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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나의 푸른 것들아 / 이난호

부흐고비 2021. 1. 11. 09:21

서른을 넘긴 두 아들이 사과를 먹는다.

빨간 사과를 껍질째 베물어 쯥, 하고 단물을 한번 빨아 삼키고 와작와작 씹는다. 과즙을 튀기며 몇 번 씹다가 삼키느라고 목울대를 꿈틀거린다. 그게 채 다 넘어가기도 전에 이들은 또 콧등에 주름이 잡히도록 입을 크게 벌려 팍 하고 사과를 베문다. 또 쯥, 하고 단물을 빤다. 넋 놓고 바라보면서 나도 덩달아 입술을 움질거릴 뿐 껍질을 벗겨주려 하지는 않고 고작

“그래두 위아래 배꼽일랑 피해 먹어라.”

충고한다. 아이 둘이 입 안 가득 사과를 문 채 고개만 한 번씩 주억거린다. 과일의 꼭지와 꽃자리에 농약이 몰려 있어 위험하니 그 부분만이라도 피하라는 어미의 말뜻을 가볍게 받는 저 시퍼런 젊음이라면 하긴 비상을 삼킨대도 끄떡없을 것 같다. 괜히 또 꾀죄죄한 걱정을 했구나, 무안해지다가 위험 부위를 알려주고 거기를 피하라는 경고가 어찌 꾀죄죄할까 자문한다.

저 사과가 저 고운 빛깔로 저토록 매끈한 몸을 지켜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맹독성 약제를 뒤발했을까. 약효는 먹는 이에게까지 따라붙겠지. 장미의 가시처럼 미인의 교태처럼 고운 빛일수록 향이 짙을수록 위험지수도 이에 정비례하겠지. 이렇듯 모든 매옥의 색조는 일단 경계의 사인이 아닐까. 요행 저 사과처럼 꼭지와 꽃자리에 독기를 몰아주어 간단히 위험 부위를 도려낼 수도 있지만 대개의 독기는 가장 유혹적인 곳에 바짝 붙어, 심한 경우 생명을 담보하도록까지 시치미 떼기도 한다. 일례로 현대의학으로는 완치불능이라는 AIDS는 인간이 성욕구를 남용 오용한 데서 자초한 천형이라지 않나. 세계적으로 첫손 꼽히는 귀금속 가게에서 최고가의 다이아몬드는 살아있는 독사가 지키고 있었다. 뜨끔한 시사 아닌가.

나는 내 몸 어디에 독을 모으고 남의 급소를 노렸을까.

사과의 꼭지처럼 단번에 도려낼 수도 없는 그것이 몰린 곳이 입일까. 눈일까, 손일까, 머리일까, 아니면 정말로 은밀한 그곳일까. 아무래도 입에 혐의가 먼저 갔다. 실제로 나는 크고 작은 말실수를 많이 했다. 깐엔 바른 말을 한답시고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재치 있는 농으로 튀어보려다 남의 약점을 찌르기도 했고 어떤 두 사람의 뻑뻑한 관계를 풀어보겠다고 오지랖을 폈다가 비웃음을 샀다. 의도적으로 강한 적의를 품고 상대방의 급소를 겨냥하고 화살을 날린 적은 왜 없겠는가. 실로 업장 두터운 나의 네모.

그 네모를 언젠가부터 친정어머니 앞에서 꿰맨 듯이 닫게 되었다. 어머니는 응석받이 막내로 기가 세었는데 노년으로 들며 눈물이 많아져 만나면 일단 흐린 얼굴부터 보이려 들었다. 나 말고도 여섯이나 되는 당신 자손들과 그들의 짝들에 대한 섭섭함을 부풀려 읊어대며 한바탕 눈물을 쏟는 게 우리들 만남의 오프닝이었다. 유독 큰딸내미 성정이 둘째나 셋째에 비해 푼푼치 못했으니 급기야 어느 날 나는 그 자리에 없는 동생들과 새사람들을 두둔하면서 어머니의 편협성을 정면으로 꼬집고 나섰다.

내게서 응석을 퇴박당한 어머니는 동생들 집을 돌면서 큰딸의 불효를 얼마나 부풀려댔던지 머잖아 아우들로부터 성토성 항의가 빗발쳤다. 나는 뒤늦게 그분의 노여움의 농도를 가늠하고 좀 아찔했다. 그것이 어머니가 체득한 자식과의 관계회복 술수임을 알기까지. 퇴영기 노인의 자구책 지혜임을 이해하기까지 나는 나의 가벼운 네모만 저주했다.

어머니는 당신의 울타리인 아들들과의 삐딱해진 관계만 회복될 수 있다면 출가외인 하나 잠깐 희생시킨들 대수랴, 하등 가책받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나이 든 딸내미와 얽힌 관계야 가벼운 변명 한마디로 간단히 풀릴 수 있고 혹여 안 풀린대도 그다지 겁날 것 없지만 아들들과의 관계는 그게 아니리란 어머니 나름의 계산을 가늠한 순간 나도 나름의 분별력을 서둘러 챙겼다. 바로 어머니 앞에서 침묵으로 일관하기였다. 이후 자연 대화가 겉돌았다. 어머니는 또 그게 서운해서

“남의 집 맏딸들은 어미의 찬구맞잡이던데 어째 내 딸은 남만도 못하냐?”며 깊은 한숨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침묵은 금’으로 무장한 터 그 말씀마저 덤덤히 흘려들으며 결심을 허물지 않았다.

그러나 쓸쓸했다. 모든 관계맺음이, 이처럼 께름칙한 뒤탈이 염려되어 맨송맨송 겉돌아도 되는 걸까. 분별력 없이 솔직했다가 주책이라 매도당하고 선명하게 흑백을 가른답시고 납대다 상종 못할 밴댕이창자로 낙인찍힌대도 나는 좀 분별없고 싶었다. 깜깜한 침묵보다는, 언제 누가 들어도 무해무득한 전천후성 매끈한 사교성 한마디보다는 더러 퉁맞아 깨지더라도 푼수데기, 주책바가지, 구업쟁이들과 코를 맞대고 싶었다. 사람냄새로 부대끼고 싶었다. 구차스런 네모로 하여 수차 옐로카드를 받았음에도 나는 아직 그렇다. 독이 몰린 꼭지건 꽃자리건 상관 않고 사과를 먹어대는 것도 아슬아슬하지만 살점을 저미듯이 두껍게 껍질을 벗겨버리는 신중함도 마음 불편하게 하긴 마찬가지였다. 선문답이나 주고받을 사이가 아닌 바에야 어차피 구업으로 인한 자질구레한 군소리는 따라붙기 마련, 각오하고 그저 웬만큼 트면서 좀 헐거워지고 싶다는 이 말 또한 구업을 하나 더 쌓는 게 되더라도 말이다.

두 애가 사과를 먹고 사라진 식탁에는 위아래 배꼽이 붙어 장구 모양이 된 사과 속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미미한 사과 향, 그것은 내 푸른 것들이 풍기는 나무냄새였다. 저들의 네모도 그 냄새만큼 늘 푸르고 정갈하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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