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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곡비哭婢 / 김순경

부흐고비 2020. 12. 31. 09:02

제2회 스틸에세이 공모전 대상

가마솥에 윤슬이 보인다. 희미한 등불에도 잔물결이 반짝인다. 열기가 소용돌이치면 무쇠솥은 소리 없이 눈물부터 흘린다. 때로는 큰소리로 울지만 불길이 멈추면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진다. 긴 세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어머니는 눈물을 닦아주며 다독거렸다.

처음부터 까만 솥이었던 것은 아니다. 뜨거운 불길을 참지 못하고 흘러나온 쇳물은 황토색이었다. 섬광을 번쩍이며 세상에 나타난 맑고 고운 쇳물은 숨 쉴 틈도 없이 모래 속으로 흘러들었다. 멋모르고 들어간 어둡고 숨 막히는 거푸집 속에서 몸부림쳤지만 절규의 목소리는 전해지지 않았다. 움직일 수 없는 좁은 공간에서 잠시 꿈틀거리다 등신불처럼 무쇠는 솥이 되었다.

솥은 군주를 나타내는 상징물이었다. 전쟁을 할 때도 솥은 반드시 가지고 다녔다.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면 병사들이 제 기량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백성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왕의 가장 큰 덕목이다. 의식주 중에서도 먹는 것이 단연 우선이다.

예나 지금이나 먹고사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이념도 좋고 정책도 좋지만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열심히 공부하고 일하는 것도 잘 먹고 잘살기 위함이다. 사흘 굶으면 담을 넘지 않는 자가 없다는 옛말이 있다. 살기 힘들면 죽음을 각오하고 국경도 넘는다. 총알이 빗발치는 피난길에도 솥을 지고 가는 것은 생명줄이기 때문이다.

시골집 부엌에는 큰 가마솥이 있었다. 언제나 참기름을 바른 것처럼 반질거렸다. 부뚜막 가운데 자리 잡은 큰솥은 늘 작은 솥을 곁에 두고 있었다. 장정이 대부분인 대식구라 뚜껑을 마음대로 열고 닫을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손이 귀한 집안이라 할아버지는 자손의 번창을 바라며 큰솥을 준비했다. 여러 고택을 다녀 봐도 우리 집 무쇠솥보다 큰 가마솥은 본 적이 없다.

솥의 종류는 다양하다. 지역에 따라 크기와 형태는 다르지만 용도는 한가지다. 대가족이 농사를 짓던 농촌에서는 한 번에 많은 밥을 짓는 가마솥이 필요했다. 일찍부터 농경을 중심으로 정착 생활을 하던 우리의 부엌은 모닥불로 물을 끓이는 유목민들과는 달랐다. 유목민들의 뚜껑 없는 청동 솥은 밥을 짓는 것이 아니라 물을 끓이고 고기를 삶는 솥이었다. 우리나라에도 가장 먼저 등장한 솥은 가마솥이 아니라 기마민족이 사용하던 청동 솥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삼한 시대 유물관 중앙에 세발 청동정鼎이 자리 잡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핵가족 제도가 자리 잡고 도시인구가 늘어나면서 가마솥 대신 알루미늄 솥이나 냄비가 늘어났지만, 지금은 산골 동네에서도 전기밥솥을 사용한다.

전기밥솥은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어디에 가든 전기 코드만 연결되면 스위치 하나로 쉽게 해결된다. 연기나 그을음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 불의 강약을 조절할 일도 없다. 쌀을 미리 불리지 않아도 물만 적당히 붓고 쌀을 안치면 설익은 밥이나 태운 밥 대신 고슬고슬한 밥이 된다. 매 순간 젊은 아가씨의 생기발랄한 음성으로 실시간 상황을 알려주기도 하지만 다 좋은 것은 아니었다. 눌어붙은 누룽지를 박박 긁어 오돌오돌 씹히는 맛을 즐기고 밥솥에 불을 때며 조곤조곤 이야기 나누던 가족들의 모습은 사라졌다. 수천 년 내려오던 부엌 문화는 편리하게 바꾸었지만 얼굴을 맞대고 사람 냄새를 풍기던 장면들을 앗아 갔다.

가마솥은 온 식구의 생명줄이었다. 물행주와 마른행주로 들기름으로 길을 낸 까만 솥이 반질거릴 때까지 닦고 또 닦았다. 정월만 되면 부뚜막에 촛불을 밝혀두고 모든 길흉을 판단하는 조왕신 같은 솥을 향해 비손도 했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의 가마솥은 가족을 먹여 살리는 생명의 원천이라 신주 모시듯 했다.

어머니의 하루는 깜깜한 부엌에서 등불을 켜면서 시작되었다. 싸늘하게 식은 솥에 물을 붓고 서서히 솥부터 데웠다. 두껍고 둔탁한 무쇠 덩어리는 좀처럼 달아오르지 않았다. 센 불의 열기가 솥 안에 가득 차면 증기 기관차처럼 하얀 김을 사방으로 뿜어내며 한동안 휘파람 소리를 냈다. 널빈지 틈새의 칼바람에도 씩씩대며 힘차게 치솟던 수증기가 잦아들면 약 불로 뜸을 들였다. 그제야 가마솥도 울음을 멈추고 조용해졌다.

고부간 갈등은 끝이 없었다. 며칠 잠잠하다 싶으면 비 맞은 풀잎처럼 어김없이 되살아났다. 유교의 잣대로 며느리를 가르치려는 할머니의 집착과 현실에 갇혀있는 어머니의 반발은 늘 같은 자리를 맴돌았다. 가끔 방에서 가시 돋친 말이 흘러나오면 부엌에서도 혼잣말 같은 응답이 들렸다. 어느 쪽도 틀린 말은 없었다. 서로 생각이 다를 뿐이었다. 아버지는 어느 편도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중재를 하지도 않았다. 저절로 사그라들기를 바랐는지 여차하면 동네일을 핑계로 밖으로 나갔다.

할머니의 목소리가 높아지면 부엌은 잠잠했다. 설움이 복받치면 참았던 울음을 소리 없이 터뜨렸다. 그렇다고 보란 듯이 큰 소리를 내며 울 수는 없었다. 자식들도 어떤 위로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잠재우지 못한 고부간 갈등에 섣불리 끼어들었다가 판을 키운 적이 있었다. 어설프게 한마디 거들었다 불난 집에 기름 붓는 꼴이 되었다. 아무리 가슴이 아려도 나서면 안 된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가마솥은 어머니 대신 울었다. 울음소리가 구슬픈 물굽이를 이루며 부엌을 적시면 가라앉을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아무리 눈물을 많이 흘리고 큰소리로 울어도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큰소리로 울어주는 가마솥이 남편이나 자식들보다 더 위안이 될 때도 있었다. 타들어 가는 어머니의 가슴만큼이나 가마솥도 까맣게 변해갔다. 희미한 등불이 지켜주는 무던한 가마솥은 주인을 대신해 울어주던 곡비哭婢였다.

무쇠솥은 연옥 같은 뜨거운 불길을 견디며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 전생에 무슨 업보가 있었기에 날마다 소리 내어 울었는지. 이제는 눈물을 닦아줄 사람도 없는 부엌을 혼자 지키며 말없이 지난날을 생각한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물결처럼 윤기 흐르던 솥뚜껑에는 세월의 먼지만 켜켜이 쌓여간다.

배역이 끝난 가마솥은 활활 타오르는 용광로 불길 앞에서 또 다른 세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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