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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호호好好 랩송 / 김희수

부흐고비 2021. 1. 8. 08:47

영어도 좋지만 한자도 공부해둬라 엄마가 말씀하셨지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어 천자문은 따분해 천팔백자 지루해 엄마, 관심 있는 걸 하면 머리에 잘 들어온다고 했지 내게 관심 있는 건 그녀뿐이야 그럼 계집녀(女) 들어가는 글자부터 해봐라 좋아좋아 왜 여자가 좋은지 알겠어 좋을 호(好)에 여자가 들어 있잖아 어떻게 안 좋아할 수가 있어

그녀가 호호(好好) 배꼽으로 웃어주었지 초승달 같은 하얀 미(媚)소도 벅찬데 보름달 같은 배꼽 미소에 내 모든 느낌이 충돌했어 이름은 또 어떻고 아름다울 연(娟)에 예쁠 아(娥) 연아처럼 예쁜 아인 없어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내 운명은 비로소 시(始)작된 거야 여자는 묘(妙)한 동그라미 과녁처럼 동그라미를 많이 쳐놓고 나를 어지럽게 해 갈 지(之)자로 비틀거리게 해 그리곤 "내게 올래(來)?" 손짓하잖아

맵시? 자(姿), 봐봐 예쁜 요(姚)기도 봐 날씬한 이 허리는 어때 우리 춤출 사(娑)이는 되잖아 멋지게 한번 청춘을 흔들어 탐내는 눈빛으로 가까이 와봐 내 손을 잡아 빙글 돌아봐 멜로디 기둥 속으로 들어간 거야 멜로디끼리 흔들어봐 이 시간만은 뭐든 함께 해(偕) 넘칠 일(溢) 많을수록 좋아좋아 이 노랜 우리가 즐겨 부르는 노래, 요(謠)! 요! 요!

  어제였어요, 뜨거운 포옹과 아찔한 키스의 시계바늘이 나란히 누운 건
  밀려오는 파도소리는 우리의 뛰는 가슴을 묶어놓지 못해 밤새 소리쳤고
  풀벌레 일가족이 일제히 나와 행복하라, 행복하라, 연주해 주었는데
  무엇이 문제였나요, 키 작은 시침과 큰 분침이 멈춰버린 까닭은

그녀가 떠난 뒤 울고(呱) 말았지 내사랑 돌려달라고 빌걸(乞) 그랬어 눈물루(淚) 호소하면 안 떠났을까 그때부터 슬픈 음악이 좋아졌지 슬픈 나와 슬픈 음악이 부둥켜안았지 우울한 바다가 끝없이 펼쳐졌어 허우적이는 날 구하려고 한 여자가 다가왔어 호호 웃는 배꼽은 그녀와 비슷했지 그러나 아냐아냐 그녀에겐 샘물 같은 영혼이 있었어 달 속에 있는 선녀 항(姮)아 같은 그녀 어딜 가면 만날 수 있을까

달이 찰 만(滿)하면 몸부림치는 이 고질병, 고요할 적(寂)에 찾아와 내 가슴에 창을 던지네 투기할 질(嫉) 투기할 투(妬) 두 개를 꽂고 사라지지 아파 너무너무 아파 탐할 람(婪)자 속의 두 그루 나무처럼 두 남자가 한 여자 때문에 싸워 이봐 재물이나 음식을 탐내지 하필 그녀를 탐내는 거야 그녀는 한 나무를 쓰러뜨리고 갔지 아내처(妻)럼 첩(妾)처럼 왕비(妃)도 되고 기생(妓)도 되는 무지갯빛 여자의 얼굴에 내가 울어 울리는데도 그녀가 여전히 좋아좋아

내 곁은 떠날 리(離) 없다고 믿었지 돌에 새겼지 밥이면 어떻고 국수면(麵) 어때 하면서 따랐지 모든 걸 주어도 늘 모자랐어 그녀가 콩하면 나도 콩, 그녀가 팥하면 나도 팥, 절대적이었지 이봐 저것좀 높이 들게(揭) 하면 마네킹 뺨치게 해냈어 나좀 쉴게(憩) 하면 해태 위에 올라앉은 원숭이처럼 잠깰 때까지 망을 보았어 그런 나였어 그런데 네가 바람처럼 가버렸어 그뒤로 허공엔 길이 생겼지 그길로 날 끊임없이 잡아당기는 끌어당기는 너, 여(汝)! 여! 여!

  잘있나요, 밤바람이 울어대 잠 못들진 않나요
  슬픈 음악에 기대어 홀로 앉은 찻잔 식어버린 커피
  한 모금은 애소(哀訴), 두 모금은 목마름에 지친 애련(愛戀)
  그리운 얼굴이 바닥날까봐 조금씩 조금씩 삼키고 있잖아요

사랑은 괴로울 고(苦) 외로울 고(孤)야 사랑은 높을 고(高) 그래서 마를 고(枯)야 그녀의 배꼽은 단단할 고(固)였지 사랑은 결국 뒤돌아볼 고(顧)였어 털어털어 훌훌 털어버려 우리에겐 즐거워할 오(娛)늘이 중요해 어제는 앞길을 방해할 방(妨)해꾼에 불과해 나가나가 앞으로 나가 뒤돌아 보지마 곱배(倍)기로 잘사는 길 열려 있잖아 새털처럼 즐겁게 희희(嬉嬉) 날아봐 웃어봐 좋아좋아 이렇게 웃는 거야 마음의 그늘이 줄행랑치잖아 마음의 가시가 쏙쏙 빠지잖아 어쨌든 그녀 덕에 한자공부 잘한 건 고마운 일이야. 야(也)! 야! 고마운 일이야, 야! 야!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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