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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동백의 자리 / 김현숙

부흐고비 2021. 1. 5. 14:00

일부러 씨앗을 흘리지 않고서야 저런 곳에 자리를 잡을까 싶을 만큼, 우리 아파트 동백의 위치는 보편적이지 않다. 사립문 앞이라면 정취라도 있지. 커다란 통 유리문 앞에 그것도 콘크리트 벽에 몸을 기대고 있는 것을 볼라치면 여간 싱거운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화단의 규모가 동백을 더 왜소하게 만들었다.

또 처연하기로는 이길 자가 없다. 서 있는 모습을 보면, 언제 저 꽃이 청렴과 절조의 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화단 귀퉁이에 모로 선 폼이 따돌리는 것처럼 보인다. 테두리 안으로 든 것도 아니고 못 든 것도 아닌 애매한 자세가 볼품이 없었다.

얼마 전 퇴근길에 생긴 일이다. 동백이 타고 있었다. 볕에 까칠하게 타들어가는 동백을 보니, 이 계절을 겪느라 애를 먹는 듯 보였다. 꽃이 져도 어찌 저렇게 진단 말인가. '나 곧 떨어져요' 하면서 지는 꽃잎들이 내 눈길을 끌었다. '감히 지는 꽃이라고 일컫지 마라, 낙화의 덧없음에도 대지마라'면서 동백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붉은 잎 가장자리가 화염에 지져지는 양 검게 오그라들면서, 그러다 툭 떨어져 버린다. 차라리 바람에 흩날려버리지. 그 꼿꼿함이 제 몸 타들게 하는 줄 모르고….

꽃잎이 어린애 귓볼 같았다. 만져보지 않고는 상상할 수 없는 촉감이었다. 겹겹이 포개져 서로의 무게를 받들고 있는 낱장들의 힘. 어느 것 하나라도 비슷한 화합이 없었다면 동백은 아마 목이 부러졌을 것이다. 동백은 꽃잎의 균형에서 의지가 빚어지는지도 모른다. 한 잎 두 잎 얹어가면서 가느다란 줄기 안으로 무섭도록 내공을 쌓는 꽃이 동백이다. 그러나 연약한 꽃받침 위에 그토록 소복하게 들어차도, 바람에 꺾이는 일 없고 손 타는 일 없는 것이다.

하지만 도리 없이 꽃이파리 자체는 약했다. 손으로 찢으면 결도 못 추리고 깨져버리는 가녀린 꽃잎, 흙 설고 물 선 이국에서 홀로 서야하는 그런 사람들을 닮았다. 우리 세계에 끼인 것도 아니고 못 끼는 것도 아닌 이방인들의 삶, 동백은 그들의 어떤 면을 닮아있었다.

그녀도 동백꽃잎 같았다.

낯선 땅으로 시집온 키 작은 여자, 디엔이 동백 옆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작년에 사고로 남편을 잃은 연수엄마다. 한 번씩 동네가 떠나갈 만치 대성통곡을 하는 베트남에서 온 신부, 그녀는 사람들 시선에도 아랑곳없었다. 맥없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가, 바닥에 떨어진 꽃잎을 쳐다봤다가….

아, 그 둘의 조합을 무어라 해야 하나.

케첩 깡통으로 만든 재떨이를 발치에 당겨놓고, 돌돌 말린 재떨이 턱에다 막 담뱃재를 떨던 참이었다. 디엔의 숨결에서 묻어나는 메이드 인 코리아 담배 냄새와 그녀의 고향 냄새가 스며있는 것 같았다. 아마 우리와 체취가 다르리라는 내 편견 때문일 것이다. 화단 근처가 연기로 채워질 동안 불똥 하나하나가 재와 함께 동백을 에워쌌다.

떨어지는 꽃잎과 담뱃재와 불똥의 충돌, 동백이 향이 없는 꽃이라 했었나? 적어도 지금만큼은 그건 틀린 말이다. 동백 꽃잎을 쥐고 비벼 본 사람이라면 안다. 디엔의 입에서 뿜어 나오는 담배 연기에서도 그 향이 나는 듯했다. 어린 아들의 밥 시중이 힘들었을까. 며칠 전 다녀간 엄마가 그리웠을까. 달도 뜨기 전에 나와 앉아 혼자 애태우는 그녀의 눈이 동백꽃처럼 붉었다.

동백의 자리가 디엔의 자리다. 디엔의 자리가 우리의 자리다.

작은 화품花品으로 태어나 겨울까지 푸를 수 있는 나무가 얼마나 될까. 사철나무를 거론하자는 말은 아니다. 사철이야 말 그대로 사시사철 그런 것이니까. 흐드러진 꽃무더기 속에서도 동백이 차분한 이유는, 우리에게 상춘常春의 기대를 선사하기 때문이다. 화단 귀퉁이에 머쓱하게 선 동백이 디엔에게 곁을 내준 일로만 보자면 어떤 나무가 그러게 하지 않겠냐마는, 꼭 그 동백이여야 하는 이유는 분명 있었다.

아무리 애달파도 뿌리 채 옮겨오지 못하는 인생이 있다. '이다한' 이라는 한국 이름을 호적에 올려놓고, 아들을 낳아 '연수'라 부르며 살지만 그녀가 쉽사리 들을 수 없는 대답이 있다. 제 고향 남쪽나라에 두고 온 디엔의 삶은 불러도 자꾸만 대답이 늦다. 연수엄마로 새롭게 자리 잡아야하는 타국의 여자에게 동백의 자리가 눈에 든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화단 끝에 선 동백의 처지도 디엔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기에 말이다.

동백은 디엔에게 마음을 기울이느라 몸통이 삐딱해진 것일까. 차가운 콘크리트 벽을 향해, 디엔의 무너지는 가슴을 향해, 가지를 뻗어 붉은 꽃잎을 보여주느라 그리됐나보다.

아름드리라야만 나무든가, 그늘을 만들어야만 나무인가, 저 동백처럼 곁을 내주는 것만으로도 쉼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떨어지는 꽃잎을 보면서 같이 울어줄 수 있는, 사는 일이 원래 속 타는 일이라며 서로를 위로하는, 그런 나무 한 그루면…. 한 숨 돌릴 수 있으리라.

디엔과 '나' 사이에 낀 동백이 우거진 수목만큼은 아니다. 그저 삶 가까이 자리 잡고 앉아 우리와 함께한다. 해서 산사의 둘레길이나 남해 섬 어느 곳처럼 군락을 이루진 못해도, 주고받는 눈길만으로 화림和林을 이루는데 손색이 없다. 동백의 자리가 바로 나와 당신의 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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