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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서정주 시인

부흐고비 2021. 2. 5. 09:17

 

 

추천사鞦韆詞 – 춘향의 말·1 / 서정주

 

향단아 그넷줄을 밀어라

머언 바다로

배를 내어 밀 듯이,

향단아

 

이 다소곳이 흔들리는 수양버들나무와

베갯모에 뉘이듯한 풀꽃더미로부터,

자잘한 나비새끼 꾀꼬리들로부터,

아주 내어밀듯이, 향단아

 

산호도 섬도 없는 저 하늘로

나를 밀어올려다오.

채색한 구름같이 나를 밀어올려다오

이 울렁이는 가슴을 밀어 올려다오!

 

西으로 가는 달 같이는

나는 아무래도 갈 수가 없다.

 

바람이 파도를 밀어 올리듯이

그렇게 나를 밀어 올려다오

향단아.

 

※ ‘추천’은 그네의 한자어다.

 

 

 

다시 밝은 날에 춘향의 말·2 / 서정주

 

신령님…….

 

처음 내 마음은

수천만 마리

노고지리 우는 날의 아지랭이 같았습니다.

번쩍이는 비늘을 단 고기들이 헤엄치는

초록의 강 물결

어우러져 날으는 애기구름 같았습니다.

 

신령님…….

 

그러나 그의 모습으로 어느 날 당신이 내게 오셨을 때

나는 미친 회오리바람이 되었습니다.

쏟아져 내리는 벼랑의 폭포,

쏟아져 내리는 소나기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령님…….

 

바닷물이 작은 여울을 마시듯

당신이 다시 그를 데려가시고

그 훠 ㄴ한 내 마음에

마지막 타는 저녁 노을을 두셨습니다.

그러고는 또 기인 밤을 두셨습니다.

 

신령님…….

 

그리하여 또 한번 내 위에 밝는 날

이제

산골에 피어나는 도라지꽃 같은

내 마음의 빛깔은 당신의 사랑입니다.

 

 

 

춘향유문春香遺文 - 춘향의 말·3 / 서정주

 

안녕히 계세요

도련님

 

지난 오월 단옷날, 처음 만나던 날

우리 둘이서 그늘 밑에 서 있던

그 무성하고 푸르던 나무같이

늘 안녕히 안녕히 계세요.

 

저승이 어딘지는 똑똑히 모르지만

춘향의 사랑보다 오히려 더 먼

딴 나라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천길 땅 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

도솔천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더라도

그건 곧 도련님 곁 아니예요?

 

더구나 그 구름이 소나기 되어 퍼부을 때

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거예요!

 

 

자화상 /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기퍼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깜한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도라오지 않는다 하는 外할아버지의 숯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었다 한다.// 스물세햇동안 나를 키운 건 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눈에서 罪人을 읽고가고/ 어떤 이는 내입에서 天痴를 읽고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찰란히 틔워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우에 얹힌 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서꺼있어/ 볓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을 느러트린/ 병든 숫개만양 헐덕어리며 나는 왔다.// 

 

시론(詩論) / 서정주

바닷속에서 전복따파는 濟州海女도/ 제일좋은건 님오시는날 따다주려고/ 물속바위에 붙은그대로 남겨둔단다./ 詩의전복도 제일좋은건 거기두어라./ 다캐어내고 허전하여서 헤매이리요?/ 바다에두고 바다바래여 시인인 것을…….//

 

기인 여행가 / 서정주

나는 지낸 밤 꿈속의 네 눈썹이 무거워 그걸로 여기 한 채의 절간을 지어두고 가려 하느니//

 

동천(冬天) / 서정주

내 마음 속 우리 님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 섣달 나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무슨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싶은가 / 서정주

