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시詩 느낌

정창준 시인

부흐고비 2021. 3. 16. 17:14

벚꽃 엔딩 /정창준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이,
벚꽃잎이, 벚꽃잎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가까스로 넘기자마자,
분분한 해고의 순간,
바람을 핑계로 계약직의 생애가 저문다.

나무의 열매를 나눠 가진 적 없는
죄 없는 꽃잎들이
골목 끝으로 몰려 웅성거리다가
무심한 시선에
다시 한 번 쓸려 나간다.

다시 계약직의 무성한 잎들이 채용되었다.

아버지의 발화점/ 정창준

바람은 언제나 삶의 가장 허름한 부위를 파고들었고/ 그래서 우리의 세입은 더 부끄러웠다. 종일 담배 냄새를/ 묻히고 돌아다니다 귀가한 아버지의 몸에서 기름 냄새가 났다./ 여름 밤의 잠은 퉁퉁 불은 소면처럼 툭툭 끊어졌고 물 묻은/ 몸은 울음의 부피만 서서히 불리고 있었다./ 올해도 김장을 해야 할까. 학교를 그만둘 생각이예요./ 배추값이 오를 것 같은데. 대학이 다는 아니잖아요./ 편의점 아르바이트라도 하면 생계는 문제 없을 거예요./ 그나저나 갈 곳이 있을지 모르겠다./ 제길, 두통약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남루함이 죄였다. 아름답게 태어나지 못한 것,/ 아름답게 성형하지 못한 것이 죄였다. 이미 골목은 불안한/ 공기로 구석구석이 짓이겨져 있었다. 우리들의 창백한/ 목소리는 이미 결박당해 빠져나갈 수 없었다. 낮은 곳에/ 있던 자가 망루에 오를 때는 낮은 곳마저 빼앗겼을 때다./ 우리의 집은 거미집보다 더 가늘고 위태로워요./ 거미집도 때가 되면 바람에 헐리지 않니. 그래요./ 거미 역시 동의한 적이 없지요. 차라리 무거워도/ 달팽이처럼 이고 다닐 수 있는 집이 있었으면, 아니/ 집이란 것이 아예 없었으면. 우리의 아파트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고층 아파트는 떨어질 때나/ 유용한 거예요. 그나저나 누가 이처럼 쉽게/ 헐려버릴 집을 지은 걸까요./ 알아요. 저 모든 것들은 우리를 소각(燒却)하고/ 밀어내기 위한 거라는 걸. 네 아버지는 아닐 거다./ 네 아버지의 젖은 몸이 탈 수는 없을 테니. 네 아버지는/ 한 번도 타오른 적이 없다. 어머니, 아버지는/ 횃불처럼 기름에 스스로를 적시며 살아오셨던/ 거예요. 아, 휘발성(揮發性)의 아버지./ 집을 지키기 위한 단 한 번 발화(發火).//
* 조세희 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화법을 인용함.

80년대식으로 말하다 / 정창준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 라는 말 속에는/ 돌을 굴리는 자의 의도와/ 돌의 부식이/ 교활하게 생략되어 있다// 근면이라는 말은 그 얼마나 고단한가// 이 시대의 돌은/ 젖은 자리에서 열심히 구르고 있다/ 제 몸 덮는 이끼를 짓이기며/ 자신이 돌이라는 것도 잊은 채/ 몸을 던질 어딘가를 잊은 채//

