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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드는 게 쉽지 않다. 아침 일찍 선산으로 출발하려면 잠을 좀 자두어야 하는데 갈수록 정신이 또렷해진다. 방금 읽다 덮어놓은 책 속에서 글자들이 나와 천정에서 오락가락한다.

1896년에 태어난 김명순에서 1915년생인 임옥인 까지, 11人의 작가 단편 모음인 『페미니즘 정전 읽기 Ⅰ』 , 『Ⅱ』. 작가들의 교육수준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돌아가신 내 어머니보다 많게는 23년 적게는 4년 전에 태어난 그들은 그 시대의 지식인이었지만 아쉽게도 작품의 내용은 시대에 갇혀있었다. 페미니즘이란 용어 자체가 11人의 작가들에 대한 지칭이 아니었나 싶다. 인간적인 삶, 특히 여성에게 인간적인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를 새삼 생각해본다. 강경애의 「지하촌」이 마음을 뒤흔들었다. 살아내려는 몸부림을 처참하게 그려냈다.

내가 자라난 고향 동네가 문득 떠올랐다.

우리 집 뒤에는 뒷동네라는 곳이 있었는데 그쪽으로는 잘 가지 않았다. 기운부터가 음침했다. 붉은 흙길에 반쯤 묻히듯 기대어 있는 초가지붕들은 잿빛에 가까웠다. 연이어 누워있는 상엿집, 밭의 무덤, 녹슬고 너덜너덜한 벌건 함석쪼가리 원두막, 뱀이 나올 것 같은 우북한 잡초들, 강아지만 한 시궁쥐 등등. 죽은 쉬파리가 둥둥 떠 있는 시궁창 쉰내가 흐린 날이면 우리 집에까지 건너왔다. 큰오빠와 작은 오빠는 무섭지도 않은지 그 길을 가로질러서 전기회사 옆 방죽으로 물놀이를 다녔다. 심부름으로 오빠들을 데리러 갈 때면 나는 지름길인 그 뒷길을 피해 반대편 신작로로 돌아서 갔다. 두 배나 먼 길을 숨도 쉬지 않고 마구 달렸다. 「지하촌」 칠성이네 방바닥 갈자리에서 풀썩대던 싸한 먼지 같은 게 어린 내 마음에까지 날아와 앉는 듯했다.

굴속 같은 상엿집 볏짚 너머에서는 가끔 희미한 불빛이 보인다고도 했다. 대문도 없는 쪽마루에 등을 구부리고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핏발 선 눈을 희번덕이는 나이를 알 수 없는 남자. 그 또한 으스스했다. 뒷동네에서는 툭하면 싸움판이 벌어졌다. 늘 무서웠다.

중학교 삼 학년 어느 봄날, 길에서 큰언니 친구와 마주쳤다. 그 언니는 나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하필 그 뒷동네였다. 어렸을 때 우리 큰언니와 고무줄놀이하던 얘기며 자기 신랑이 돈 많이 번다는 자랑이며 들뜬 얼굴로 이야기를 그칠 줄 몰랐다. 좁은 마당 한쪽 큰 양철통에서는 알 수 없는 것이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양잿물이라 했다. 거품이 무섭게 툭 툭 터졌다. 섬돌에 나를 세워 놓고 아기를 업은 채 마당 귀퉁이에 서서 긴 막대기로 옷가지를 양철통에 찔러 넣고는 가끔 뒤집곤 했다. 갑자기 한 남자가 대문을 부서지라 밀쳐 열었다. 남편인 듯했는데 문 앞에 서서 들어오지도 않고 째진 눈으로 어찌나 나를 노려보던지 나도 모르게 쪽문으로 도망치다시피 나와 버렸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 사람은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를 쓰지 못한다고. 대문 여는 소리가 요란했던 까닭이었다.

자줏빛 얼룩이 얼굴의 반을 차지해서 ‘점순이’였던 그 언니는 언제나 하회탈 같았다. 무슨 병인지, 산송장처럼 누워만 있는 부모 대신 여러 동생을 돌보았다. 언니보다 나이가 꽤 많은 홀아비한테 시집갔는데 사람 좋다던 남편은 술에 절어 살았다. 양잿물에 심하게 덴 다리 때문에 합병증이 생겨 그녀가 목숨을 잃었다는 소리를 뒤늦게야 전해 들었다. 윗동네 품 빨래란 품 빨래 죄다 거두어서 종일토록 양잿물에 빨아대느라 입에서 단내가 나던 사람. 등에 업혀있던 아기는 어찌 되었을지. 엄마가 팔을 뻗어 빨래를 뒤적이느라 몸을 숙일 때면 같이 쏠려 금시라도 포대기에서 빠질 듯 위태위태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동생들은 그래도 잘 자랐던가. 언제부터인지 말쑥한 차림새로 동네 길을 오가며 사람들 행색을 흘끔거렸다.

그녀…, 그리고 시절의 고통을 함께했던 수많은 그녀들.

밤을 꼬박 새웠다. 쌓인 눈 위로 하늘이 손에 닿을 듯하다.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눈송이라고 부르기에는 힘없는 연한 것들이 차창에 닿자마자 흘러내린다. 흐린 날씨였다가도 산소 가는 길에는 늘 환해지곤 했는데 오늘은 내리 궂을 모양이다. 어쩌랴, 이런 날도 있어야 심심치 않지. 어머니에게 가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마음은 벌써 개어있지 않은가.

어머니는 전북 고창군 면소재지에서 태어났다. 광주광역시에 있는 소학교에 입학했는데 마침 어머니의 큰언니가 결혼해 광주에서 살고 있기에 큰언니 집에서 통학하게 되었다. 큰 형부가 종종 차비도 줬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그때도 군것질을 좋아했다고 한다. 어느 날 알록달록한 왕사탕이 먹고 싶어서 앞뒤 생각 없이 차비로 왕사탕을 사 먹어버렸다고. 그리고는 먼 길을 걸어 캄캄해져서야 집에 들어갔으니 큰언니 부부가 얼마나 애간장 태웠겠는가. 눈물이 쏙 빠지도록 꾸중을 들었고, 어머니는 저녁도 거른 채 방에서 불도 켜지 않고 쪼그리고 울다 잠들었다는 이야기.

옛이야기 하실 때 어머니는 꿈꾸는듯했다. 중매로 고창군에서 김제까지 멀리 시집와 부엌에서 밭으로 새벽에서 밤으로 고단한 세월을 이어갔다. 아버지 먼저 가시고 달력을 하나하나 넘기며 얼마나 아버지를 그리셨을까. 부모님과의 봄볕 같던 추억의 어린 문들 닫아 건 채 지금껏 살아왔다. 여름밤이면 평상 위에 딸들과 누워 깜박깜박 졸면서도 알토 소프라노… 함께 동요를 부르며 아이처럼 별을 세던 어머니, 모기장 너머 방 안에서 조용히 귀 기울이던 아버지.

가끔 어머니를 생각하다 보면 점순이 언니가 떠오른다.

『페미니즘 정전 읽기 Ⅰ』, 『Ⅱ』와 어머니 세대가 살아온 아픔에 대해 생각하면 쓸쓸했을 그 시절의 어머니들 모습이 밝아오는 차창에서 입김처럼 나타났다가 스르르 사라진다. 강경애의 지하촌은 아직도 계속된다.

오늘은 산소 앞에 왕사탕을 놓아드려야겠다. 고향이 가까워져 올수록 하늘이 푸르스름하게 개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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