븬 가지에 바구니만 매여두고 내 少女, 어디 갓느뇨 -吳一島//

아조 할수없이 되면 고향을 생각한다/ 이제는 다시 도라올수없는 옛날의 모습들. 안개와같이 스러진 것들의 형상을 불러 이르킨다./ 귓가에 와서 아스라이 속삭이고는, 스처가는 소리들. 머언 유명(幽明)에서처럼 그소리는 들려오는 것이나, 한마디도 그뜻을 알수는 없다./ 다만 느끼는건 너희들의 숨소리. 소녀여, 어디에들 안재(安在)하는지. 너희들의 호흡의 훈짐으로써 다시금 돌아오는 내 靑春을 느낄 따름인 것이다./ 소녀여 뭐라고 내게 말하였든 것인가?/ 오히려 처음과 같은 하눌 위에선 한 마리의 종다리가 가느다란 핏줄을 그리며 구름에 묻혀 흐를뿐, 오늘도 굳이 다친 내 전정(前程)의 석문앞에서 마음대로는 처리할 수 없는 내 생명의 환희를 이해할 따름인 것이다.// 섭섭이와 서운니와 푸접이와 순녜라하는 네 명(名)의 소녀의 뒤를 따라서, 오후의 산그리메가 밟히우는 보리밭 사이 언덕길 위에 나는 서서 있었다. 붉고 푸르고, 흰, 전설속의 네개의 바다와 같이 네 소녀는 네 빛갈의 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하늘 위에선 아득한 고동소리. ……순녜가 아르켜준 상제님의 고동소리. ……네 명(名)의소녀는 제마닥 한개씩의 바구니를 들고, 허리를 부구리고, 차라리 무슨 나물을 찾는 것이 아니라 절을 하고 있는것이었다. 씬나물이나 머슴둘레, 그런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머언 머언 고동소리에 귀를 기우리고 있는것이였다. 후회와 같은 표정으로 머리를 숙으리고 있는 것이였다.// 그러나 나에게는 잡히지 아니하는 것이였다. 발자취소리를 아조 숨기고 가도, 나에게는 붓잡히지 아니하는 것이었다.// 담담히도 오래가는 내음새를 풍기우며, 머슴둘레 꽃포기가 발길에 채일뿐, 쌍긋한 찔레 덤풀이 앞을 가리울뿐 나보단은 더빨리 다라나는것이였다. 나의 부르는 소리가 크면 클스록 더 멀리 더 멀리 달아나는 것이였다.// 여긴 오지 마 …… 여긴 오지 마……// 애살포오시 웃음 지우며, 수류와 같이 네 개의 수류와 같이 차라리 흘러가는것이였다.// 한줄기의 추억과 치여든 나의 두 손, 역시 하눌에는 종다리새 한 마리 - 이런것만 남기고는 조용히 흘러가며 속삭이는것이였다. 여긴 오지마……여긴 오지 마…….// 소녀여, 내가 가는 날은 도라 오련가. 내가 아조 가는 날은 도라 오련가 막달라의 마리아처럼 두눈에는 반가운 눈물로 어리여서, 머리털로 내 손끝을 스치이련가.// 소녀여, 내가 가는날은 도라 오련가. 내가 아조 가는날은 도라 오련가 막달라의 마리아처럼 두눈에는 반가운 눈물로 어리여서, 머리털로 내 손끝은 스치이련가.// 그러나 내가 가시에 찔려 아파할 때는, 네 명(名)의 소녀는 내곁에 와 서는 것이였다. 내가 찔레 가시나 새금팔에 베혀 아파 할 때는, 어머니와 같은 손가락으로 나를 나으러 오는것이였다.// 손가락 끝에 나의 어린 핏방울을 적시우며, 한명(名)의 소녀가 걱정을 하면 세명(名)의 소녀도 걱정을 하며, 그 노오란 꽃송이로 문지르고는, 허연 꽃송이로 문지르고는, 빠앍안 꽃송이로 문지르고는 하던 나의 상(傷)채기는 어쩌면 그리도 잘 낫는 것이였든가.// 정해 정해 정도령아/ 원이 왔다 문열어라./ 붉은꽃을 문지르면/ 붉은피가 도라오고./ 푸른꽃을 문지르면/ 푸른숨이 도라오고.// 소녀여. 비가 개인날은 하늘이 왜 이리도 푸른가. 어데서 쉬는 숨소리기에 이리도 똑똑히 들리이는가.// 무슨 꽃으로 문지르는 가슴이기에 나는 이리도 살고싶은가.// 몇 포기의 씨거운 멈둘레꽃이 피여있는 낭떠리지 아래 풀밭에 서서, 나는 단하나의 정령이 되야 내소녀들을 불러 이르킨다.// 그들은 역시 나를 지키고 있었든것이다. 내속에 네리는 비가 개이기만, 다시 그 언덕길우에 도라오기만, 어서 병이 낫기만을, 그옛날의 보리밭길 우에서 언제나 언제나 기대리고 있었든 것이다.// 내가 아조 가는날은 도라 오련가?//

