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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한 마리가 풀잎 위에 동그마니 앉았다. 더듬이를 세우더니 목을 쭈욱 빼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무게를 지탱할 뼈 한 조각 없는데, 제 몸뚱이만 한 집을 지고 느릿느릿 기어간다. 등에 지고 다니는 저 집이 없다면 달팽이는 천애의 알몸으로 노숙해야 한다.
나도 저리 작은 집이라도 가졌으면 했던 적이 있다. 부모 도움 없이 결혼을 하고 세입자들만 사는 주택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두 번째 계약 기간이 끝날 무렵, 새로운 집주인이 찾아왔다. 우리와 안면을 트려는 줄 알았는데 인사가 끝나기 무섭게 보증금을 올려달라고 했다. 단번에 뭉칫돈을 내놓으라니, 조금이라도 깎아 달라 사정했으나 반응은 차가웠다. 집주인은 형편이 안 되거든 다른 집을 알아보라며 등을 돌렸다. 한여름인데도 온몸에 한기가 느껴졌다.
하루아침에 길바닥에 나앉을 수는 없었다. 남편이 퇴근하면, 오토바이 꽁무니에 매달렸다. 골목을 이리저리 헤매며 전봇대에 붙은 벽보를 기웃거렸다. 어느 집 할 것 없이 전세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몰랐다. 가격이 맞으면 세간 살림을 다 들이기에 비좁았고, 마음에 들면 가진 돈으로는 어림없었다. 아이가 둘이란 이유로 문에서 퇴짜를 당하기도 했다. 이러다간 먼 변두리로 나가야 할 판이었다.
하루는 오토바이로 오를 수 없는 비탈진 달동네를 갔다. 골목을 한 바퀴 걸었더니 다리가 후들거렸다. 집들로 이어진 골목 모퉁이의 계단에 앉아 남편과 함께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숱하게 반짝이는 불빛들, 도시는 드넓고 집은 저리 수두룩하건만 내 집은 없었다. 가진 게 없는 사람은 도시에서 꿈조차 꾸지 말라는 것인지, 화려한 네온사인에 가려 하늘의 별도 보이지 않았다. 집을 보러 다니는 사이 보름달은 점점 스러져, 그믐달로 아슬아슬 걸려 있었다.
어떻게 하든 내 집을 갖고 싶었다. 띠앗 좋은 큰시누이가 우리 사정을 알고 일부 융통해 주겠다고 해서 희망이 보였다. 통장을 꺼내 놓고 월급을 감안해 주판알을 튕겼다. 후년이면 적금이 만기일 터, 빚을 얻어 집을 마련하면 겨우겨우 뒷감당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빚을 다 갚을 때까지 남편도 허리띠를 더 졸라매기로 했다. 내 집이 있다면 조금 남은 치약을 쥐어짜고 허드렛물을 다시 쓴다 해도 좋을성 싶었다.
우리 집이 생겼다. 열일곱 평짜리 오래된 서민 아파트였다. 내 생애 첫 집인지라 애착이 남달랐다. 방 두 개와 거실에 어울리는 도배지를 미리 궁리해 두고, 도배하러 가는데 마음이 먼저 달려갔다. 현관문 앞에 섰다. 난생 처음 내 집 열쇠를 주머니에서 꺼내 구멍에 끼우는데 손이 떨렸다. 문이 열리자 내 집이란 게 실감이 났다.
