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시詩 느낌

손세실리아 시인

부흐고비 2021. 2. 5. 13:43

곰국 끓이던 날 / 손세실리아

 

노모의 칠순잔치 부조 고맙다며

후배가 사골 세트를 사왔다

도막난 뼈에서 기름 발라내고

하루 반나절을 내리 고았으나

틉틉한 국물이 우러나지 않아

단골 정육점에 물어보니

물어보나마나 암소란다

새끼 몇 배 낳아 젖 빨리다보니

몸피는 밭아 야위고 육질은 질겨져

고기 값이 황소 절반밖에 안되고

뼈도 구멍이 숭숭 뚫려 우러날 게 없단다

 

그랬구나

평생 장승처럼 눕지도 않고 피붙이 지켜온 어머니

저렇듯 온전했던 한 생을

나 식빵 속처럼 파먹고 살아온 거였구나

그 불면의 충혈된 동공까지도 나 쪼아먹고 살았구나

뼛속까지 갉아먹고도 모자라

한 방울 수액까지 짜내 목축이며 살아왔구나

희멀건 국물,

엄마의 뿌연 눈물이었구나

 

해 설

@절절하다. 자식으로 세상에 자식 낳고 뿌리 내리기까지 어머니를 먹고 살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어머니는 쭈글어진 껍데기만 남았다. 이번 주말에는 어머니를 위해 소고기 한 근이라도 사들고 찾아야겠다. /하재영 시인(경북매일신문)

 

@바람이 강거죽을 건드려서 파도를 만들었다. 파도가 또 파도를 만든다. 다만 바다는 사유를 묻지 않았다/ 쇠잔한 강바닥을 새들이 부리로 쪼고 있다. 나도 한 때는 어느 가슴을 파먹은 적이 있다. 오월은 모두의 가슴팍에 상처를 확인하는 달이다. /주강홍 진주예총회장(경남일보)

 

@이 시를 읽기 전까지는 암소가 육질이 부드럽고 맛이 좋아서 더 비싼 줄만 알았다. 암소의 사골에서는 뽀얀 국물이 우러나오지 않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 이유를 생각하지도 못한 곳에서 찾게 되다니. 암소 사골 국물이 나오지 않는 이유가 뼈에서 우러날 게 없어서 였구나. 뼈에 갈 좋은 것들은 이미 새끼들에게 뱃 속에 있을 때 다 주었던 것을, 그것도 새끼 몇 배를 낳아 젖 빨리다보니 몸에 좋은 영양가까지도 고스란히 새끼들에게 주고 자신은 가져 갈 것이 없으니 몸피는 야위고 질겨진 것을… 왜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까. 암소 고기 값이 황소 절반 밖에 안 되는 것도 이제야 처음 알게 되면서 슬퍼지려 하네. 암소가 어미였던 것을 잊고 살았구나.

평생 장승처럼 서서 일만 하시던 어머니, 눕지도 않고 피붙이를 지키시려 선 채로 버티다 보니 뼛골에 구멍이 숭숭 뚫렸나 보다. 자식들은 어머니의 속을 파먹고 그것도 모자라 불면의 충혈된 동공까지 쪼아 먹으며 한 방울의 수액까지 짜내는 것을 서슴치 않았네. 일 푼의 죄의식 없이 어머니를 분해해서 섭취했었네. 너무나 당연하게 그러했었네.

사골을 끓이면서 알게 되는 어머니의 살아생전 야윈 뼈가 지금의 내 튼튼한 뼈를 만들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구나. 마지막까지 뼈를 우려 먹히는 암소의 생애에 두 손이 모아지네. 어머니가 물려주신 선한 희생을 나 역시도 그래야 되리. 오롯이 자식들에게 내 뼈도 바쳐야 하리. 어머니가 가르쳐 준 가족을 지키는 내력이기에… /박모니카 수필가(경상매일신문)

 

 

기차를 놓치다 / 손세실리아

 

골판지 깔고 입주한지 얼마 안 되는/ 말수 없고 어깨 심히 휜 사내를 향해/ 눈곱이 다층으로 따개비를 이룬/ 맛이 살짝 간/ 나 어린 계집의 수작이 한창 물올랐다/ 농익은 구애가 사내의 귓불에 가닿자/ 속없는 물건은 불끈 일어서고// 새벽, 영등포역// 지하도에 내몰린 딱한 사내와/ 쫓겨난 비렁뱅이 계집이 눈 맞았는데/ 기어들어 녹슨 나사 조였다 풀/ 지상의 쪽방 한칸 없구나/ 달뜨고 애태우다/ 제풀에 지쳐 잠든 사내 품에/ 갈라지고 엉킨 염색모 파묻은/ 계집도 따라 잠이 들고// 살 한 점 섞지 않고도/ 이불이 되어 포개지는/ 완벽한 체위를 훔쳐보다가/ 첫 기차를 놓치고 말았다// 고단한 이마를 짚고 일어서는/ 희붐한 빛,/ 저 철없는 아침//

 

 

 