 

꽃밭의 독백 –사소단장娑蘇斷章 / 서정주

노래가 낫기는 그 중 나아도/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오고,/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바닷가에 가 멎어 버렸다/ 활로 잡은 산돼지, 매[鷹]로 잡은 산새들에도/ 이제는 벌써 입맛을 잃었다./ 꽃아, 아침마다 개벽(開闢)하는 꽃아./ 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 물낯바닥에 얼굴이나 비취는/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는 네 닫힌 문에 기대섰을 뿐이다/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벼락과 해일(海溢)만이 길일지라도/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부활 / 서정주

내 너를 찾아왔다..... 순아!/ 너 참 내 앞에 많이 있구나./ 혼자서 종로를 걸어가면 / 사방에서 네가 웃고 오는구나./ 새벽 닭이 울때마다 보고 싶었다..../ 내 부르는 소리 들리드냐./ 순아, 이것이 몇만 시간만이냐./ 그 날 꽃상여 산 넘어서 간 다음/ 내 눈동자 속에는 빈 하늘만 남드니,/ 매 만져 볼 머릿카락 하나 없드니,/ 비만 자꾸 오고.....// 촛불밖에 부엉이 우는 돌문을 열고 가면/ 강물은 또 몇 천린지/ 한번 가선 소식 없든 그 어려운 주소에서/ 너 무슨 무지개로 내려 왔느냐.// 종로 네거리에 뿌우여니 흩어져서,/ 뭐라고 조잘대며 햇볕에 오는 애들./ 그 중에도 열 아홉 살쯤 스무살쯤 되는 애들./ 그들의 눈망울 속에, 핏대에, 가슴속에 드러 앉어/ 순아! 순아! 순아!/ 너 인제 모두 다 내 앞에 오는구나//

 

행진곡 / 서정주

잔치는 끝났더라. 마지막 앉아서 국밥들을 마시고/ 빠알간 불 사르고,/ 재를 남기고,// 포장을 걷으면 저무는 하늘./ 일어서서 주인에게 인사를 하자// 결국은 조금씩 취해가지고/ 우리 모두 다 돌아가는 사람들.// 모가지여/ 모가지여/ 모가지여/ 모가지여// 멀리 서 있는 바닷물에선/ 난타하여 떨어지는 나의 종소리.//

※ 조선일보 폐간 기념작으로 1940년에 쓴 시.

 

내 아내 / 서정주

나 바람나지 말라고/ 아내가 새벽마다 장독대에 떠 놓은/ 삼천 사발의 냉숫물.// 내 남루와 피리옆에서/ 삼천 사발의 냉수 냄새로/ 항시 숨쉬는 그 숨결 소리.// 그녀 먼저 숨을 거둬 떠날 때에는/ 그 숨결 달래서 내 피리에 담고// 내 먼저 하늘로 올라가는 날이면/ 내 숨은 그녀 빈 사발에 담을까.//

 

견우의 노래 / 서정주

우리들의 사랑을 위하여서는/ 이별이, 이별이 있어야 하네.// 높았다 낮았다 출렁이는 물살과/ 물살 몰아갔다 오는 바람만이 있어야 하네.// 오! 우리들의 그리움을 위하여서는/ 푸른 은핫물이 있어야 하네.// 돌아서는 갈 수 없는 오롯한 이 자리에/ 불타는 홀몸만이 있어야 하네.// 직녀여, 여기 번쩍이는 모래밭에/ 돋아나는 풀싹을 나는 세이고....// 허이언 허이언 구름 속에서/ 그대는 베틀에 북을 놀리게.// 눈썹 같은 반달이 중천에 걸리는/ 칠월 칠석이 돌아오기까지는,// 검은 암소를 나는 먹이고,/ 직녀여, 그대는 비단을 짜세.//

