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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교수가 외로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아들들이 있는 곳을 찾아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그를 배웅하고 오는 공항버스 안에서 우리들은 영국에선 외로움 담당 장관이 탄생했다는 TV 뉴스를 접했다. 그 소식은 남교수가 미국으로 떠난 것만큼이나 우리를 허탈하게 했다. 외로움이란 사적 영역에까지 국가가 개입한다는 사실이 왠지 서글프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남교수는 고등학교 동창 가운데 몇 안 되는 죽마고우 중 하나다, 그는 00전문대 교무과장으로 정년퇴임했다. 우리 동창들은 그가 서양철학을 전공했다고 늘 자랑도 할 뿐만 아니라, 다방면에 걸쳐 지식이 많아 편하게 남교수로 부른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동서양의 역사와 철학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 특히 실존철학에 입각해 ‘삶과 죽음은 하나’라는 독특한 논리로 우리들을 매료시켰다.

남교수는 재직 중에 명문대 출신이기도 한 예쁜 아내와 일찍 사별하고, 혼자 힘으로 아들 둘을 잘 키워냈다. 그들은 미국 하와이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편 그는 사별한 아내 때문인지 퇴임 후에 ‘힐링 연구소’란 일종의 심리 치유소를 차리고, 회원들을 모집하여 전국 유명 휴양림을 찾아다니면서 고독이란 현대병을 치유하는 행복 전도사가 되었다. 특히 외로움을 극복하는 치유 분야에선 자신이 국내 최고라며 큰소릴 쳤다. 그런 연구소에 수강생이 있을까 의심했지만, 입소문을 타서 한때는 수강생이 2백여 명이 넘기도 했다. 나도 가끔 무료로 진행하는 힐링 체험 행사에 초대되곤 했는데, 열정과 달변으로 수강생을 사로잡는 그의 강연에 놀랐다.

“외로움은 소통 부족에서 오는 사치스런 현대병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산천초목, 자연 하나하나를 인격 대화자로 내 안으로 불러서 마주하고, 땅은 무엇을 바라는지 땅과 소통하고, 하늘도 내 가슴 안으로 끌어들여 구름과 바람과 이야기하며, 이웃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를 알아 넉넉한 마음으로 이웃과 가까이 지내십시오.”

외로움의 근원을 소통 부재로 보고, 그 벽만 허물면 만사형통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때론 초자연적인 초자아와도 소통하라고 할 때는 마치 사이비 교주의 설교를 듣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별이 쏟아지는 강원도 인제 산골짜기에서 있었던, 우주를 내 안으로 끌어들여 외로움을 쫒아내자는 내용은 지금도 제법 명강의로 기억된다. 그런데 정작 남교수 자신은 홀로 사는 외로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아들들을 찾아 떠나는 고독병 환자로 전락한 것이다.

미국행을 결행하기 전에 그는 아무도 없는 집에 홀로 들어설 때가 가장 두렵다는 얘기를 종종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여보게, 자네 지론대로 집에 있는 가구들과도 소통하든지 아내의 넋도 불러들여 좋은 추억들을 되새기면서 대화를 하게나.”하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일깨워줬다. 하지만 처절한 외로움을 좀체 견디지 못하고 그는 떠났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살아남기 위한 무한경쟁은 인간을 이기주의로 내몰았고, 특히 이웃과의 단절은 현대인을 군중 속의 고독한 외톨이가 되게 했다. 2018년 통계에 의하면, 영국인 900만 명이 몹시 외로움을 느끼며 생활하고, 그중에 20만 명은 누구와도 대화하기조차 힘들다고 한다. 외로움이 개인적 질병이 아닌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독사하는 사람이 연중 1,800명을 넘고 있는데, 그 숫자는 매년 증가 추세라고 한다.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고독사가 증가하는 것도 해결해야 할 중대한 사회문제다. 외로움은 인간 역사와 함께 해왔고, 인류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 문학과 음악, 미술 등 예술은 물론, 종교에 의지하기도 했다. 그런 것들이 위대한 인류 문명을 창조하는 원동력이 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외로움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란 모순과 직면한다.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 김소월, <진달래꽃>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 윤동주, <서시>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 정호승, <수선화에게>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혜민스님 에세이
이처럼 외로움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서 어떤 때는 체념으로, 어떤 때는 하늘에 기도하는 자세로, 또 어떤 때는 외로움을 수선화처럼 아름다운 시로, 그리고 마음을 비우라는 불교적 화엄사상으로 치장한다.

혼자 생활하며 고독을 씹는 것은 하루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만큼이나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해롭다고 한다. 그리하여 영국에선 매년 6월 ‘그레이트 겟 투게더’ 운동을 벌여 가족과 이웃끼리 길거리 파티를 열어 함께 식사를 하는 캠페인으로 외로움 치유에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한다. 이는 별게 아니다. 다 함께 그냥 신나게 먹고 춤추며 벌이는 놀이판이다. 외로움이 개인적 질병이 아닌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이상, 아름다운 시나 종교의 힘만으로 치유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상생하려는 공동체 삶을 확대하여 공유하면서 문학이나 예술 활동을 통해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노력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남교수가 자신의 속앓이를 숨기고 외로움을 극복한 척 청중을 속였는지, 아니면 강단에 설 때는 진실로 그 자신이 외로움을 극복한 전도사였는지는 오직 그만이 알겠지. 결국 ‘힐링 연구소’의 문을 닫고 말았다. 그가 살 힐링의 집은 끝내 짓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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