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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도 옆 귀퉁이에는 작은 섬이 하나 있다. 한 무더기의 똥처럼 자리잡은 섬, 바로 똥섬이다. 원래 이름은 덕섬이다. 나는 똥섬이라는 이름이 아주 앙증맞고 마음에 든다.

똥은 하찮은 것, 더럽고 추한 것이라는 생각에 앞서 똘망똘망한 내 조카가 엄마 젖을 맛있게 먹고 눈 똥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것은 구린 냄새가 나지 않고 모양도 흐트러지지 않아 치우기도 쉽고 색깔이 노오랗다.

이 섬은 이름과는 달리 아주 예쁘다. 나무로 된 계단을 올라가면 자그마한 오솔길이 바다로 이어져 있다. 그 길에는 산국들이 병아리처럼 삐약거리고 있다.

갯내음을 머금은 채 풍기는 국화 향기에 나도 모르게 코를 킁킁댄다. 갯바위에 서서 서녘하늘을 물들이는 해를 덤으로 한 덩이 가슴에 품으면 내 몸도 붉어진다.

섬에는 갯바위에 붙은 따개비처럼 카페가 하나 있다. 난 카페를 들어가지 않는다. 그곳은 불편하고 답답하다. 막혀 있는 유리창 때문인지 모르겠다.

내 귀를 씻어 주는 소리들이 들리지 않는다. 소리란 때로 귀를 즐겁게 하여 마음의 찌든 때를 씻어 주는 카타르시스 역할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섬에 물이 들고날 때 배설의 욕구가 치솟는다. 끝없이 넓은 갯벌은 마치 뱃속의 찌꺼기들을 한꺼번에 밀어내 놓은 내장의 텅 빈 속 같다.

여름날 노란 빛깔과 달콤한 향기에 이끌려 속이 곯은 참외를 먹었던 적이 있었다. 이윽고 뱃속이 뒤틀리고 가스로 배가 부풀어오를 때 한바탕 찌꺼기들을 쏟았다. 뱃속에서 받아들이지 못한 것들은 계속 배를 아프게 한다. 그것들을 모조리 뱉어내고서야 뱃속은 편안해진다.

내 안의 복잡한 일상들은 소화불량으로 체하게 한다. 생머리가 아프고 마음과 몸을 지치게 한다. 모든 것에서 의욕을 잃어버린다. 글을 쓰려고 하는데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에도 마치 변비에 걸린 사람처럼 몸이 무겁다.

이럴 때 난 섬의 소리들을 그리워한다. 바람이 부는 날 떡갈나무잎들은 온몸으로 운다. 찬바람이 몸 안의 찌꺼기들을 말끔히 쓸어낸 후 심장을 타고 돌면 나는 발끝까지 싸해진다.

또 하나의 소리는 멀리서 물이 밀려올 때마다 들리는 파도 소리이다. 파도 소리는 떡갈나무 소리와 협연을 한다. 바람결에 몸을 맡기는 떡갈나무는 소리의 높낮이나 빠르기, 장단 등이 흉내낼 수 없을 만큼 신비롭다.

파도는 차르르 찰 차르르 찰 삼박자의 왈츠에 맞춰 춤추듯 밀려온다. 섬에 와서 파도 소리와 떡갈나무들이 마른 잎들을 부비는 소리를 들으면 몸도 마음도 깨끗해진다. 댓잎이 수북이 떨어진 뒤안을 싸리빗자루로 쓸면 말끔해진 것처럼.

우리는 하루라도 배설을 하지 않으면 상쾌하게 살아갈 수 없다. 먹는 만큼 제대로 배설을 할 수 없다면 불안감은 얼마나 배가될 것인가.