 

무등을 보며 / 서정주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내지않는다/ 저 눈부신 햇빛속에 갈매빛의 등성이를 드러내고 서있는/ 여름 산같은/ 우리들의 타고난 살결 타고난 마음씨까지야 다 가릴수 있으랴// 청산이 그 무릎아래 지난을 기르듯/ 우리는 우리 새끼들을 기를수밖엔 없다/ 목숨이 가다 가다 농을쳐 휘여드는/ 오후의때가 오거든/ 내외들이여 그대들도/ 더러는 앉고/ 더러는 차라리 그 곁에 누어라// 지어미는 지애비를 물끄럼히 우러러보고/ 지애비는 지어미의 이마라도 짚어라// 어느 가시덤풀 쑥굴헝에 뇌일지라도/ 우리는 늘 옥돌같이 호젓이 무쳤다고 생각할일이요/ 천태라도 자욱이 끼일 일인 것이다.//

 

외할머니의 뒤안 툇마루 / 서정주

외할머니네 집 뒤안에는/ 장판지 두 장만큼한/ 먹오딧빛 툇마루가 깔려 있습니다// 이 툇마루는 외할머니의 손때와/ 그네 딸들의 손때로 날이날마다/ 칠해져온 것이라 하니/ 내 어머니의 처녀때의 손때도/ 꽤나 많이는 묻어 있을 것입니다만은/ 그러나 그것은 하도나 많이 문질러서/ 인제는 이미 때가 아니라/ 한 개의 거울로 번질번질 닦이어져/ 어린 내 얼굴을 들이비칩니다// 그래, 나는 어머니한테 꾸지람을 되게 들어/ 따로 어디 갈 곳이 없이 된 날은/ 이 외할머니네 때거울 툇마루를 찾아와/ 외할머니가 장독대 옆 뽕나무에서 따다주는/ 오디 열매를 약으로 먹어 숨을 바로합니다// 외할머니의 얼굴과 내 얼굴이/ 나란히 비치어 있는 이 툇마루까지는/ 어머니도 그네 꾸지람을/ 가지고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문둥이 / 서정주

 해와 하늘빛이/ 문둥이는 서러워// 보리밭에 달 뜨면/ 애기 하나 먹고// 꽃처럼 붉은 울음을 밤새 울었다// 

 

신부 / 서정주

신부(新婦)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 다리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곤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사십년인가 오십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스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입마춤 / 서정주

가시내두 가시내두 가시내두 가시내두/ 콩밭 속으로만 작구 다라나고/ 울타리는 막우 자빠트려 노코/ 오라고 오라고 오라고만 그러면/ 사랑 사랑의 石榴꽃 낭기 낭기/ 하누바람 이랑 별이 모다 웃습네요/ 풋풋한 노루떼 언덕마다 한마릿식/ 개고리는 개고리와 머구리는 머구리와/ 구비 물은 西天으로 흘러 나려……/ 땅에 긴 긴 입마춤은 오오 몸소리친/ 쑥니풀 지근지근 니빨이 히허여케/ 즘생스런 우슴은 달드라 달드라 우름가치/ 달드라.//

 

