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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구름카페 / 윤재천

부흐고비 2020. 11. 26. 08:50

나에게는 오랜 꿈이 있다.

여행 중에는 어느 서방西方의 골목길에서 본 적이 있거나, 추억어린 영화나 책 속에서 언뜻 스치고 지나간 것 같은 카페를 하나 갖는 일이다.

구름을 좇는 몽상가들이 모여들어도 좋고, 구름을 따라 떠도는 역마살 낀 사람들이 잠시 머물다 떠나도 좋다. 구름 낀 가슴으로 찾아들어 차 한잔에 마음을 씻고, 먹구름뿐인 현실에서 잠시 비껴 앉아 머리를 식혀도 좋다.

꿈에 부푼 사람은 옆자리의 모르는 이에게 희망을 풀어주기도 하고, 꾸믈 잃어버린 사람은 그런 사람을 보며 꿈을 되찾을 수 있는 곳, '구름카페'는 상상 속에서 나에게 따뜻한 풍경으로 다가오곤 한다.

넓은 창과 촛불, 길게 드리운 커튼, 고갱의 그림이 원시의 향수를 부르고, 무딘 첼로의 음률이 영혼 깊숙이 파고드는 곳에서 나는 인간의 짙은 향기에 취하고 싶다.

눈만 뜨면 서둘러 달려와 책장을 뒤적이고, 사람을 만나는 조그만 연구실이 있는 서초동 꽃마을이다. 2,30년 전부터 그렇게 불렀으니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변화의 물결에 휩쓸려 지금은 정치 1번지니, 강남의 요지니 하는 요란한 수식어가 붙어 있지만, 사슴의 뿔처럼 실속도 없이 교통만 혼잡하고, 하늘을 향해 치솟는 고층건물로 숨이 막힐 지경이다. 꽃마을은 꽃을 가꾸어 생계를 유지하던 풀더미 같은 사람들이 땅을 거름 삼아 하루하루를 살던 곳인데 지금은 문화와 진리의 요람, 예술과 학문의 메카다. '예술의 전당'과 '국악 연구원', '국립중앙도서관'과' 학술원','예술원'이 이곳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꽃과 문화는 생존이 해결되고 난 후에 생활의 질적 향상을 위한 요소이고 보면 서초동과 문화적 여건은 필연인 것도 같다. 집을 떠나 '문화의 거리'라 일컫는 서초대로를 지나 연구실에 이르는 동안 '구름카페'에 대한 동경심은 가로수가 늘어선 길목에 눈길을 머물게 한다. 플라타너스가 손에 잡힐 듯 가까운 길목 찻집을 지나면서, 은으한 조명에 깊은 의자가 편히 놓여 있는 찻집 앞을 지나면서, '구름카페'가 현시롤 이루어질 것 같은 기분좋은 착각에 빠진다.

프랑스의 '드마고카페 문학상'은 상장과 매달만 수여한다. 작가들은 그 상을 받기위해 창작에 열중한다. 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이 상의 권위는 주최측이 작품과 작가 선정에 엄격하기에, 오해의 소지를 제거함으로써 객관성을 대외에 과시한다. 드마고카페에서 수여되는 문학상과 같이 프랑스에는 누구나 인정하는 작가와 작품을 선별하고 조촐한 자리를 마련하여 정情을 나눌 수 있는 상의 수는 많아도 불만을 갖는 사람은 없다.

만약 내가 한 묶음의 장미꽃을 상품으로 수여하는 상을 만들 수 있다면 시상식은 '구름카페'가 제격일 것이다. 이 자리에 참석하는 사람이 꽃 한송이씩을 들고 와 수상자에게 마음과 함께 전함으로써 상금을 대신하는 '구름카페 문학상'을 만들어 상을 받는 사람과 시상하는 주최측이 자랑스러움에 벅찰 수 있는 문학상을 서초동 꽃마을에 뿌리내리고 싶다.

'구름카페' 천장과 벽에는 여러 나라의 풍물이 담긴 종을 매달아 문이 열리거나 바람이 불때마다 들리는 신비한 소리가 사람들의 영혼을 일깨우고, 다른 한편에는 세계의 파이프와 민속품을 진열해 놓아 구름처럼 어딘지 모를 곳으로 흘러가야 하는 사람들의 발길을 머물게 하고 싶다. 그 장소가 마련되면 한 시대를 함께 지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영원히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초대하여 향기 짙은 차를 마시며 비 내리는 날은 비를, 눈 내리는 날은 눈발에 마음을 함께 보내고 싶다.

'구름카페'는 나의 생전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어도 괜찮다. 아니면 숱하게 피었다가 스러지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면 어디서나 만날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행복의 장소인지도 모른다. 구름이 작은 물방울의 결집체이듯, 현실에 존재하기 않기에 더 아득하고 아름다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꿈으로 산다. 그리움으로 산다. 가능성으로 산다.

오늘도 나는 '구름카페'를 그리는 것 같은 미숙한 습성으로 문학의 길을, 생활속을 천천히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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