벽지에 풀을 발라 벽면을 붙여나갔다. 처음엔 손발이 제대로 맞지 않아 티격태격 다투었다. 삐딱하게 붙는가 하면 군데군데 기포가 일어났다. 뜯어서 다시 붙이고 쓸데없는 부분은 잘라냈다. 이번에는 무늬가 어긋났다. 마치 우리 부부를 보는 듯 했다. 밀고 당기면서 면을 맞추고, 그래도 안 되면 다시 재단해 쪽을 맞추자 얼추 꽃무늬까지 맞아 들어갔다. 따로 놀던 호흡이 차츰 어우러지면서 두 번째 방부터는 제법 그럴듯하게 도배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이사한 첫날,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안방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집은 우리에게 바로 ‘大’ 자였다. 이제 쫓겨날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푸근했다. 군데군데 손볼 곳이 많은 집이지만, 그 정도쯤이야 흠이 되지 않았다. 내 입맛에 맞는 벽지로 된 방에 아기자기한 세간을 들여 놓았다. 딱딱하고 네모난 창문에 부드러움을 더하려고 하얀 레이스 커튼을 달았다. 집안 구석구석 웃음이 번지도록 표정이 귀여운 두 딸 사진을 골라 걸었다. 여기저기 내 마음대로 꾸며가며 애들 키우는 재미로 일상을 채워나갔다.
오 년이 지나 더 넓은 집을 장만했다. 하지만 첫 집을 가졌을 때의 기쁨하고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적었다. 집 없던 때의 간절한 마음은 사라지고 더 큰 집으로 늘리고 싶은 욕구가 꿈틀대었다. 집 크기로 그 사람의 행복지수를 짐작하고 인격을 가늠했다. 십 년 후, 훨씬 크고 높다란 집으로 옮겼다. 집이 돈으로 보이면서 투자가치가 높은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먹고 살만 하니까, 꿈이 아니라 욕심을 키웠던 것이다.
천명에 이르자, 성장한 아이들이 하나둘 집을 떠났다. 널따란 공간에 부부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아이들의 부산한 몸짓 대신 그 자리에 적막이 똬리를 틀고 들어앉았다. 아이들 냄새가 남아있는 침대에 눕기도 하고 책상에 앉아 앨범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래도 빈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 어떤 날은 온종일 인기척을 못 느낄 때도 있었다. 이러다 스스로 침침한 동굴에 갇히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스멀거렸다.
위층을 세놓기로 했다. 젊은 부부가 이사 오면서 어린아이 우는 소리가 산중 암자 같던 집을 깨웠다. 아이들이 콩콩 뛰어다니는 소리, 부부간에 토닥거리는 소리,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사람 사는 소리가 들리면서 집에 생기가 돌았다. 평소에 소음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이토록 반가울 줄 몰랐다.
달포 뒤에는 집을 장만한 수빈이네가 이사를 간다. 희망에 부푼 저들은 한동안 내 집 마련의 기쁨을 누릴 것이다. 한 평씩 불려가는 재미 또한 쏠쏠할 터이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자신이 놓인 처지에 따라 달라지기 십상이다. 살다보면 달팽이 같은 집이라도, 하는 간절했던 마음을 잃어버리고, 나처럼 집의 크기로 사람을 판단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집에 대한 집착을 조금씩 비우면서 알게 될 것이다. 집이 넓어진다고, 행복의 부피가 커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제는 어머니 품처럼 아늑한 곳에 둥지를 트고 싶다. 치장을 모르는 자연의 뼈와 살로 지은 집에서 하늘을 지붕 삼아 지내면 좋겠다. 밤이면 순한 달빛과 쏟아질듯 빛나는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어릴 적 엄마 무릎을 베고 스르르 잠들고 싶다. 남쪽 뜰에 햇살이 뛰어놀고, 서편으로 호미질을 할 텃밭이 있으면 비단 위에 꽃일 테지. 울타리가 없는 집은 들꽃이 해사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돌아보니, 비록 성냥갑처럼 작았지만 그 속에서 아이들과 부대끼며 내일을 설계하던 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 집은 뭐니 뭐니 해도 마음이 편안한 곳이어야 한다.
잠시 멈추었던 달팽이가 다시 길을 떠난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집을 짊어지고 다니니 어디서든 몸을 가릴 순 있겠지만, 삶을 다해야만 집을 내려놓을 터이니 어쩐지 안쓰러운 생각마저 든다. 나지막이 묻는다.
"무겁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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