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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수선화 / 이효석

부흐고비 2020. 11. 24. 08:44

내가 만약 신화 속의 미장부(美丈夫) 나르키소스였다면 반드시 물의 정(精) 에코의 사랑을 물리치지 않았으리라. 에코는 비련에 여위고 말라 목소리만이 남았다. 벌로 나르키소스는 물속에 비치는 자기의 그림자를 물의 정으로만 여기고 연모하고 초려하다가 물속에 빠져 수선화로 변하지 않았던가. 애초에 에코의 사랑을 받았던들 수선은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른 봄에 피는 꽃으로 수선화에 미치는 자 없으나 유래와 전신(前身)이 슬픈 꽃이다. 애잔한 꽃 판과 줄기와 잎새에 비극의 전설이 새겨져 있지 않은가.

이왕 꽃으로 태어나려거든 왜 같은 빛깔의 백합이나 그렇지 않거든 장미로나 태어나지 못하고 하필 수선이 되었을까. 쓸쓸하고 조촐하고 겸손한 모양. 기껏해야 창 기슭 화병에서나 백화점 지하실 꽃가게에서 볼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어느 때 본들 화려하고 찬란한 때 있으랴.

언제나 외롭고 적막한 자태. 서구의 시인들같이 벌판에 만발한 흐뭇한 광경을 보지는 못했으나 그것 역시 그 빛깔 그 자태로는 번화하고 명랑할 리가 없다.

원래가 슬프게 태어난 꽃이라 시인들은 자꾸 슬프게만 노래한다. 수선은 자꾸자꾸 슬픈 꽃으로만 변해 간다.

어릴 때 벌판에서 수선화를 뜯고 놀던 마이젤과 라이온은 자라자, 한 사람의 소녀 메리로 말미암아 수선화 핀 그 벌판에서 드디어 사생(死生)을 결하려다가 두 사람 다 자멸해 버린다. 슬픈 노래 중에서도 이 ‘수선화 피는 벌판’같이 슬픈 시도 드물다.

수선화 자신의 허물이기는 하나 슬픈 인상만을 더하게 해 가는 데는 이런 시인의 죄가 또한 큰 것 아닐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낼 양으로 수선화의 묶음을 사들고 나서는 소녀같이 가엾은 소녀는 없을 것이며, 병들어 누운 그리운 사람에게 수선화의 분(盆)을 선사하는 사람같이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 같은 값이면 백합이나 장미나 프리지어를 선사함이 옳은 것이다. 하필 수선을 고를 필요는 없는 것이다. 백화점 지하실에서 운명의 유래에 떨면서 뉘 손을 거쳐 뉘 방으로 가게 될까를 염려하고 있을 수선화의 묶음을 상상해 보라. 자신의 신세가 애처롭기는 하나 그러나 굳이 비극을 사갈 사람은 없을 법하다.

다행히도 아직 수선의 선물을 보낸 적도 받은 적도 없었거니와, 앞으로 받게 된다면 신경의 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을까를 두려워진다.

언제인가 오랜 병석에 누웠을 때 시네라리아의 분을 선사한 이가 있었다. 나중에 이 이야기를 듣고 병석에 꽃은 대기라고 펄쩍 뛴 동무가 있었으나 시네라리아 화분은 수선화의 묶음보다는 그래도 낫지 않을까 생각된다.

세상의 젊은 남녀들이여, 수선화의 선물을 삼갈 것이다.

스스로 비극을 즐겨하고 전설의 환영을 사랑하는 이는 예외이나. 슬픈 병에다 수선화를 꽂아 놓고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을 들으며 멸망의 환상에 잠기는 것은 비참한 아름다움이다.

수선화는 참으로 그때의 소용인 것이며 그때에 빛나는 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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