화사(花蛇) / 서정주

사향(麝香) 박하(薄荷)의 뒤안길이다./ 아름다운 배암……/ 얼마나 커다란 슬픔으로 태어났기에,/ 저리도 징그러운 몸둥아리냐.// 꽃대님 같다.// 너의 할아버지가 이브를 꼬여내던/ 달변(達辯)의 혓바닥이/ 소리 잃은 채 낼룽거리는 붉은 아가리로/ 푸른 하늘이다.……/ 물어 뜯어라, 원통히 물어 뜯어,// 달아나거라, 저놈의 대가리!// 돌팔매를 쏘면서, 쏘면서, 사향(麝香) 방초(芳草) 길/ 저놈의 뒤를 따르는 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아내가 이브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석유 먹은 듯……/ 석유 먹은 듯…… 가쁜 숨결이야.// 바늘에 꼬여 두를까부다./ 꽃대님보다도 아름다운 빛……/ 클레오파트라의 피 먹은 양 붉게 타오르는/ 고운 입술이다…… 스며라, 배암!// 우리 순네는 스물 난 색시, 고양이같이/ 고운 입술…… 스며라! 배암.//

 

맥하(麥夏) / 서정주

黃土 담 넘어 돌개울이 타/ 있을듯 보리 누른 더위-/ 날카론 왜낫() 시렁우에 거러노코/ 오매는 몰래 어듸로 갔나// 바윗속 되야지 식 식 어리며/ 피 흘리고 간 두럭길 두럭길에/ 붉은옷 닙은 문둥이가 우러// 땅에 누어서 배암같은 게집은/ 땀흘려 땀흘려/ 어지러운 나-엎드리었다.//

 

정오의 언덕에서 / 서정주

보지마라 너 눈물어린 눈으로는----/ 소란한 哄笑正午 天心/ 다붙은 내입설의 피묻은 입마춤과/ 無限 慾望의 그윽한 이戰慄----// --- 어찌 참을것이냐!/ 슬픈이는 모다 巴蜀으로 갔어도,/ 웡웡그리는 불벌의 떼를/ 꿀과함께 나는 가슴으로 먹었노라.// 시악시야 나는 아름답구나// 내 살결은 樹皮의 검은빛/ 黃金 太陽을 머리에 달고// 沒藥 麝香薰薰한 이꽃자리/ 내 숫사슴의 춤추며 뛰여 가자// 우슴웃는 짐생, 짐생속으로//

 

 


황혼길 / 서정주


새우마냥 허리 오구리고/ 누엿누엿 저무는 황혼을/ 언덕 넘어 딸네 집에 가듯이/ 나도 인제는 잠이나 들까// 구비 구비 등 굽은/ 근심의 언덕 넘어/ 골골이 뻗히는 시름의 잔주름뿐/ 저승에 갈 노자도 내겐 없느니// 소태같이 쓴 가문 날들을/ 역구 풀 밑 대어 오던/ 내 사랑의 보 또랑물/ 인제는 제대로 흘러라 내버려두고// 으시시히 깔리는 머언 산 그리매/ 홑이불처럼 말아서 덮고/ 엣비슥히 비기어 누워/ 나도 인제는 잠이나 들까//

 

대낮 / 서정주

따서 먹으면 자는 듯이 죽는다는/ 붉은 꽃밭새이 길이 있어/ 핫슈 먹은 듯 취해 나자빠진/ 능구렝이 같은 등어릿길로,/ 님은 다라나며 나를 부르고……/ 한 향기로 흐르는 코피/ 두 손에 받으며 나는 쫓느니/ 밤처럼 고요한 끌른 대낮에/ 우리 둘이는 웬몸이 달어……//

 

꽃 만나고 가는 바람처럼 / 서정주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철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영산홍 / 서정주

영산홍 꽃잎에는/ 이 어리고// 자락에 낮잠 든/ 슬푼 소실댁(小室宅)// 소실댁 툇마루에/ 놓인 놋요강// 넘어 바다는/ 보름 살이 때/ 소금 발이 쓰려서/ 우는 갈매기//

 

도화도화(桃花桃花) / 서정주

푸른 나무 그늘의 네 갈림길 위에서/ 내가 불그스름한 얼굴을 하고/ 앞을 볼 때는, 앞을 볼 때는,// 내 나체의 엘레미아/ 비로봉상의 강간사건들.// 미친 하늘에서는/ 미친 오필리아의 노래 소리 들리고,/ 원수여, 너를 찾아가는 길의/ 쬐끄만 이 휴식.// 나의 미열을 가리우는 구름이 있어/ 새파라니 새파라니 흘러가다가/ 해와 함께 저물어서 네 집에 들르리라.//

 

 

          귀촉도(歸蜀途) / 서정주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 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 리./ 흰 옷깃 여며 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진 못하는 파촉(巴蜀) 삼만 리.// 

신이나 삼아 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육날 메투리./ 은장도 푸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엮어 드릴 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굽이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제 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호올로 가신 님아.//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1915.5.18 ~ 2000.12.24.)

