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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감자 / 변종호

부흐고비 2021. 2. 22. 09:07

내 유년의 기억은 감자로 시작된다. 허기진 배를 채워주던 감자는 늘 가까이 있었다. 궁핍했던 60년대 저녁은 찐 감자 몇 개와 한 사발의 오이 냉국이면 만족했다. 냉국이 없어도 걱정할 일은 없다. 젓가락에 푹 꿰어진 감자에 고추장을 발라 먹으면 매콤하고 짭조름한 맛에 입맛이 동했다.

어느 것과도 잘 어울리는 감자는 식감이 단단한 강냉이밥을 부드럽게 할 때는 밥 위에 올라앉았고, 고추장을 뒤집어쓰고 냄비 안에서 불 고문도 당했다. 옴팍한 대접에는 간장으로 바짝 졸인 쪼글쪼글한 새끼 감자조림은 짭조름하면서도 쫄깃했다. 강판에 갈아 지진 감자 부침개는 별미다. 그러나 최강의 감자 요리는 감자를 썩혀 얻은 전분으로 만든 감자떡이다.

하굣길, 배고픈 아이들을 감자밭이 유혹했다. 줄기가 무성한 감자포기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살살 후비면 여물지 않은 밤톨만 한 뽀얀 감자가 얼굴을 내민다. 많이도 필요 없다. 서너 개의 감자만 따면 강가로 달려갔다. 물에 담그고 손바닥으로 살살 문지르면 얇은 껍질은 홀라당 벗겨졌다. 하얀 감자를 입에 넣고 씹으면 약간 아리지만 허기를 면하기에 충분했다.

내 고향 영월은 감자를 캘 무렵이면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뜨거운 땅김이 훅훅 온몸을 휘감는 여름날, 그곳에 엎드려 적어야 서너 가마, 많은 집은 몇십 가마를 캐야 했다. 그 많은 양을 호미로 일일이 캐고 지게로 날라야 했으니 그 삶은 지난하기만 했다.

일하기 싫은 일꾼의 몽니는 감자가 옴팡 뒤집어써야 했다. 호미에 찍혀 나오는 감자가 늘어났다. 상처 입은 감자는 보관할 수가 없다. 그런 것들을 활용한 게 감자를 썩혀 전분을 얻는 일이다. 감자수확이 끝날 때쯤이면 집 앞 도랑가에는 하나같이 주둥이를 철사로 칭칭 동여맨 배불뚝이 큰독이 자리를 잡는다. 그 독은 흙을 털어낸 호미에 찍힌 재수 없는 녀석, 굼벵이가 파먹은 놈, 메추리알만 한 작은 감자들을 모두 품어 안고 썩혀야 했다. 그러자니 자연스레 감자가 썩는 고약한 냄새는 온 동네에 진동했다.

감자 전분을 얻는 일은 지독한 고행苦行이다. 푹 썩은 감자를 빨래하듯 주무르며 껍질을 걸러내야 한다. 당연히 맨손이다. 이렇게 걸러진 앙금은 수없이 물을 갈아 주면서 우려낸다. 그때쯤이면 자글자글 주름진 엄마의 손에서는 지독한 구린내가 났다. 나는 엄마의 그 손이 싫었다. 철없던 아들은 냄새가 난다고 옆에 오지도 못하게 밀쳐냈으니 얼마나 난감했을까.

얼마 전, 아내의 심부름으로 감자가 담긴 묵직한 종이 가방을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서서히 접착 부분이 조금씩 벌어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밑이 빠지면서 내용물이 모두 쏟아졌다. 출근 시간이라 더 황당했다. 동행한 사람들이 코를 막고 시선을 돌린다. 악취가 코를 찌른다. 상처 난 몇 개의 감자가 썩으면서 종이가방 전체를 적신 게 화근이다.

경황없이 성하다 싶은 종이가방 쪽으로 감자를 쓸어 담았다. 썩은 감자가 흘린 물은 손수건으로 처리했지만, 엘리베이터에 퍼진 냄새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동행한 이들에게 연신 고개를 숙였지만 정작 문제는 내 손이다. 몇 번이나 비누로 씻어도 냄새는 그대로다. 그것은 유년시절 내가 그리도 싫어하던 엄마의 손에서 나던 냄새였다. 몇 개의 썩은 감자로도 이렇게 지독한 냄새가 나는데 큰독에 가득했던 썩힌 감자를 걸러낸 손이야 오죽했으랴.

고구마는 달고 차지나 체하고 조금만 썩어도 써서 먹을 수 없다. 그러나 감자는 달지 않지만 은근하고 구수한 맛을 지니며 탈이 없다. 숙성이 아닌 제 몸이 썩으면서도 독을 만들지 않고 온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감자가 유일하다.

흠집 나고 벌레 먹은 것조차 종잇장 같은 껍질만 남긴 채 썩혀서 남겨준 전분은 마지막까지 인간에게 희생하는 감자의 영혼이다. 생감자로 얻은 전분보다는 세월을 깔고 고행을 통해 썩혀서 얻은 전분의 까무잡잡한 감자떡이 더 쫀득거리고 맛있는 건 당연하다. 가치가 높은 것 일수록 쉽게 얻지 못하는 게 세상 이치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감자바우라 한다. 고향이 강원도라 늘 들어온 별명이다. 듣기 싫지도 않다. 누가 뭐라 든 이래도 흥, 저래도 흥 하지만, 속이 없는 건 아니다. 분별하되 분별하지 말라는 무심無心의 경지도 아니다. 그저 감자가 완전히 썩어 독이 없는 전분을 내주듯 그렇게 흉내라도 내며 살고 싶을 뿐이다.

까만 감자떡을 보면 아직도 내 엄마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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