시를 버리다 / 손세실리아

 

한때 시라고 깝죽댔으나/ 결코 시가 될 수 없는 것들을 버린다/ 저잣거리에 나가 인 척 행세했으나/ 얼마 못 가 들통나버린/ 쭉정이들을 거둔다/ 고쳐도 못 쓰는 세간과/ 수 년 씩 묵은 옷가지들로/ 햇살 한 줄금 비집고 들어설/ 틈조차 없어진/ 어머니의 퀴퀴한 방을 나서면서/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한다/ 돈도 써본 놈이 잘 쓰고/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는데/ 내 경우엔 아무래도/ 버리기 위해 시를 쓰는 사람 같다/ 어쩌면 그 반대일지도//

 

 

늙은 호박 / 손세실리아

 

나이 들면 아무 짝에도 쓸모 없다고/ 벽에 똥칠하기 전에 가야한다고/ 말끝 흐리시는 친정어머니/ 열세 평 영구 임대아파트/ 칠 갈라터진 옥색 문갑 위에/ 경비실 황영감이 따다 준/ 늙은 호박 한 덩이/ 펑퍼짐히 앉아있다/ 순금 같은 풍채 놀랍도록 당당하다// , 눈치도 없으시다//

 

 

명함 / 손세실리아

 

묵은 명함을 수북이 늘어놓고 정리하던 제주도 '' 출판사 박경훈 대표가 마침 민예총 소식지 교정 보러 나온 김수열 시인에게 뜬금없이 내 안부를 묻더란다 시 쓰는 놈치고 제대로 된 명함 가지고 다니는 걸 아직 한 번도 못 봤다고, 남의 명함 얻어서 뒷면에 연락처 휘갈겨 쓰는 인간들은 십중팔구 시인이더라고, 그 말 끝에 안부를 묻는 걸로 미루어 모르긴 몰라도 누군가의 명함 뒷면에 민폐를 끼친 사람 중에 너도 포함된 모양이더라고 전언하신다 그러고 보니 여태껏 번듯한 명함 한 장 가져본 기억이 없다 깎이고 접힌 곳까지 평평히 펴놓고 사방팔방 둘러봐도 가로 9센티 세로 5센티로 된 직시각 방 한 칸 단장하고 채워넣을 속세의 세간 전무하다 날은 차디찬데 마른 장작에 불붙여 조개탄 올려놓을 무쇠화로 하나 없이 마흔을 맞다니//

 

 

좆 같은 세상 / 손세실리아

 

연변작가 초청 행사를 마치고 우르르 몰려간 남북횟집, 소설 쓰는 리선희 주석이 본국에서 가져온 술을 꺼내 따르더니 답례주라며 한 입에 털어넣으란다 혀 끝에 닿기만 해도 홧홧한 65도의 술을 요령 부리지 않고 받아 마신 우리측 작가 몇은 이차도 가기 전에 두 손 두 발 다 들고 투항했는데 환갑이 낼모레인 이 아무개 시인도 예외는 아니었던지 취기에 휘청이며 딱히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중얼거린다 "사는 게, 사는 게 말이지요. , 좆같습니다" 고단하다 팍팍하다도 아닌 좆같이란다 하고 많은 것 중에 하필 좆같단다 쓸쓸하기 그지없다// 이튿날 대관령을 넘어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마침 밥때가 되어 꿩만두 요리로 소문난 문막식당에 가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데 통유리 너머 마당에서 수놈 시추 한 마리가 발정난 거시기를 덜렁거리며 암놈 시추 꽁무니를 하냥 뒤쫓고 있다 간절하고 숨찬 열정이다 뒤집어 생각하니 좆이란 게 죽었나 싶으면 어느새 무쇠 가래나 성실한 보습으로 불쑥 되살아나 씨감자 파종하기 좋게 텃밭 일궈놓은 짱짱한 연장이지 않던가 세상살이가 좆같기만 하다면야 더 바랄 게 무에 있겠는가 그 존재만으로도 벌써 엄청난 위안이며 희망이지 않은가// 연인의 자궁 속을 힘껏 헤엄쳐 다니다 진이 빠져 땅바닥에 퍼져버린 수놈의 축 늘어진 잔등을 암놈이 유순히 핥아주고 있다 하, 엄숙하고도 황홀한 광경이다//

 

 


 

 

손세실리아: 19632월 전북 정읍에서 태어났으며

2001'사람의 문학'을 통해 등단하였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시분과 간사를 맡아 크고 작은 일을 하면서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치고 있다.

시집으로 <기차를 놓치다>, <꿈결에 시를 베다>

산문집 <그대라는 문장>이 있다.

현재 제주도에서 카페, 갤러리, 서점 시인의 집을 운영하고 있다.

 

{네이버 블로그} 시인의 집(손세실리아)

 

'시詩 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현승 시인  (0) 2021.02.06
오만환 시인  (0) 2021.02.05
윤제림 시인  (0) 2021.02.05
서정주 시인  (0) 2021.02.05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 칼릴 지브란  (0) 2021.01.26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