연대할 수 없는 아침 / 정창준

대부분의 아침은, 갓 구운 토스트처럼 까끌거린다. 생경한 악담처럼, 낯선 것들을 만지고 싶어 새로 돋은 수염을 쓸어보는 아침. 수염의 집념을 배울 수만 있었다면 이미 혁명가가 되었겠지. 혁명가가 되지 못한 색약의 나는, 적색을 잃은 것이 아니라 더 선명한 녹색을 얻은 것일 뿐. 고분고분한 이불을 접다가 바라본 창문 밖은 나뭇잎들이 간헐적 단식을 시작하는 계절, 수분이 빠져나가는 것은 지긋지긋한 젊음을 벗는 첫 단계, 식욕의 반대편에는 다른 욕망이 혐오범죄처럼 도사리고 있지만 다행히 나는, 미투의 손가락질을 피해 살아왔다. 그러나,// 나는 조금 더 위험한 사람이 되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네가 주말을 보내고 싶어했던 쿠바, 발리 그리고 코타키나발루의 다른 이름들, 빛나는 것들을 사랑하는 네 보편적 취향을 존중해. 핀란드산 가구 만큼이나 쉽게 이해되는 네 취향을 사랑해, 그런데 너는 왜 날 사랑한 거니. 창백하고 돋보이지 않던, 밤에서 밤으로 이어지는 모든 경계를 나는 사랑해. 사랑하긴 했냐고? 말했잖아, 난 경계를 사랑해. 문 앞에 섰을 때의 설렘은 문을 여는 순간 사라지지. 문을 여는 건 너나 나지만 닫는 건 오직 나야. 분명한 건, 너를 떠난 후에야 네가 원하던 얼굴을 가질 수 있었지. 노르웨이산 가구 같은.// 강의 미래가 강이 아니듯 소년의 미래 역시 소년이 아니어서/ 모든 소년은 연대할 수 없는 죄를 은닉하고 있다고 믿고 싶은 아침/ 주름진 얼굴의 단독범이 수염을 만지며 창밖을 바라본다.//

거리가 필요한 즈음의 거리 / 정창준

질병이 들자, 혐의는/ 친밀함에게 돌아갔고/ 의심은 최고의 상비약이 되었다.// 6피트 이내의 거리는 금지되었고,/ 마스크에서는 더 이상/ 홍콩의 향냄새가 나지 않았다.// 바람은/ 화분대신 비말을 운반했고/ 바람을 등진 우리의 시선은 허공에서/ 더 자주 난처하게 엇갈렸다// 만남은 비밀스러운 시간대로 미뤄지고/ 언제나처럼, 입이 가장 두려워서/ 불안을 소독약처럼 도포했지만/ 좀처럼 증발되지 않았고, 불안 대신/ 약간의 직원들만이 증발되었다// 드라이브 쓰루는/ 맥도날드가 종교보다 훨씬/ 무해함을 일깨워 주었고// 주말이면/ 문 닫은 가게들을 지나/ 각자의 차를 타고 해변으로 나가/ 띄엄띄엄 모래 위에 놓인 채/ 파도의 간격이 옮았음을 천천히 복습하곤 했다//

지심도 / 정창준

나는 4월에 울음을 배웠다./ 엎드린 동백에게서 울음을 배워서/ 지심도를 닮아 쉽게 저물었다.// 가족보다는 가족 같은 사람이 필요했다./ 푸르고 단단하게 묶어 줄,/ 소리가 되지 못한 말들은 죄다 울음이 되어 떨어졌다./ 밤은 허락없이/ 지나온 사람들을 데리고 온다./ 망각은 꽃 속처럼 깊고 아득해서 멍든다.// 푸르고 단단한 화관처럼 에워싸 줄 수 있는 사람,// 그러나 부끄러웠던 젊은 날이여,/ 뚝뚝,/ 초점거리 밖으로 밀려난 친구들이여, 뚝뚝,/ 등을 두드려 주고 오래 눈을 바라보던 시간들이여, 뚝뚝,/ 한 우산 아래 앉아 젖어가던 새벽의 우리여, 뚝뚝,/ 청춘이란 하루하루가 접착된 서적 같은 것이어서/ 한 장씩 찢겨지는 대신 한 권의 시절이 투신한다. 뚝뚝,/ 우는 사람에 대한 세상의 인내는 길지 않고/ 제 몸에 깃든 울음만이 오래간다.// 세상과 달리 너는,/ 아프다 대신 아팠다고 말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새벽 세 시 / 정창준