 

본관은 달성(達城), 호는 미당(未堂)이다. 1915518일 전라북도 고창(高敞)에서 태어났다. 고향의 서당에서 공부한 후, 서울 중앙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36년 중앙불교전문학교를 중퇴하였다.

 

 

1936동아일보신춘문예에 시 으로 등단하여 같은 해 김광균(金光均김달진(金達鎭김동인(金東仁) 등과 동인지 시인부락(詩人部落)을 창간하고 주간을 지냈다. 1941화사(花蛇)〉〈자화상(自畵像)〉〈문둥이24편의 시를 묶어 첫시집 화사집을 출간했다.

 

 

그러나 19427매일신보에 다츠시로 시즈오[達城靜雄]라는 이름으로 평론 시의 이야기-주로 국민 시가에 대하여를 발표하면서 친일 작품을 쓰기 시작하였다. 이후 1944년까지 친일 문학지인 국민문학국민시가의 편집에 관여하면서 수필 징병 적령기의 아들을 둔 조선의 어머니에게(1943), 인보(隣保)의 정신(1943), 스무 살 된 벗에게(1943)와 일본어로 쓴 시 항공일에(1943), 단편소설 최제부의 군속 지망(1943), 헌시(獻詩)(1943), 오장 마쓰이 송가(1944) 따위의 친일 작품들을 발표했다.

 

1948년에는 시집 귀촉도, 1955년에는 서정주 시선을 출간해 자기 성찰과 달관의 세계를 동양적이고 민족적인 정조로 노래하였고, 이후 불교 사상에 입각해 인간 구원을 시도한 신라초(1961), 동천(1969), 토속적·주술적이며 원시적 샤머니즘을 노래한 질마재 신화(1975)떠돌이의 시(1976) 외에 노래(1984), 팔할이 바람(1988), 산시(山詩)(1991), 늙은 떠돌이의 시(1993) 등을 출간하였다.

 

1948동아일보사회부장·문화부장, 문교부 예술국장을 거쳐 1954년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 되었다. 이후 조선대학교·서라벌예술대학교 교수, 동국대학교 문리대학 교수(1959~1979)를 지낸 뒤 동국대학교 대학원 종신 명예교수가 되었다. 1971년 현대시인협회 회장, 1972년 불교문학가협회 회장, 1977년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1984년 범세계 한국예술인회의 이사장, 1986문학정신발행인 겸 편집인을 지냈고, 20001224일 사망하였다.

 

저작에는 한국의 현대시》《시문학원론》《세계민화집(5) 등이 있으며, 시집에는 위의 시집 외에 흑산호(1953), 국화 옆에서(1975), 미당 서정주 시전집(1991) 등이 있다. 대한민국문학상·대한민국예술원상, 5·16 민족상, 자유문학상 등을 받았고,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20022'민족정기를 세우는 국회의원 모임'이 자체 조사하여 발표한 '일제하 친일 반민족행위자 1차 명단(708)'에 포함되었다.

※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서정주 [徐廷柱] (두산백과)

 

 

 

[다시 본다, 고전] 시는 잘못이 없다… 서정주를 미워하면서 읽자

 

[다시 본다, 고전] 시는 잘못이 없다… 서정주를 미워하면서 읽자

※ 어쩐지 펼쳐 보기 두려운 고전을 다시 조근조근 얘기해 봅니다. 작가들이 인정하는 산문가, 박연준 시인이 격주 금요일 한국일보에 글을 씁니다18서정주, 화사집(花蛇集)미당 서정주 생전 모

ww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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