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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몽매달’ 연휴 / 조춘호

부흐고비 2020. 12. 31. 08:59

어린이날 날씨는 화창했다. 두 식구 늦은 아침을 먹었다.

“큰 애 네는 어제 통영에 간다했는데 카톡에 사진 한 장도 안올리네.”

연휴라서 올라올 때 길이 막힐까 걱정을 했다. 그러나 남편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정훈이는 우리더러 한 번도 어디 같이 가자고 해 본적이 없어.”

아닌 게 아니라 큰 손자가 15살이나 먹도록 큰 아들네와 함께 나들이를 해 본 적이 없다. 십여 년 전 어느 날에는 아들에게 옆구리 찔러 절을 받아 보려고도 했다.

“너 어렸을 적에 할머니, 외할머니, 작은할머니, 심지어 태평동 할머니까지 모시고 다닌 사진을 못 봤냐?”

그러나 지금껏 절을 받지 못하였다. 큰 아들 뿐 아니다. 아들 셋이 모두 집안에서 효자효부라고 일컫지만 여행만은 제 가족끼리만 했다.

우리 내외는 3형제 어렸을 적 휴가 때마다 부모님들 모시고 구경시켜드리는 걸 기본으로 삼았다. 봄가을에는 민속촌, 대공원, 현충사, 내장사, 여름이면 만리포, 겨울이면 63빌딩 등 철철이 틈내어 다녔다. 할머니들은 손자들을 앞에 세우고 사진을 찍고 이놈저놈 챙기며 기뻐하셨다. 그런 일들을 아들들이 기억할 법 한데 어쩜 그리 부모와 나들이 한 번 가자는 말이 없었다. 이해가 안 되었다.

몇 년 전 난지도 하늘공원을 개장할 무렵이었다. 큰 아들네가 우리 집에 왔다가 하늘 공원 간다고 저의 식구끼리만 서둘러 나갔다. 우리 부부는 정말 서운했다. 어머니 아버지도 같이 가시자는 빈 말 조차 없었다. 하긴 빈말이라도 했다면 따라 나섰을 것이다.

하늘 공원은 아무 때나 산책삼아도 갈 수 있는 가까운 곳이다. 그런데 왜 꼭 아들네랑 함께 가고 싶을까?

“뭘 사줄까? 뭘 먹고 싶어? 저 것 갖고 싶어?”

손자 손녀 손 붙잡고 눈에 보이는 것 사 주며 알콩달콩 누리는 그 즐거움……. 그러나 우리 내외는 그림만 그릴 뿐이었다.

‘훗날 저도 늙어지면 이 마음 알 게 되겠지.’

그래도 야속한 마음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나는 식탁에서 옹이 박힌 남편의 말에 큰 아들을 두둔했다.

“요즘 젊은 애들 다 저희 식구뿐이잖아요.”

그러나 남편은 마음이 풀리는 것 같지 않았다.

“아니지. 처가식구들이랑은 제주도도 갔다 왔잖아. 얼마 전 스마트 폰에는 휠체어 탄 중희 외할머니와 어딘가 간 사진도 있더라구.”

어지간히 기대했었나보다. 퉁명스런 남편의 말에 오히려 내가 조바심이 났다.

“우리는 건강하게 해외여행까지 잘 다니는 사람들이잖아요.”

달래듯 말했으나 남편은 아무 말이 없었다.

화제를 둘째 아들네로 돌렸다.

“중리 애비는 오늘도 근무한대요.”

둘째 네는 유치원생 딸이 둘이다. 아빠 대신 손녀들과 놀아 주면 좋을 것 같았다. 며느리에게 전화했다. 친정에 갔다가 전날 부모님과 함께 올라왔다고 했다.

‘사돈어른들께 인사도 드릴 겸 잘되었구나.’

파주에 사는 며느리의 여동생 내외가 부모님을 뵈러 오후에 올지 모른다고 했지만 사돈어른들 계신다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사돈어른들 드셔보시라고 농장에서 딴 두릅을 챙기고 찹쌀, 삼계탕 재료도 준비했다. 안사돈의 선물도 골라 포장을 했다. 손녀들이 좋아하는 사과 복숭아 다양한 과일 맛 마이쮸를 챙기고 초콜렛도 쇼핑백에 담았다. 커다란 쇼핑백을 채우고 나니 흐뭇했다. 가능하다면 롯데백화점 뽀로로 열차도 태워 줄 셈이었다. 양 손에 무거운 짐 꾸러미를 들고 나섰다.

아들 집은 비어 있었다. 아파트 문을 두들기다가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았다. 몇 차례 더 걸었으나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집에 식구들이 있으려니 하고 전화를 하지 않고 온 내 잘못도 있지만 왈칵 서러움이 솟았다. 그래도 문 앞에서 한참 서성거리며 기다려보았지만 헛수고였다.

‘이 꼴이 뭐람.’

집에 돌아와서 쇼핑백을 식탁위에 탁 내려놓았다. 힘이 쏘옥 빠져나갔다.

저녁때가 되었다. 남편은 그래도 셋째 아들 며느리라도 보고 싶은지 혼잣말을 했다.

“막내도 오늘 쉴 텐데, 희재도 그렇고 전화 한 꼭지가 없네.”

나도 은근히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셋째 아들 처가댁은 온 가족이 모여 가끔 맛집을 찾는다는 말을 들었다. 휴일이니 그럴 것 같았다. 일부러 큰 소리로 말했다.

“저희들 생활이 있으니 기대하지 않는 게 좋아요.”

“맞네요, 맞아! 당신 말이 정답이오.”

맞장구를 치면서도 두 식구 사는 집안의 저녁 공기는 적막하기만 했다.

요즘 자녀 성별을 메달에 비유한 풍자가 두루 돌고 있다. 딸 둘에 아들 하나면 금메달, 딸 둘이면 은메달, 아들 딸 각 하나씩이면 동메달, 아들만 둘이면 목메달이란다. 그런데 아들만 셋 이상인 사람은 목메달도 못되고 무지몽매 하다고 몽매달이라나.

그냥 우스갯말은 아닌 것 같다. 딸을 둔 부모 비행기 타고 아들 둔 부모 도라꾸(트럭)탄다고도 한다. 며칠 전 TV ‘아침마당’에서 진행자는 딸이 넷이라는 출연자에게 힘주어 말했다.

“아, 딸 많은 집이 진짜 부잣집이죠!”

어떤 결혼 주례자는 딸을 떠나보내는 게 아니고 사위를 데려오는 거라고 했다. 요즘 세상이 그렇다고 대부분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러나 딸만 낳은 여자는 기를 펴지 못하던 시대도 있었다. 대를 잇지 못하니 칠거지악감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풍조가 변하고 이 떠도는 말이 현실이 되고 있는 것 같다.

“너도 막내 하나만이라도 딸이 되었어야 하는데, 아들만 셋이라니…….”

친정어머니 살아계실 적 딸이 안타까워 쯧쯧 거리셨던 것처럼 몽매달감은 이렇게 허탈한 연휴를 보냈다.

‘나도 우리 시부모님께 이런 마음 드렸겠지….’

“ 난들 우리 시부모님께 이런 마음 안 드렸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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