밤은 영혼을 매만져주기 위해 온다./ 영혼이 야행성인 이유다./ 새벽에는,/ 특히 악기를 조심해야 해/ 이미 음악은 너무 많은 것들을 말해 버렸지./ 라디오는 인간보다 따뜻고/ 나의 신은 어디에 있는 걸까./ 금기가 적고 저렴한 종교는 없어서/ 나는 죽은 가수를 더 신봉하고/ 노래에는 주술이 묻어 있다고 믿어.// 별은 신의 귀, 너무나 많은 기도를 엿듣고만 있었지./ 신이 농인이어서 다행이야.// 여자들은 섬세해서 글을 잘 쓴대요. 상처가 더 필요할까요? 오래된 상처는 팔아먹기 좋댔어요. 글쓰는 사람이 남 다른 상처 하나는 있어야지, 안 그래? 첫 시집은 칭얼거림입니다. 이만큼, 아팠다구, 칭얼거리는 사이, 오늘도 어린 비정규직 청년이 또 한 명 죽고 허공이 걸린 나뭇가지 아래 부패한 매미의 주검이 지구를 베고 엎드려 있다./ 나는 어쩐지 남들의 이야기에 먼저 슬퍼오지만/ 낯가림이 심한 나는 귀가 자꾸 뾰족해 지고/ 오늘은 어제의 부음이어서 눈을 뜰 수가 없다//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 / 정창준

안녕*. 한 해가 죽고 나는 조금 더 낡았구나. 곧 재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서른세 명의 얼굴을 떠올리며 사주에 들었다는 외로울 고 자를 창에 써 볼 것이다. 종소리와 폭죽은 축하일까 위로일까 자위일까. 아님 협박일까. 올 가을에는 7년 전 전 담임을 맡았던 아이가 죽었다. 영어 성적 좀 올리라는 말에 눈물을 쏟던 얼굴이 유난히 희고 큐레이터가 꿈이었던 눈동자가 새까만 아이였다. 너는 늙어가는 대신 죽음으로 어리고 서툰 조문객들에게 짧았던 삶을 해설하는구나. 이웃들의 불빛을 내려다보며 나는 한 잔의 와인을 들고 다행히 살아 있고 많은 죄는 짓지 않았다고 안도해야 하나. 너는 죄짓지 말아라, 수염이 날 때를 기다리며 조금씩 말이 없어지는 아들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며 말해야 하나. 고마웠던 얼굴들을 하나하나 지어가며 단체문자를 전송하며 선량한 밤을 보내야 하나. 그리고 이제는 덜 새로운 날들을 살아야 한다. 지나온 한 해 동안 너무 많은 장면에 밑줄을 그었구나. 그사이 새로운 표정과 웃음을 배운 탓에 평판이 조금은 나아졌다. 갈피가 부족해. 마스크를 쓴 홍콩의 밤은 오늘 평화로울까, 이 밤 기계 앞에 선 소년들은 없을까를 생각하는 동안에도 나는 부끄럽게도 안온했다. 가벼워진 달력의 마지막 장을 뜯어내며 시간을 열 두 달로, 삼백육십 오일로 절단한 사람에 대해 생각한다. 지난 세기 무더기로 태어났던 우리가 이제 무턱대고 자라 노인이 되어 가고 죽어야 할 자들은 너무 오래 살았다.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지만,// 아직 여기가 우리의 무덤은 아니다.//
* 부산의 노(老)시인이 항상 전화로 건네는 인사말


 

△정창준 시인

1974년 울산 출생.

울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현재 대현고등학교 국어 교사.

수요시포럼 동인.

시집 <아름다운 자> 출간

 

'시詩 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규리 시인  (0) 2021.03.20
김기택 시인  (0) 2021.03.18
시와 연애하는 법 / 안도현  (0) 2021.03.15
임경묵 시인  (0) 2021.03.15
권민경 시인  (0) 2021.03.12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