변비로 고생하는 사람이나 여행 때 제대로 된 화장실이 없어 15일 넘게 참았다던 연예인의 호소나 중국에는 화장실 문이 없어 먹는 것이 부담이었다는 옆집 아저씨나 모두 배설하지 못하는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배설할 수 있는 공간의 이름 중 가장 멋진 이름은 해우소이다. ‘근심을 푸는 곳’이라는 말은 친밀하면서도 매력이 있다. 변소, 화장실, 측간, 통시, 뒷간 등 다양한 이름이 있지만 이처럼 의미 깊고 통쾌한 낱말은 없다.

배설은 잠시나마 한 평 되지 않는 나만의 공간에 편안하게 앉아 가슴속 많은 근심 걱정을 맘껏 털어내는 행위이다. 거기엔 부끄러움도, 수치스러움도, 짜증도 없고, 알 수 없는 쾌감만이 솟는다.

배설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때의 고통을 한 번쯤은 경험해 보았으리라. 참으로 배설은 중요하다. 쏟아 놓을 곳이 없으면 가슴은 꽉 막히고 울화가 쌓여 독이 된다. 심지어 쌓인 독이 몸과 마음을 해쳐 울화병을 얻어 죽기까지 한다.

나는 말을 하고 싶다. 힘들고 어려울 때 가슴 넓은 사람 품에 안겨 맘껏 울고, 억울하게 오해를 받았을 때 단 하나의 사람에게 호소를 하고 싶어 동동거린다.

상처를 받았을 때 아픔과 슬픔을 나누고 싶고, 친구의 잘못된 언행을 보았을 때 그래서는 안 된다고 충고하고 싶어 입이 근질거린다.

그러나 세상에는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이보다는 자신의 말을 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을 도슬러 마음속에 잡도리한다. 내 가슴은 응어리가 생기고 점점 딱딱해진다. 드디어 내 몸은 고약한 냄새를 발산한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 몸 안의 독을 쏟아내기 위해 그 섬에 간다. 때마침 굵은 빗방울은 떨어지자마자 바닷물이 삼키고 물결은 바람을 타고 요동을 친다.

떡갈나무들이 이리 휘청, 저리 휘청하는 몸짓을 보고 있으면 내 안에 조급증이 발동한다. 끄응 끙, 저절로 힘이 주어진다. 무언가가 밑으로 미끄덩 빠진다.

바다는 검푸른 몸을 드러내고 내가 쏟아낸 것들을 거푸 긁어간다. 검은 먹구름을 뚫고 바다의 속을 비추는 햇빛. 말갛다. 그곳에 퀴퀴한 냄새는 사라지고 상큼한 갯바람이 부드럽게 속을 핥는다.

내가 오이도로 향하는 발길을 오른쪽으로 돌리는 것은 오래도록 그 섬을 바라보기 위해서이다. 예쁘게 똥을 눈 아기가 옹알옹알 기분 좋은 노래를 할 때 그것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마냥 흐뭇하다.

나도 그 아기를 바라보는 엄마처럼 섬을 바라보며 배설하고자 하는 욕구의 갈피를 들춰 보려는 것이다. 시원스레 변을 보지 못한 사람들의 고통을 헤아려 보고, 나의 고통도 저 바다에 모두 쏟아 버리고 싶은 거다.

때로 마뜩찮은 사람살이를 짠내 속에 절여 보고 싶은 거다. 갯내음을 맡으면 나는 메마른 날들 속에서도 아가미로 숨을 쉬고, 지느러미가 생겨 유유히 헤엄칠 수 있을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는 몸이 가볍다. 배설의 관이 뚫려 더 이상 막힘이 없고 고약한 냄새가 사라진다.

다시 섬에 비바람이 몰아친다. 나도 세 살배기 어린아이처럼 엉덩이를 내밀고 시원스레 똥을 누고 싶다. 해우하고 싶다.

 




▽ 정경희 수필가 프로필

전남 함평 출생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4 부산일보 신춘문예 수필 ‘이장’ 당선

2005 '에세이문학' 신인상 ‘갯내음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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