지없습니다, 일상에서 체험하는 잔잔한 이야기를 문학성 있게 풀어내기란 참 어렵습니다. 맑은 품성으로 좋은 글 읽으며 섬세한 감성으로 사유하는 글쓰기에 매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옥상 -> 1949년 충북 청주 출생,  2013년 평사리 문학상 수필 대상,  건안대학교 수필공모전수필 대상,  동서커피 수필 맥심상,  보훈 문예 수필공모 장려상,  여성조선문학상 수필 가작,  한춘문학상 수필 가작,  우암수필 문학상 수상,  2014년1월 수필과 비평 신인상

 

심 사 평


「무종霧鐘」은 서사적 구성과 문체가 매력적인 글이다. 서사성은 이 글에 신비로운 기운을 감돌게 하여 호기심을 갖고 글을 읽게 하는 핵심 요인이다. 안개 사이로 드러났다 사라지는 바다의 풍경처럼, 부성父性의 삶과 부성에 대한 그리움이 넘실거리는 이 글은 서사적 수필의 한 가능성을 생각하게 한다. 서사성을 근간으로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 실감이 부족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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