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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재담이설才談異說 / 임병식

부흐고비 2021. 3. 4. 08:30

도연명의 말마따나 술이 근심을 쓸어 내는 비라면 웃음은 그야말로 생활의 활력을 불어 넣어주는 묘약이다. 일노일로(一怒一老 ) 일소일소(一笑一少) 라는 말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웃음은 사람의 몸에 엔돌핀이 돌게 하고 짜증도 가시게 한다. 우스운 이야기 하나. 해방 직후 군정 시에 미국의 어느 고문관이 부산에서 경부선 열차를 타고 상경중이었다. 그런데 쳐다보는 사람마다 기묘한 표정을 지으며 줌통 내밀듯 감투밥을 주는 게 아닌가. 영문 모른 고문관은 신기해 하며 통역관에게 무슨 뜻이냐고 묻는 것이었다. 난감해진 통역관은 기지를 발휘하여 환영의 표시라고 둘러대었다. 그런데 아뿔사! 서울에 도착한 그 고문관은 한 기념식장에 도착하자마자 모여있는 좌중에게 만면에 웃음을 띄며 다짜고짜 감투밥을 먹이는게 아닌가.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얼마나 황당해 하였을까.

옛날 김삿갓이 방랑 중에 어느 시골 마을을 지나다가 서당(書堂)을 발견하고 인기척을 했다. 그런데 훈장이라는 사람이 숫제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심기가 불편해진 그는 점잖은 체면에 욕은 못하고 시 한수로 일갈을 하고 나왔다.

'學生 諸未十
先生 來不謁'
(학생은 10명도 안되고 선생은 안부도 묻지 않구나)

그 치소가 보지 않았어도 눈에 선히 어려온다. 생활 속에서 접하는 듣기 거북한 소리로는 '18통이나 19통'이란 말과 '용계리'라는 지명이다. 또한 섬 사람들이 특별히 느끼는 어휘도 있다.바로 '섬놈'이란 말이다. 해서 어떤 이는 이를 농삼아 '섬놈 섬놈' 하지 말고 이왕이면 듣기 좋게 도자(島者)라고 부르시오' 해서 웃은 적도 있다.

옛날엔 마을마다 서당이 열리어, 그곳에서 배운 어쭙잖은 실력으로 문자를 쓰는 게 한때 유행했다. 당시 장가드는 신랑을 다루는 풍습이 있었는데, 그게 한문 문답이었다. 즉 동구 밖에서 신랑이 타고 온 가마를 가로막고 태스트를 하는 것이다.

'행거마 하처거(何處去)인가' 해서 '뉘댁의 혼사 행차다'고 답하면 이런저런 문답으로 통행세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게 주로 담배인데, 이때 으례껏 신랑은 파랑새 담배 한 갑을 내밀게 된다.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이 "북천(北天)비안(飛雁) 쌍쌍행(雙雙行)이라"고 텃세부려 한 갑을 더 얹어 받았다. 그러한 장난이 고삿길로 들어서며 두세 차례씩 이루어졌다.

그 무렵 서당 출입을 하면서 듣게 된 것이 소위 요사이 이설로서 떠도는 '多毛孔闊하니 必有過人之跡아니오'(음모가 무성하고 옥문이 열렸으니 누가 지나간 자국 아니냐)하는 말이다. 그 대답이

春溪楊柳는 不雨濕하고 秋園黃栗은無蜂開 하다오'(봄 냇가 버들은 비가 오지 않아도 습하고 가을 정원의 밤을 벌이 쏘지 않아도 열린다오'인데, 한데 최근에는 다른 댓구도 떠돈다. 그게 뭐냐하면 南山春草는 不耕長하며 北林黃栗은 知時破'(남산의 봄 풀은 가꾸지 않아도 저절로 자라고 북쪽 익은 밤은 때가 되면 벌어진다)라는 이설이다.

어느 것이 먼저 생겨난 말인지 모르나, 뜻은 유사하지 않은가 한다. 이와 비슷한 얘기로 강간(强姦)을 당했다는 여인에 대한 판결도 비슷한 사례로 전해오고 있음을 본다. 이런 얘기다. 어느 날 간음을 한 여인이 재물을 탐하여 강간을 당했다고 관아에 고하였다. 그리하여 당사자는 원님 앞에 불려 나와 문초를 당하게 되었는데,

"그래 꼼짝없이 당했단 말이냐?" 하니
"예, 그러하옵니다" 했다.

그러자 원님은 준비한 칼집을 들고나와 칼을 빼어서는 여인에게 건네주면서 칼집에 넣어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리저리 칼집을 움직이는 것이었다.

"왜 넣지를 못하느냐?"

여인은 애를 쓰다 끝내 그만 포기를 하고 말았다. 움직이기 때문에 도저히 넣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원님은 크게 꾸짖었다.

"에이 고얀지고, 남녀의 이치가 이런 것이거늘 어찌 강간을 당했다고 하느냐"고 명판결을 내렸다. 이런 얘기는 세르반데스의 동키호테에도 등장한다. 강간을 당했다는 여인에게 농부 산초는

"억울하게 강간을 당했다면 그대는 남자가 지니고 있는 금은보화를 받아서 갖도록 해라"고 한다. 그러니까 상대방 남자가 펄쩍 뛰는 건 당연지사.

"아닙니다. 그 말은 거짓말입니다"

그러자 산초는 남자에게 그렇다면 여인에게서 다시 빼앗아 네가 가지라 한다. 그러자 여인은 결사적으로 빼앗기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친다. 빼앗는 일이 실패로 돌아간 건 불문가지. 이때 그는 명판결을 내린다.

"여자가 강간을 당했다는 건 거짓말이다. 너는 남자에게 금은보화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남자를 쓰러뜨리면서 지켰지 않느냐. 그러면서 어찌 강간을 당했다고 하느냐? 하고.

어찌 됐거나 유사한 얘기가 동서고금을 넘나들어 퍼져 있음은 신기하고 재미있는 일이다. 그래서 세상은 도처춘풍(到處春風)이요, 골마다 살만한 것인가. 옛사람들이 사는 일을 이르길 난작인간 백년신(難作人間 百年身_인간이란 백년 몸을 보존하기 어렵다)이라 했다. 인생이 이럴진대 어찌 참담한 얼굴로 우울한 모습으로만 살것인가. 예써 하하허허 웃으며 밝게 살 일이다.

 

 

“거짓이 없어 깨끗하니, 그래서 수필이 먼저 좋다” - 남해안신문

여수에서 활동하는 수필가 임병식 씨(73)의 작품 “문을 밀까, 두드릴까”가 2015 새 교육과정으로 발행된 2019년 중 2-1 국어 교과서에(P172) 수록됐다.김유정의 “동백꽃”, 권용선의 “읽을수록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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