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수필 읽기

쥐와 마우스 / 양일섶

부흐고비 2021. 2. 21. 08:39

쥐를 영어로 마우스(mouse)라 한다. 쥐와 마우스는 같은 말이지만 느낌은 다르다. '쥐'라는 말은 보기가 흉하고 징그러운 모습을 연상시켜 미간이 찌푸려진다. '마우스'는 깜찍하고 예쁜 모습이 생각나 저절로 미소를 머금는다. 주택이나 골목에서 쥐가 튀어나오면 '마우스가 나타났다'고 말하지 않는다. 컴퓨터 작업 중에 마우스를 움직이면서 '쥐를 만진다'고 하지 않는다. 분명 같은 말인데 왜 그럴까.​

중학교 시절. 우리는 일본식 슬레이트집에서 살았다. 얇은 합판으로 된 천장에는 몇 개의 못만 듬성듬성 박혀있었다. 밤마다 합판 위에서는 쥐들의 운동회가 두세 번씩 열렸다. 경쟁적으로 달리는 소리, 서로 싸우는 소리, 뭔가를 갉아먹는 소리로 천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가족들은 으레 그러려니 생각하면서 잠을 청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천장과 벽 사이에 틈이 생겼고, 그 틈은 점점 커졌다. 하루는 내가 곤히 자고 있을 때, 얼굴 위에 뭔가 '퍽'하면서 떨어졌다. 나는 '으악!'하는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고함소리에 더 놀란 주먹만한 쥐가 후다닥 도망을 가고 있었다. 옆방의 형은 급하게 미닫이문을 열었다. 귀신에 홀린듯한 나의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문을 닫았다. 나는 다시 누워 바로 잠이 들었다.​

얼마 전 TV 뉴스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60년대 말, 우리나라에 서식하고 있는 쥐가 8,000만 마리 이상 되었다고 추정하는 보도였다. 그 당시 '쥐약 놓는 날'이 있었다. 전국적으로 '다 같이 쥐를 잡자'는 표어와 포스터가 학교와 마을에 붙었다. 동네마다 앰프방송, 가두방송으로 시끄러웠다. 담임선생님은 잡은 쥐의 꼬리를 잘라서 꼭 학교로 가져와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쥐를 못 잡거나, 무서워하는 학생들은 오징어 다리를 연탄불에 새까맣게 태워서 가져 오기도 했다. 그것이 탄로 나면 복도에서 무릎을 꿇은 채, 손을 들고 몇 시간을 있었다.

그렇게 혐오스러운 쥐가 어느 날 갑자기 안방에 나타났다. '톰과 제리'라는 애니메이션에서 영리하고 귀여운 쥐(Jerry Mouse)가 등장한 것이다. 고양이 '톰'은 백인 중산층, 기업가, 등의 사회적 강자를, 쥐는 유색인종, 노동자와 같은 약자를 상징했다. '톰'은 '제리'를 괴롭힐 생각과 행동을 하지만, 역으로 괴롭힘을 당한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비록 몸은 작고, 보잘 것 없는 제리가 톰에게 이기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좋아했다. 그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제리를 '생쥐'라고 불렀지, '마우스'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마우스'를 '쥐'라고 부르면 안 되는 계기가 발생했다. '미키마우스'가 나타난 것이다. 월트디즈니사의 마스코트인 동시에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캐릭터가 우리나라에 상륙했다. 미키마우스도 데뷔 당시에는 쥐처럼 성격이 급하고 폭력적이었다. 영화를 본 아이들의 부모로부터 항의를 받은 뒤 현재의 온순하고 착한 성격으로 바뀌었다. 아이들은 '미키마우스'란 단어를 들으면, '놀이동산, 같이 놀고 싶다, 사진을 찍고 싶다.'와 같은 긍정적이면서 즐거운 생각을 한다. '미키마우스'를 '쥐'라고 말하면 무식한 인간으로 취급받는다.​

'마우스'와 '쥐'의 의미를 완전히 분리시키는 절대강자가 나타났다. 컴퓨터의 부속품인 마우스다. 마우스는 키보드와 함께 컴퓨터의 중요한 입력장치이다. 손으로 늘 만지고 쓰다듬어야 하는 생활필수품이다. 둥글고 작은 몸체에 긴 케이블이 달려 있는 모습이 마치 쥐와 닮았다고 해서 마우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마우스는 사람의 마음을 컴퓨터에 전달하는 놈이다. 그놈의 왼쪽 부분을 한 번 누르면 사용자의 마음을 결정하는 것이고, 두 번 두들기면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또 오른쪽을 두드리면 그 놈이 할 수 있는 메뉴를 보여준다. 사람들이 컴퓨터를 쉽게, 인터넷을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것도 다 그놈 덕분이다. 손가락으로 그놈의 머리만 두들기면 전 세계에 널려있는 하이퍼텍스트와 하이퍼미디어 문서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그 훌륭한 업적 때문에 사람들은 '마우스'를 감히 '쥐새끼'라고 부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12월 9일은 마우스의 생일이다. 올해(2016년) 나이가 48세이다. 미국에는 '쥐 잡는 날'은 없지만 '마우스데이'라는 기념일을 만들어 간단하게 행사를 한다. 이제 우리 곁에 마우스가 없다면 얼마나 불편하겠는가를 상상해 보자.​

'미키마우스'나 '컴퓨터 마우스'에서 '마우스'는 사랑스럽고 편리하다는 뜻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마우스'라는 단어를 고유명사처럼 생각하면서 '쥐'라는 단어와 구별하기 시작한 것 같다. 두 단어는 분위기와 어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진다. 적절하게 선택하여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

쥐가 변화하고 있다. '햄스터'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쥐들이 몇몇 가정에서 애완용으로 사육되고 있다. 의학계가 많은 돈을 투자해 쥐를 실험용으로 사용하는 동안 쥐는 인간의 행복한 삶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초개처럼 던진다. 마우스도 그렇다. 도마뱀처럼 꼬리를 자르는 아픔을 겪으면서 무선으로, 광학으로 변신했다. 더 변해야 된다. 많은 전자기기의 운영체제(OS)가 지문인식을 넘어, 화상인식, 터치스크린과 같은 방법으로 변하고 있다. 빛보다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디지털세상이다.​

쥐는 우리 가족과 10년 넘게 동거하면서 내가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마우스는 내가 학생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치면서 10여 년 동안 밥벌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어쨌든 고마운 일이지만, 앞으로 그놈들의 빠른 변화를 따라 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수필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육체의 정직함 / 지설완  (0) 2021.02.21
요리하는 중년 / 양일섶  (0) 2021.02.21
소멸에 관하여 / 권민정  (0) 2021.02.21
벌집 이야기 / 류인혜  (0) 2021.02.19
비 설거지 / 류인혜  (0) 2021.02.19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